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칠드 가문을 일으켜 세운 마이어 암셀 로스칠드의 다섯 아들과 로스칠드 가문의 문장(맨 마지막 사진). 가문의 문장에서 다섯개의 화살은 유럽의 다섯 도시로 간 아들들을 상징한다. 사진 바롱 필립 드 로스칠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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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야화]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 칠레 2006) ②
붉은 색 상표 덕에 한때 ‘붉은 악마’에게 인기
시간이 꽤 흘렀다. 밤이 깊어지자 와인바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제법 들었다. 여기저기서 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로 간간이 웃음소리도 퍼졌다. 붉은 와인이 혓바늘 곳곳, 세포 하나하나를 적시듯 사람들의 흥도 점차 고조돼가고 있었다. 와인전문가 S가 ‘에스쿠도 로호’ 한 잔을 한 입 가득 물고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맛을 봤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입안에 ‘에스쿠도 로호’를 밀어 넣었다. 내 첫 느낌은 쓴맛. 전문가인 그의 맛 느낌은 어떨까?
“신맛이 조금 있고 탄닌(떫은 맛)은 중간 정도, 알콜은 좀 높은 듯하네요. 알콜 맛이 쓴맛으로 이어지죠. 단맛은 약하고 바디(물무게감)는 중간 정도입니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맛있어요.”
입 안에 느껴지는 무게에 따라서도 3가지로 나눠
아리송한 맛이다. 그는 와인의 맛을 감별하는 기준엔 6가지가 있다고 일러줬다. 신맛(산도)과 단맛(당도), 떫은맛(탄닌), 쓴맛(알콜)의 4가지 맛과 바디감(물무게감), 피니시(잔향)가 그것이다.
다른 건 대충 알겠는데 ‘바디감’이라? 생소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바디감이란 와인을 마셨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말한다. 예를 들면 물과 꿀차를 마셨을 때 다른 느낌 같은 것이다. 물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그 보다 끈적거리는 꿀차는 무겁다. 바디는 풀바디와 미디엄바디, 라이트 바디로 나눌 수 있다. 풀 바디가 우유를 마셨을 때 느껴지는 입안의 감이라면 라이트 바디는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때의 무게감이라고 보면 된다.
술을 마실 때마다 매번 복잡하게 머리 속에 이 여섯 가지를 떠올리며 마시다 술자리 흥을 깨는 건 아닐까? 하지만 좋은 음악은 귀에 익어야만 그 깊이를 더 알게 되듯 와인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탐구해 볼 숙제다.
그가 자신이 갖고 온 ‘샹볼 뮤지니’를 마셔볼 것을 권했다. '샹볼 뮤지니'는 프랑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와인 중의 하나다.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한 모금 들이켰다. 조금 전 ‘에스쿠도 로호’와는 180도 다른 느낌이 입안에 확 번진다. 장미정원에 온 듯한 분위기랄까. ‘에스쿠도 로호’가 끈적끈적 달라붙는 듯하다면 ‘샹볼 뮤지니’는 바람이 솔솔 통하는 시원한 비단이 연상됐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샹볼 뮤지니에선 볏짚과 감초 맛이 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와인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뤘다. 그가 에스쿠도 로호와 함께 이 와인을 마셔보라고 한 이유는 같은 술이지만 이렇게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바로 와인의 매력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혀가 구분할 수 있는 네가지 맛과 바디감, 피니시 중에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균형)가 완벽한 와인을 가장 좋은 와인으로 꼽았다. ‘붉은’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왠지 사람을 아프게 한다 빙글빙글 와인 잔을 돌리며 조금씩 마시다보니 붉은 와인라벨이 상처 입은 심장처럼 취기에 실려 눈 안에 아프게 들어왔다. ‘붉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왠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듯하다. 취기가 오르는 탓인가. - ‘에스쿠도 로호’가 무슨 뜻인가요? = 스페인어로 ‘붉은 방패’란 뜻입니다. 한때 붉은 색 때문에 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에게 인기가 있었다더군요. 붉은 방패는 독일어로 ‘Rot Schild’인데 이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로스칠드가 되지요.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은 로스칠드가 낯익을 겁니다. 유명한 와인 ‘샤토 무통 로스칠드’와 ‘사토 라피드 로스칠드’를 만든 로스칠드(Rothschild) 가문과 ‘에스쿠도 로호’는 아주 큰 연관이 있어요. 로스칠드 가문의 역사를 알지 않고는 ‘에스쿠도 로호’를 만든 이들을 알 수 없지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로스칠드 가문을 와인명가로 만든 바롱 필립 드 로스칠드의 젊은날. 사진 바롱 필립 드 로스칠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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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있는 로스칠드 와인너리(위)와 로스칠드 양조장(아래). 사진 바롱 필립 드 로스칠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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