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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5 18:49 수정 : 2008.06.12 11:06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의 소수스플라이 부근의 모래언덕(듄).

[길따라 삶따라]나미비아 소수스플라이  
지평선으로 해가 뜨고 지는 130㎞ 사막 ‘진풍경’
끝없는 야생 꽃밭과 수시로 튀어나오는 동물들

모래와 바람의 땅 나미비아에서 빛과 그림자를 만났다. 붉은 사막과 쪽빛 하늘, 텅 빈 것과 가득 찬 것의 선명한 대비다. 해는 사막의 지평선에서 뜨고 지며 어둠과 밝음, 더위와 추위, 넘침과 모자람의 경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나미비아'란 원주민 나마족 말로 '광활한 빈 땅'이란 뜻이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남부 서쪽, 대서양 연안의 나라다. 광대한 사막과 험준한 고산지대로 이뤄진, 한반도 네 배 넓이의 땅에 150여 만 명이 산다. 해마다 각국에서 9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 모래와 바람이 빚은 경이로운 사막 풍경과 독특한 야생 동식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미브 사막은 나미비아 북부의 에토샤 국립공원과 함께 나미비아 최고의 관광지로 꼽힌다. 사막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나미비아 남서쪽, 대서양을 끼고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폭 90~130㎞의 사막이다. 끝없이 물결치며 빛과 그림자의 향연을 펼치는 거대한 모래언덕들은 오랜 세월 바람에 쓸리고 무너지고 다시 쌓여 이뤄진 것이다. 1억5천만 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내륙에서 흘러온 강줄기들은 이 사막을 만나 자취를 감춘다. 물은 모래밭으로 스며 사막 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빠져나간다. 사막 곳곳에 '~플라이'라는 지형이 흩어져 있다. 웅덩이를 말한다. 흐르던 강물이 모래에 덮여 호수를 이루고, 결국 물이 말라붙어 거대한 물웅덩이의 흔적만 남았다. 흰 빛깔의 마른 진흙이 깔린 이 웅덩이들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지금도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반짝인다. 나미브 사막의 여러 지형들을 둘러보는 전초기지 구실을 하는 소수스플라이도 이런 지역이다. 

나미브 사막 초지에서 만난 스프링복 떼.

해마다 90만 명이 발길…이름 난 새 차들의 시험주행 코스

소수스플라이를 찾아가는 길은 아프리카 남서부의 지형적·생태적 특성의 일부를 더듬는 여정이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남서쪽으로 320㎞, 나미브 사막 한가운데에 소수스플라이가 있다. 4시간 동안 바퀴에서 퉁긴 돌들이 쉼 없이 차 밑바닥을 때리는 비포장길이다.

16년 경력의 소수스플라이 관광가이드 요한 코이체(55)가 시속 120㎞로 질주하며 말했다. "이 길은 이름난 새 차 시험주행 코스다. 좀 전에 지나친 신형 벤츠가 그런 차량이다." 길옆으론 주민들이 '키다리 부시맨'이라 일컫는 억새를 닮은 풀(실리아타)들이 무성하게 깔려 은빛 바다를 이룬다. 좀더 멀리엔 제주도의 오름을 떠올리게 하는 언덕들이 무수히 솟아 있다. 시야를 더 넓히면 탁자 모양을 한 거대한 산들이 눈에 잡힌다. 오랜 세월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다.

나미비아 가이드 요한.
요한이 차를 세우고 길옆의 나무를 가리켰다. 나뭇가지에 초가집 이엉 모양의 커다란 풀더미가 얹혀 있다. 위버라는 이름의 작은 새들이 무리지어 사는 공동의 둥지다. 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높은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데 수십·수백 쌍이 함께 산다고 한다. 둥지의 아래쪽에 출입구들이 무수히 뚫려 있다. 둥지가 너무 커지면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수도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러 다가가자 요한이 "나무 밑을 조심하라"고 외쳤다. 나무 밑엔 새의 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코브라가 똬리를 틀고 있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야생 꽃밭들과 수시로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 오릭스·스프링복 무리와 타조·땅다람쥐 등 동물들로 비포장길 여행은 지루하지 않다.

나미브 사막이 본격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작은 마을 솔리테르가 나타난다. 소수스플라이 여행객들이 쉬어 가는 마을이다. 외진 곳의 마을이어서 솔리테르라 불린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숙소와 주유소, 애플파이 등 간식을 파는 매점을 갖춘 휴게소에 가깝다. 50여명이 거주한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며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린다.

새벽녘과 저물녘, 밝음과 어둠의 교차에 할 말을 잃다

소수스플라이 가는 길에 만나는 작은 마을 솔리테르.

솔리테르에서 한 시간 반가량, 드넓은 '억새밭'과 야생화 깔린 초지,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모래언덕들을 헤치며 질주하면 사막 속의 숙박시설인 소수스플라이 로지에 이른다. 주변의 멋진 모래언덕들과 세스리엠 협곡, 데드플라이 등 명소를 둘러보는 기지 구실을 하는 곳이다.

모래언덕들이 매혹적인 경관을 펼쳐 보이는 때는 새벽녘과 저물녘이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객들은 이 장관을 만나려고 해 뜨기 전 어둠 속에서 짐을 꾸린다.

이윽고 새로 밝아오는 모래언덕 앞에 선다. 햇빛은 지평선에서 곧장 직진해 와 지상의 돌출된 모든 것들을 덮친다. 하루 동안 끌고 다녀야 할 길고 긴 그림자를 하나씩 달아 준다. 모래언덕들은 순식간에 빛과 어둠으로 나뉜다. 여행객들은 이 명백한 음영의 칼능선들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그것은 선과 악을 가르는 신의 냉혹한 시선, 삶과 죽음의 경계선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회색빛으로, 빛과 어둠을 버무린 안갯속 삶을 살아온 나그네 앞에 이 명확한 갈라짐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침묵 속에 셔터를 눌러대던 나그네들이 선택하는 길이란, 다시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 것이다.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의 칼능선을 오르며 좌우로 나뉜 빛과 어둠의 세상을 내려다본다. 이 경계를 부단히 넘나드는 것들은, 새벽 이슬을 받아먹으려 모래 속에서 몸을 드러낸 딱정벌레들과 딱정벌레를 노리는 도마뱀들이다. 이들의 활동이 잦아들 무렵 나그네들의 발길도 뜸해진다. 강렬한 태양 아래 빛과 그림자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사막은 다시 숨 막히는 모래밭이 된다.

뚜렷한 음영과 400년 묵은 고사목, 지구촌 사진가들 유혹

거북등처럼 갈라진 데드플라이 바닥.
특이한 모양의 모래언덕(듄)들엔 모양과 크기, 빛깔에 따라 번호가 붙어 있다. 번호를 가진 언덕이 150개에 이른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듄45'다. 굽이쳐 오른 모래언덕의 칼능선이 장관을 이룬다. 해발 590m, 표고 159m짜리 모래언덕이다. '빅 대디'라는 듄17은 표고 375m로 가장 규모가 크다.

안내인 요한은 듄45로 가기에 앞서 번호가 붙지 않은 '새 듄'을 볼 것을 권했다. 덜 알려진데다, 능선이 가팔라 해뜬 직후 음영이 뚜렷하고, 무엇보다 '새 듄'의 모래언덕 앞에 선 나무가 경관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요한이 말했다. "이 시각 듄45는 여행객들이 몰려 그림을 망친다. 새 듄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800m 떨어진 듄45로 가도 늦지 않다." 사진가이기도 한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행객들이 침묵 속에 사진기 셔터만을 눌러대는 또다른 볼거리가 데드플라이다. 소수스플라이 주차장에서 4륜구동 오픈카를 타고 모래길을 10여분 달려야 한다. 데드플라이 들머리 아카시아나무 숲에 차를 대고 20분 가량 모래밭을 걸으면 고사목이 가득 우거진 희고 둥근 웅덩이가 나타난다.

말라붙은 드넓은 호수의 진흙바닥에 수십 그루의 시커먼 고사목들이 박혀 있다. 거대한 고사목(일종의 아까시나무) 전시장이다. 400년 전 강이 모래에 덮이며 호수가 생겼고, 물이 증발하자 나무들은 죽었다. 황량한 웅덩이를 더 황량하게 하는 건 까마귀들이다. 까치의 몸을 하고 까마귀 울음을 우는 새들이 사신처럼 고사목 가지에 앉아 마른 호수를 지킨다.

요한은 바닥에 찍힌 새 발자국, 여행객들의 발자국을 가리키며 "우기엔 잠깐씩 바닥에 물이 고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진흙바닥과 고사목들을 찍으려는 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바위절벽 붉은 해넘이 장관 보며 붉은 와인 한 잔

데드플라이의 고사목들.
평지에 오랜 세월 물이 흐르며 파여 나간 끝에 만들어진 세스리엠 협곡도 장관이다. 200만년 전에 형성된 길이 2.5㎞, 깊이 30여m의 협곡이다. 제비들이 깃들어 사는 계곡의 바닥으로 내려가 볼 수 있다. 일부엔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

소수스플라이엔 경비행기 투어도 있다. 물이 흐르다 사막으로 스며들어 말라붙은 하천의 흔적들과 수많은 모래언덕들이 굽이치는 경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사막을 횡단해 대서양 바다를 굽어본 다음 돌아오는 1시간짜리 투어다.

숙소에서 진행하는 해넘이 투어도 참가할 만하다. 해질 무렵 10인승 오픈카를 타고, 4만5천㏊에 이르는 광막한 자생 '억새'(실리아타) 벌판을 가로질러, 거대한 바위절벽 앞에 도착해 해넘이를 감상한다. 저무는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바위더미 앞에서 사람들은 와인을 들며 해넘이를 지켜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단 한 잔 하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볼 일이다.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쌀뜨물을 끼얹어 올려붙인 듯한 은하수를 배경으로 참으로 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보름달에 가까운 달빛이 눈부신데도 별들은 제빛을 잃지 않고 반짝인다. 북반구에서 흔히 보던 오리온자리는 북녘 지평선에 걸려 있고, 낯선 남십자성이 중천에 또렷이 박혀 있다. '억새'밭에는 달빛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일렁이며 풀벌레 소리를 키운다. 진한 달빛에 취해 잠시 호흡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소수스플라이(나미비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나미비아 소수스플라이 여행정보

산족(부시맨)의 선사시대 암벽화. 빈트후크의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찍었다.
나미비아는 우리나라(한반도)보다 네 배쯤 크다. 1990년 남아공에서 독립했다. 13개 부족의 원주민들이 28가지 언어를 쓴다. 오밤보족이 50%를 차지한다. 영어도 공용어로 쓴다. 90년 남북한이 동시에 수교했으나 94년 동시에 공관이 폐쇄됐다.

여행 적기는 겨울인 6~10월. 아침저녁으론 선선(섭씨 12~15도)하고 한낮엔 35도에 이른다. 따갑기는 하나 건조해 무덥지는 않다. 일교차가 크므로 긴 팔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시차는 남아공이 한국보다 7시간 늦고, 나미비아는 8시간 늦다. 화폐단위는 나미비아달러. 10미국달러=70나미비아달러, 1만원=70나미비아달러. 남아공의 란드도 1 대 1로 통용된다.

홍콩에서 남아프리카항공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인천공항~홍콩 3시간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20분, 요하네스버그~나미비아의 빈트후크 2시간.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는 2010년 월드컵이 열릴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등과 나미비아의 소수스플라이 일대를 다녀오는 9박10일(기내 2박)짜리 여행상품을 내놨다. 1인 395만원(유류할증료 포함). 4인 이상 매일 출발. 여행 뒤 마일리지 1만5000포인트도 적립해 준다. (02)775-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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