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의 여주인공 서나영(배우 조선명씨)이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사진 명랑씨어터 수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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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사투리 왁자지껄…서울살이 ‘공감’ 토크
[현장] 뮤지컬 <빨래> ‘나영이 데이’ “나영이를 찾습니다. 나영이는 여자입니다. 아직 미혼입니다. (연애는 차인 게, 한번 심하게 차인 게 한번 ㅠㅠ) 꿈을 찾아 여기에 왔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뮤지컬 <빨래>의 공연이 열린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이 도심의 빌딩 숲에 생기를 불어넣었을까? 팔도 사투리로 왁자지껄하다. 공연은 끝났지만, 뮤지컬 속 주인공인 ‘나영’을 현실에서 찾아보는 ‘나영이 데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또 다른 현실 속 뮤지컬은 진짜 나영이들의 유쾌한 ‘공감’이었다. “촌뜨기 나영아, 너의 아픔을 말해봐∼”뮤지컬 <빨래> 여자 주인공 ‘나영’
비정규직에, 직장에서도 잘릴 위기 뮤지컬 <빨래>에서 주인공 나영은 강원도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온 스물일곱 살의 여성이다. 나영의 서울살이는 한마디로 ‘팍팍’하다. 처지는 서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고, 직장 동료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다 덩달아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희정 엄마와 욕쟁이 할머니는 옥상에서 빨래를 말리면서 나영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이들의 도움으로 나영은 다시 팍팍한 서울살이에 정을 붙인다. 뮤지컬이 끝난 뒤 주연 배우인 김효숙(주인 할머니 역), 조선명(서나영 역), 성소원(희정엄마 역) 강유미(여직원 역)씨와 <빨래>의 연출자 추민주씨가 차례로 무대에 다시 올랐다. 무대의 맞은편에는 초대받은 ‘현실의 나영이’ 10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완도·광주·부산·강릉·옥천 등 전국에서 올라온 여성들은 “내가 진짜 나영”이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현실의 ‘진짜 나영’이 100명을 만나다 <빨래>에서 남자 주인공인 솔롱고 역을 맡은 박정표씨가 나영이 응원곡 <참 예뻐요>를 부르면서 ‘나영이 데이’는 막이 올랐다. 객석을 채운 나영이들은 종이 비행기에 ‘자신이 나영이와 닮은 이유’와 ‘서울살이의 고달픔’, ‘내 꿈은 000’의 빈 칸을 채워 무대 위로 날려 보냈다. “혼자 빨래하고, 밥하며 살지만, 씩씩하기 때문에 나영이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에도 씩씩한 내가 진짜 나영이다.” 재치있고 당당한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무대는 웃음소리와 “와~”하는 공감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나영이들이 털어놓는 서울살이의 경험과 힘든 서울살이를 달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경쟁·개인주의·사람 때문에 서울살이 힘들다”
9월 13일 오후, 뮤지컬 의 공연이 열린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에서는 뮤지컬 속 주인공인 ‘나영’을 현실에서 찾아보는 ‘나영이 데이’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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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서울살이 12년 차인 유효선(31)씨는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살이가 힘들다”며 “그래도 희망은 있으니 모두 힘내시라”고 말했다. 전남 보성에서 온 박진숙(29)씨도 어느덧 서울살이 10년차다. 그는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며 “시골에서 학교 다니려고 올라왔는데, 서울의 개인주의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서울살이의 시름을 달래는 자신만의 방법도 소개했다. “한 때 영화나 책을 통해 환상 속에서 아픈 마음을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더 좋다.” 부산이 고향인 손은교(27)씨는 서울살이 3년 차 새내기다. 손씨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달랜다”고 말했다. 손씨는 “내 꿈은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딸로 내 가족의 품으로 당당하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다시 만날 엄마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에 초대된 150여 명이 여성들이 참여한 설문조사 ‘각박한 서울살이, 이럴 때 절실히 느낀다’의 결과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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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사람”…아픔을 공감하라 서울살이 4년차 박주연(30)씨는 “서울에서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박씨는 “직장에서 부딪히는 사람관계,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부산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값 비싼 기차표를 끊게 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박씨에게 사람은 희망이다. 박씨는 “아는 사람도, 기댈 곳도 없었던 서울에서 조금씩 인연이 생겨서 괜찮아지고 있다”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이 도시에서는 힘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살이 20년 차인 ‘맏언니’ 전현춘씨는 후배 나영이들에게 서울살이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씨는 “서울은 이제 나에게 익숙한 도시가 되었다”며 “새로운 것도, 즐길 것도 많지만, 배워야 할 것도 노력해야 할 것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살이 가중 중요한 미덕은 공감” 이렇게 현실의 나영이들은 자신들의 고단했던 서울살이를 풀어놓으며 마음속 답답함과 응어리를 풀어 버린 듯 보였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무대는 유쾌한 웃음바다였다. 무엇이 그들에게 위안을 주었을까? 그것은 ‘공감’이었다. 심리치료 소설을 쓰는 김형경씨는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며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이라고 말한다. ‘나영이 데이’ 참석자 조아영(24)씨는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 ‘공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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