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2>남미에서의 첫 식사
말도 못하고 겁나 사먹거나 요리하지도 못해
그렇게 별러 왔건만 막상 방구석에서 눈물만
여행 얼마동안 할거야? 몰라, 돈 떨어지는 대로. 돈 없으면 길거리에서 돈도 벌고 그러지 뭐.
허풍스럽게 말을 늘어놓고 떠난 여행. 60리터짜리 배낭에 이것저것 잔뜩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주위에선 ‘여자 혼자 대단하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곧 닥쳐올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도 못 이룰 지경이었다. 야속한 시간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잘만 가더라.
인스턴트 시식 코너 맴돌며 눈치껏 넙죽넙죽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남미의 치안에 대해선 익히 들어온 바라, 공항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노숙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고 집에서 뽑아온 정보가 적힌 종이를 들고 숙소를 찾아갔다. 오르막길인 그 골목은 어둡고, 딱 보기에도 한번 잘못 들어가면 칼에 찔릴 것 같이 으스스했다.
안내받은 도미토리에는 침대 네 개와 주인 없는 배낭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후회했다. 처음부터 외국인들을 만나서, 영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며 여행을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집을 나온 지 일주일째가 돼가니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슨 배짱으로 한국 숙소나 한국인 동행을 찾아보지도 않고 온 건지.
배는 고팠지만 밤 12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남미의 거리를 돌아다니면 100% ‘칼빵’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일단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방은 여자는 나 혼자, 반나체의 짐승(?)들로 득시글거렸다.
간단히 짐을 꾸리고 홀로 시내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축제일이었는지, 조그만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공연도 하고, 천막에선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조리를 사러 들어간 대형슈퍼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보니, 인스턴트 라면의 시식을 하고 있었다. 받았다. 그리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한 바퀴 돌다가 또 받았다. 그렇게 4번을 받아먹었다. 시식코너의 여자는 이 거지근성 쩌는 외국인이 재미있는지, 내가 올 때마다 웃음을 못 참고 푸흑 하고 내뿜었다.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길거리에 보이는 핫도그를 사먹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땐 왜 그리도 무섭고 겁이 나던지.
콜롬비아 남자 따라가 죽어라 러닝머신만
말할 필요가 없는 마트에서 이것저것 산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주방을 쓰는 데도 도대체 어떻게 말하고 써야 하는지, 냄비나 그릇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겁이 나 그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방에서 내내 울기만 했다. 큰 소리 쳐놓고 이렇게 방구석에 처박혀 아무 것도 못하고 질질 짜기만 하는 내가 한심했다. 배우고 부딪혀 볼 생각은 안하고 말 못한다고 두려워 먼저 다가서지도 못하면서 밥도 못 사먹고 찌질대는 내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럴 거면 왜 왔나? 8개월 동안 일하면서 주변의 반대도 무릅쓰고 왔는데, 이렇게 은둔형 외톨이 마냥 틀어박혀 질질 짜고나 있다니. 평소엔 보고 싶지도 않은(죄송합니다) 부모님도 보고 싶었다. 결국 가져온 티슈를 코 풀고 눈물 닦는데 다 써버렸다. 그날의 식사는 시식코너에서 받아먹은 인스턴트 라면과, 마트에서 산 요거트 나부랭이가 전부였다.
다음날 아침, 같은 방의 콜롬비아 현지인 남자가 내가 너무 딱했는지, 자기가 운동하는 데 같이 가자고 했다. 조그만 헬스클럽에 도착한 뒤, 이름도 기억 못해서 미안한 그 친구는 내 돈까지 내주고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못하는 만큼 그 친구는 영어를 못해서 우린 정말 묵묵히 운동만 했다. 먹은 것 없이 두 시간 동안 같은 러닝머신만 죽어라고 탔다.
결국은 한국인 숙소로…밥 먹으러 간다는 아저씨 쫄래쫄래
숙소에 돌아와서는 한국어로 인터넷을 너무 쓰고 싶어(노트북도 안 가져 갔다) 대충 주소만 가지고 한국인 숙소를 찾아 나섰다. 남미의 대도시는 주소만으로도 길을 찾기가 쉬워 나는 곧 그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딩동~.
벨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한국 여자 분이 “어서오세요”라며 나를 맞이해주셨다. 어찌나, 어찌나 반갑던지!!! 잠깐 인터넷만 쓸 수 있냐며 한 시간에 얼마냐고 물어보니, 그냥 쓰라시며 안내해주셨다. 아, 역시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은 너무나 반갑고 친절하다. 신나게 인터넷을 다 쓰고 벽에 붙어 있는 콜롬비아 지도를 보고 있자, 주인 분이 오셔서 콜롬비아의 훌륭함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해 주셨다.
나 말고도 아저씨 한 분이 같이 그 설명을 듣고 계셨는데, 마침 그분도 그날 도착해서 한국음식을 드시러 가신단다. 옳거니 싶어 냉큼 따라 나섰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게 되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게다가 무서워서 밥도 못 사먹는 내가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는 전차에도 탔다. 중·고딩들이 혼자서 못 피는 담배를 여럿이 있으면 침 찌~익 찍 뱉어가며 거친 눈빛으로 피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나보다 스페인어 못하는 것 같은데 몸짓 발짓으로 당당히
한국어를 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마치 지구력 테스트를 끝낸 후 물을 마시는 기분과도 같았다고나 할까. 중간에는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동행한 아저씨는 스페인어를 나보다도 못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두려워서 밥도 못 먹고 질질 짜기만 하던 나와는 달리, 띄엄띄엄 단어와 몸짓만 가지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항상 대학에서 인간관계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다가오기만을 바라지 말고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라고 조언하던 나였지만, 남미에 와서 겁먹고 숨어버리기만 했었다. 아저씨를 보고 다시금 원래의 당당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길을 물어본 현지인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직접 데려다 주는 친절을 발휘해, 결국 같이 한국음식을 먹었다.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나는 당연히 못 알아들었지만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다 알아듣는 줄 알고 나보고 똑똑하단다.
결국 나는 그쪽으로 숙소를 옮기고, 여행 노선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다니게 되었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끝까지, 나는 한국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황라연
namco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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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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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 그냥 지금을 위해 일단 간다, 쥐뿔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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