합스부르크 왕가의 정궁인 호프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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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전통과 현대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오스트리아 빈 산책
“이래도 되나요? 직원들이 얼굴도 쳐다보지 않던걸요. 그냥 여권에 스탬프만 꾹 찍더라고요.” 여행 전문지 기자였던 그에게도 그곳의 입국 수속은 놀라움이었던가 보다.
빈(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다. 다른 이름의 커피가 있다면 프랑스 말로 섞는다는 뜻을 지닌 멜랑제뿐이다. 특별한 게 아니다. 초콜릿이나 코코아 가루 등을 첨가해 휘휘 젓는다. 커피가 유명하다지만, 사실 커피는 두 차례나 빈을 포위 공격했던 오스만튀르크에서 전해져 왔다. 심지어 원수의 기호까지 수용한다. 비엔나아이스크림도 유명하지만, 실은 이탈리아산 아이스크림 두세 가지를 한 스푼씩 올린 게 고작이다. 빈엔 빈만의 것이 별로 없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먹고 마시는 것에 비엔나 브랜드를 붙인다. 그리고 좀더 비싼 값을 요구한다. 기이하게도 손님들은 흔쾌히 돈을 낸다.
카를 킨스키 백작 저택에선지금도 300여년 전
무도회가 이어진다 오스트리아는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탈리아·스위스·리히텐슈타인·독일·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슬로베니아 등.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빈은 동서남북 유럽의 중앙역이다. 가톨릭과 정교,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하며 문화가 섞였고, 혈통적으로는 게르만·슬라브·프랑크·라틴의 피가 섞였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400여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차지했다. 그 영토는 에스파냐부터 독일에, 네덜란드에서 헝가리·체코에 이르렀는데, 정복이 아니라 결혼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힘센 자들이여, 전쟁을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할지니. 그들에게는 마르스가, 우리에게는 비너스가 있다.” 빈은 23개 구역으로 이뤄졌다. 링슈트라세(순환도로)로 둘러싸인 1구역이 그 중심이다. 사과의 씨방 같다. 14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고딕 양식의 슈테판 성당부터 19세기 후반 네오고딕 시청사까지 고딕, 로코코, 바로크, 네오고딕 양식이 도열해 있다. 그 자체로 시간사 박물관이다. 건물의 80% 이상이 100년 이상 되었으니, 링슈트라세의 안과 밖은 차원이 다르다. 밖이 현대라면 안은 근대, 절대왕정, 중세로 깊어진다.
중심가인 슈테판 광장
거리 풍경. 악사가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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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작한 포도로 해포도주를
전통음식과 함께 즐긴다 응시하면 알겠지만, 안과 밖은 먼저 속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길 건너 1구역의 속도는 전근대다. 유모차를 끌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혹은 구두부터 핸드백까지 색깔과 무늬를 코디한 멋쟁이 노인, 심지어 개들까지 소걸음이다. 자동차도 행인이 건널 조짐만 보이면 일찌감치 멈춰서 기다린다. 합스부르크 왕조 시절의 케른트너 거리를 오가는 마차에 맞춰져 있다. 공간은 시간을 그렇게 규정한다. 빈 대학에서 강의했던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의 상호의존성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빈에서 시간은 공간에 머물며, 공간은 시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신성로마제국의 궁전 호프부르크에 딸린 수백년 전 마구간은 지금 근대의 탐욕과 광기를 비판한 에곤 실레 등 아르누보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황제가 집무했던 곳은 유럽연합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행정청이 들어가 있고, 가장 오래된 건물은 역사적 시간을 담아두는 국립도서관으로 쓰인다. 정원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쇤브룬 궁전의 별채는 장기투숙용 호텔로 이용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뜻의 벨베데레 궁전은 원 소유자 오이겐 왕자의 이름보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 <키스>로 더 유명하다. 왕이 후원을 감상하던 곳이었을 법한 방에는 고뇌하는 지식인, 하층민들의 비참, 죽음의 몰골을 보여주는 에곤 실레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시간은 이렇게 공간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왕가의 화려한 처소는 지배층의 허위의식과 탐욕을 고발하는 곳이 되었다.
슈테판 광장에 있는 군밤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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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호이리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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