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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4 16:21 수정 : 2008.03.24 18:16

잔에 담긴 와인

음식사진도 다큐다

카메라로 먼저 ‘시식’…인터넷 올려 입맛 유혹
음식 얼굴 시시각각 바뀌어 ‘순간 포착’ 필수

어느 요리사의 작업실.

형형색색의 접시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찬장을 뒤로 한 채 요리사가 ‘따끈한 우동’ 만들기에 들어갔다. 막 봄이 시작되려는 철이지만 바깥 바람은 아직 좀 차다는 점을 고려해 선택한 요리다. 옆에 있던 사진가가 익숙한 솜씨로 테이블에 조명을 설치한 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함께 따라온 후배사진가가 일을 거든다.

이윽고 따끈한 우동이 완성돼 테이블로 옮겨왔다. 이제부터 사진가 차례다. 그는 우선 우동에 잘 어울리는 색깔의 그릇을 골랐다. 배경에는 음식이 잘 드러나게 보색의 천을 깔았다. 소품은 금수저와 꽃을 이용하기로 했다.


금세 사라진 모락모락한 김 어쩌나…

하지만 셔터를 몇 번 누르지도 않았는데 우동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사라지고 말았다. 김은 우동 사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인데 큰일이다. 찬 바람이 부는 날 구미를 당기게 하는 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그만인데 말이다.

사진가가 묘안을 짜냈다. 그는 후배에게 담배 한 갑과 중간 크기의 빨대 한 다발을 사오라고 주문했다. “담배 세 개비 피워 물고, ‘큐’ 소리 나면 연기를 내뿜어.” 선배의 말에 따라 후배 사진가가 우동 그릇 한 쪽에 쪼그리고 앉아 국물 안에 빨대를 꽂은 뒤, 큐 사인을 따라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그러기를 몇 십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우동 사진을 남긴 채 담배 한 갑이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음식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업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프랑스요리 - 샬롯을 곁들인 농어요리

“먹는 사람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 그대로 재현하라”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외식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주말이면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음식점들은 외식을 즐기러 나온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북적댄다. 그런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카메라로 음식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휴대폰에도 디지털카메라 기능이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보니 제각기 호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나름의 앵글로 사진을 찍어대기 바쁘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또 블로그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저마다 뭇사람들의 시선 잡아끌기 경쟁을 벌인다. 잘 찍은 사진엔 무수한 댓글이 달라붙기도 한다. 실제 허기를 자극하는 것은 후각보다 시각이 효과적이라는 말도 있다.

음식사진은 어떻게 찍는 게 좋을까?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음식사진일까? 전문가들의 조언은 간단명료하다. 실재처럼 찍으라는 것이다. 먹는 사람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 그대로 재현하라는 얘기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듯이.

10년 경력의 음식사진작가 박태신(월간 <쿠캔> 포토디렉터)씨는 이렇게 말한다.

“식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감이 잘 드러나야 한다. 반짝거리는 느낌, 따스한 분위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치킨티카머설라커리

빛의 방향이나 강도 등에 따라 천의 얼굴로

그가 말하는 멋진 음식사진의 첫 단계는 음식에 대한 이해다. 음식에 쓰인 오렌지가 어떤 품종인지, 어떤 자연환경에서 자란 것인지 등에 대한 사진가의 이해도에 따라 음식사진을 살려주는 각종 소품도 달라진다. “예전에 우리가 서양요리를 잘 몰랐을 적에는, 메인요리를 먹기 전에 나오는 음료가 메인요리와 함께 찍히는 경우도 있었다”고 박씨는 회고한다.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사진 속에서 실제와 다른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인도요리를 찍으면서 유럽 식탁에 오르는 잔과 포크를 사용할 수는 없잖은가. 아는 만큼 애정이 생기고, 애정의 깊이만큼 카메라 안에 음식이 푹 녹아들어간다.

그 다음 음식사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명이다.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도 빛의 방향이나 강도 등에 따라 천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래서 전문사진가들은 최고의 빛을 만들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빛을 제대로 만들어 내야만 맛있게 요리된 음식의 제맛을 영상 속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탑 조명(음식의 꼭대기에서 비추도록 하는 조명)을 주광으로, 스팟조명(특정영역만 강하게 비추는 조명)을 보조광으로 삼는다.

번쩍번쩍! 촬영에 들어가면 사진 스튜디오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순간순간마다 음식의 얼굴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사진을 찍는 덴 순발력이 중요하다. 녹색 채소가 시들해지기 전에, 국의 김이 사라지기 전에, 소스가 굳어서 딱딱해지기 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다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완벽하게 똑같은 요리란 세상에 없다.

태국요리 - 파퐁가리탈레

검은 그림자 지면 맛 떨어져…30~60도 정도 경사각이 딱!

사진가 박태신씨는 질감 뿐 아니라 색 재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엔 각종 색 필터를 이용해서 국이나 찌개는 좀더 따스한 느낌을 만들곤 했는데, 요즘엔 디지털 카메라 등장으로 카메라에 내장된 색온도 조절 기능을 사용한다”고 했다. 저급사양의 디지털 카메라에는 색온도 조절 기능이 없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흰색 종이가 훌륭한 대체재 노릇을 한다. 카메라 메뉴에서 ’사용자 설정 화이트 발란스 모드’로 변경하고 흰색 종이를 프레임 가득하게 채워 넣고 색을 맞추면 된다. 아무리 붉은 조명이나 노란 색 조명에서도 음식 색을 재현할 수 있다. 내장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장 플래시는 태양광을 기준으로 만든 인공조명이다. 이때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음식사진에서 검은 그림자는 피해야 할 요소다.

이제 카메라 앵글 안으로 음식을 갖고 들어올 차례다. 렌즈를 어떤 위치에 갖다 놓을까? 언제나 고민스러운 구도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음식사진을 찍는 데 가장 좋은 위치는 사람의 눈높이다. 내가 식탁에 앉았을 때 요리가 보이는 위치, 그 곳에서 가장 편한 카메라의 시선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각도로 치면 대략 30~60도 정도의 경사각이 나오는 위치다. 위치가 정해졌다면 셔터를 눌러보자. 찰칵!

팁 1: 음식점에서 음식사진 잘 찍는 법.

최대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는다. 자연광은 음식의 색을 살린다. 식탁에 냅킨이나 흰 종이를 이용해서 강한 빛을 반사시켜 음식에 빛이 더 가도록 한다.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디지털 카메라의 화이트 발란스나 색온도 조절 기능을 이용한다. 내장플래쉬를 터뜨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팁 2: 음식사진 찍을 때의 예절.

요리사에게 당신의 음식을 찍어도 되냐고 정중하게 묻는다. 요리사에게 요리는 자신의 혼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술 전시장에서 그림을 함부로 찍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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