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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27 13:43 수정 : 2011.01.27 13:43

중국 베이징의 옛 성문인 첸먼.

민국시대 전통 되살린 대규모 새단장 ‘첸먼다제’

중국의 서울 베이징 한복판에 새로운 명물 거리가 등장했다. 베이징의 옛 성문 첸먼(전문) 앞 800여m에 걸쳐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중심가 첸먼다제(前門大街·전문대가)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베이징을 찾은 관광객들은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거듭났다. 베이징시가 올림픽을 맞아 새 단장을 시작한 이래 첸먼다제는 요즘 거리 전체가 초대형 수술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모습이 바뀌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쌓인 20세기 중후반의 모습들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이전 민국시대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베이징의 주요한 신흥 관광지로 떠올랐다.

천자의 길, 중국인의 삶터가 되다

첸먼다제에 붙어 있는 다스란의 골목길.
베이징은 조선의 한양처럼 황제의 궁을 중심으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중심축으로 건설된 도시다. 그 가운데 자금성(쯔진청)이 있고, 이 거대한 황궁을 가로지르는 남북축이 ‘하늘의 아들’ 천자로 불리는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남쪽 천단(톈탄)까지 이어진다. 천자는 이 길을 따라 천단으로 향했고, 그래서 중심축을 따라 만들어진 길 첸먼다제는 ‘천자의 길’로 불리게 됐다.

우리로 따지면 종로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첸먼다제는 베이징 중심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관리들이며, 과거를 치러 오거나 공부하러 올라오는 유학생들은 이 거리에 짐을 풀고 머물렀고,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온 이들이 이 거리에 정착했다.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네 고향 지방의 건축양식대로 집을 지었고, 거리에서 온갖 물건을 팔았다. 첸먼다제는 중국 각지의 다양한 건축양식들이 모여 있는 건축백화점이자 베이징 안의 작은 중국인 셈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베이징의 전통가옥 쓰허위안(사합원)들이 거미줄처럼 골목을 이루고, 대로변에는 온갖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거대한 시장거리를 이뤘다. 베이징 시민들이 수백년 동안 일상 속에서 즐겨 찾는 곳으로 베이징의 역사와 함께해온 거리다.


‘베이징의 남대문시장’이자 ‘베이징의 피맛골’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 상점가 ‘다스란’ 또는 ‘다자란’(첸먼다자란·前門大柵欄)도 이 거리에 붙어 있다. 다스란은 5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 상업거리로, 퉁런탕(同仁堂·동인당) 등 중국의 유명한 상점들과 여행객들이 묵는 여관과 호텔들이 밀집한 골목길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다

첸먼다제의 노점상.
이 유서깊은 전통의 거리는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유령의 거리가 된다. 이곳에서 살고 일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첸먼다제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고 떠나야 했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도시 곳곳을 뜯어고치기로 한 베이징시가 첸먼다제 지역을 가장 중요한 재개발 지역 중 하나로 정하면서 이곳의 오래된 건물들을 모두 철거한 뒤 다시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토지는 모두 국가의 것이고, 시민들은 그 이용권만 갖는 중국식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베이징의 전통거리들이 단번에 상전벽해가 되듯 재개발로 바뀌어오는 와중에도 남아 있었던 첸먼다제도 결국 재개발로 모든 것이 바뀌게 됐다.

베이징시는 첸먼다제를 싹 바꾸되 역사적 전통은 새롭게 다시 세우기로 하고 중국의 유명 부동산개발업체 소호차이나에 재개발 계획을 맡겼다. 소호차이나의 대표인 장신이 이 재개발의 마스터플랜 건축가로 고른 이는 뜻밖에도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였다. 승 대표는 베이징 시민들의 문화가 녹아 있는 첸먼다제 지역의 기존 공간 구성을 최대한 살리는 개발 계획안을 짰다. 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원했던 베이징시는 거리 원래의 공간 구성을 최대한 살리기보다는 옛 민국시대 건축물로 거리 전체를 새로 만들기로 정하고 다른 건축가들이 세부계획을 짰다.

민국시대는 청나라가 망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산 혁명으로 중국 대륙 전체를 집권하기 전까지 쑨원과 위안스카이, 장제스가 이끌었던 공화국인 중화민국 시절(1912년부터 1949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 첸먼다제는 중국풍과 유럽풍이 혼합된 이른바 ‘민국시대 스타일’로 불리는 중국 특유의 벽돌건물의 거리였다. 베이징시는 바로 이 시기 건물들을 새로운 첸먼다제의 이미지로 정해 60년 전으로 거리를 완벽하게 다시 재현하기로 했다.

완벽하게 민국시대로 돌아가다

첸먼다제를 걷는 사람들.
새얼굴로 치장한 첸먼다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마라톤 코스로 1차 완성된 대로변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중국의 벽돌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민국시대 건축물들은 중국적이면서도 근대적인 모던함이 묻어나는 게 특징이다. 800m에 이르는 넓은 거리는 당시 사진에 따라 재현된 새 건물로 한꺼번에 새로 지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거리 양면 전체에 새로 지은 건물들이 펼쳐진다. 보행자 전용 도로가 가운데 시원하게 뚫려 있고, 옛 모양 디자인으로 만든 전차가 거리를 오간다. 2~3층 높이의 대로변 상가 건물들은 아주 전통적인 것부터 현대적인 것들까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으로는 완벽하게 민국시대식으로 통일되어 있다. 남쪽 거리 입구에서 걷기 시작해 맥도널드와 자라, 에이치앤엠 같은 외국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거리 양쪽을 구경하며 20분쯤 걸어가면 거대한 패루(거리에 세우는 문 모양의 중국 전통 시설물)가 등장하고, 그 뒤로 우뚝 선 첸먼이 모습을 드러낸다. 첸먼의 뒤로는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이 일직선을 이루며 차례대로 이어진다.

현대의 욕망으로 재현한 역사의 ‘테마파크’

첸먼다제에서 노점상이 중국 전통놀이를 보여주고 있다.
첸먼다제의 노점상.
첸먼다제는 옛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는 서양식 도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그리고 전통 지역을 일거에 밀어 없애기는 마찬가지인 한국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거대한 역사 재현 거리다. 어느날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갔지만 그 과거는 ‘만들어진 전통’이다. 먼저 민국시대풍으로 재개발한 상하이의 명소 신천지(신톈디)가 옛 시절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첸먼다제는 웅장한 가로 전체가 특정 시기의 모습으로 통일되어 있어 그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예전에 실재했던 건물들을 다시 지었지만 갑자기 돌아온 과거의 모습에는 세월의 흔적이 없는 탓이다. 그래서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전통을 주제로 한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첸먼다제는 전통과 역사, 도시와 거리에 대해 새롭고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 곳이다. 전통의 복원에 대한 중국의 독특한 관념이 만들어낸 역사적이면서도 비역사적인 거리, 지금의 욕망으로 다시 만든 과거의 거리, 재개발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화끈하고 거대한 규모를 첸먼다제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개념이 중첩되고,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첸먼다제는 분명 새롭고 독특한 볼거리지만, 옛 거리 특유의 복작대고 부대끼는 맛은 없다. 골목 특유의 생동감은 길 서쪽으로 한걸음만 더 들어서면 펼쳐지는 다스란 거리에서 느껴볼 수 있다. 뭐든지 크고 화려하고 깨끗하고 새것인 첸먼다제, 좁고 복잡하고 더럽지만 베이징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다스란이 길 하나 사이로 공존하며 서로 대비되는 모습은 하루가 무섭게 바뀌어가는 거대 도시 베이징의 과거와 현재라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베이징=글ㆍ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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