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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2 10:50 수정 : 2008.06.12 15:55

시원한 화이트 와인의 향이 느껴진다.

[와인야화]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말보르 ①
고추보다 후추같이 매운 맛…여름에 제격
입에 달라붙고 혀에 끈적이듯 ‘착착’ 감겨

한 여름이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온다. 쏟아지는 비와 뜨거운 태양을 벗 삼아 나무들은 풍요로운 잎사귀들의 향연을 준비한다. 샐쭉하니 실눈을 하고 잎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면 시야는 뿌옇게 흐려지고 아찔한 몽환에 젖는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언제나 셰익스피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아스팔트의 묘한 열기는 사랑의 열정을 쫓는 처녀 허미아로 만들어 버렸다. 작은 심장에 알 수 없는 '낭만'이 피어올랐다.

콩닥거리는 열기를 팥빙수 얼음조각처럼 아삭아삭 식히기 위해 와인 전문가 S와 찾은 것은 청량한 화이트 와인이었다.

- 여름에는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죠?

= 맞습니다. 알콜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차게 해서 마시는 화이트와인은 더운 날 많이 마십니다. 여름철에는 맥주보다 많이 팔리는 곳도 있지요. 요즘 세계적으로 향기가 진한 뉴질랜드 화이트와인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잘 익은 소비뇽 블랑에선 배꽃향, 허브향 등 꽃향기가 납니다. 우리나라 경우 레드 와인이 8, 화이트 와인 2 정도 비율로 팔립니다. 이웃 일본은 6:4 정도지요. 요즘은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보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인기가 높아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엔 스파이시한 맛이 있어요. '스파이시'란 고추처럼 매운 맛은 아닙니다. 후추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요.

뉴질랜드산 화이트…대부분 청포도로 만들어

화이트 와인의 재료 청포도.
그가 고른 화이트 와인은 뉴질랜드산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말보르' . 킴 크로포드는 와이너리, 소비뇽 블랑은 포도 품종, 말보르는 이 와인이 생산되는 뉴질랜드의 지역 이름이다.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 청포도로 만든다. 붉은 포도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때는 포도를 부수자마자 껍질과 즙을 분리해야 한다. 와인의 붉은 색은 껍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의 장점은 무엇보다 향긋한 향과 가벼운 맛이다. 쉽게 친해지는 맛 때문에 '작업주'란 소리도 듣는다.

-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 모스카토, 피노그리 정도가 있지요. 가장 많이 팔리는 샤르도네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재배됩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퍼졌지요. 예전보다 비싸진데다 복잡한 맛이지만 깊이가 있어서 '와인의 여왕'이라는 소리를 들어요. 소비뇽 블랑도 프랑스가 종주국이기는 하지만, 미국, 뉴질랜드 등에서 만든 소비뇽 블랑 와인이 인기가 좋아요. 리슬링은 독일이 대표 산지입니다. 모스카토는 이탈리아 삐에몬테 지역에서 나는 품종인데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와인 '빌라 엠'이 이 품종으로 만든 겁니다. 빌라 엠은 워낙 우리나라에서 찾는 이가 많아서 한국인이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빌라 엠 뒤에 붙은 모스카토 명칭을 지웠다고 합니다. 드셔보셨지요?

- 네. 너무 달콤해서 한 자리에서 한 병을 후딱 마셔버렸지요. 처음 만난 어색한 남녀들이 많이 찾는다고 와인집 주인이 알려주더군요.

와인너리 돈나푸가타 화이트 와인. 돈나푸가타 와인은 포도를 말려서 만들기때문에 단맛이 강하다.
S가 화이트 와인에 쓰이는 포도 품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빌라 엠은 이탈리아의 와인회사 지아니 갈리아르도가 만든다. 알콜 도수가 5.5%이고 상큼한 과일 향과 라벨이 없는 투명한 와인 병이 눈에 들어온다. 누드 와인이 된 연유는 지아니 갈리아르도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고객에게 특별히 이 와인을 선사할 때 손으로 쓴 라벨을 붙여 주면서 유래되었다. S는 빌라 엠은 아주 단 디저트 케이크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추천한다.

샤르도네 중 신대륙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오크향이 많이 나는데,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포도품종 모스카토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돈나푸가타 와인너리 사람들.
"옛말에 요리를 전혀 못하는 며느리가 음식 대가 시어머니를 속이는 방법 중에 으뜸은 맵게 만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크향이 너무 진하게 나면 다른 향들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저렴한 신대륙 와인이 맛이 있는데 단점은 오크향이 지나치다는 것이지요. 미국 와인회사들은 오크통에 숙성시키지 않고 오크 조각을 띄워 향을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독일이 원산지인 피노그리는 요즘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이란다. 지금은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재배된다. 이탈리아말로 피노그리지오라고도 한다. 미국에선 소비뇽 블랑을 제치고 샤르도네 다음으로 많이 팔린다.

“열 가지 생선에 열 가지 와인, 최고의 디너”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말보르.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와인 비평가 로버트 파카는 한국음식과 잘 어울릴 만한 와인 품종으로 리슬링, 소비뇽 블랑, 게브르츠 트라미너를 추천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화이트 와인이다. 흰 살 생선은 화이트 와인, 붉은 색 고기는 레드 와인과 어울린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데, 채식 위주인 우리 음식의 특성과는 잘 안 맞는 건 아닐까?

"파카가 말하길 오래 전에 열 가지 생선요리와 열 가지 레드 와인을 함께 먹은 적이 있는데 최고의 디너 중에 하나였답니다. 하얀 요리는 화이트 와인, 붉은 요리는 레드 와인이라는 틀에 박힌 공식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 제 생각으론 음식 주재료보다는 오히려 소스 색깔과의 조화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S와 함께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말보르' 한 모금을 마셨다. 김치나 매운 우리네 음식과는 다른, 입에 착 달라붙고 혀에 끈적이듯 들러붙는 매운 맛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이 가뭄 끝에 단비를 맞아 춤추는 대지처럼 , 흔들거리는 큰 기쁨이 세포 마디마디마다 전해져왔다.

S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매운탕과 화이트 와인이 이 점에서 잘 어울립니다. 소비뇽 블랑은 향이 정말 끝내주죠. 질 좋은 사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섬세한 향이 피어오르지요. 향도 잘 살아있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은 애주가가 아주 좋아할 만한 술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자신의 가방에서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와인 한 병을 꺼내들었다. 독일산 리슬링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었다. 그 맛은 또 어떨까?

글·사진/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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