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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2 10:00 수정 : 2007.10.02 10:27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둥근 아치형 천장이 자리를 나누고 있다.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⑬ 똥광
홀 너머 안쪽 테이블서 ‘진한 사랑’ 나누기 제격
‘어디에도 없는 여행정보’ 주인장에 알려주기도

한 대학의 홍보를 맡은 직원이 총장에게 혼이 난다. “도대체 이걸 홍보포스터라고 만든 거야” “아 그게....총장님, 학교 이름을 최대한 많이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포스터에는 달랑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세명입니다’ 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이 대학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하하하. 세명대학교다. 믿거나 말거나!

간혹 라디오에서 이 대학 홍보 방송이 나오면 웃음이 터진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유명한 소설가 김진명이 교편을 잡고 있는 곳. 정말 이런 포스터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 없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어온 걸 보면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니지 않을까! 그 직원의 재치가 멋지다.

어느날 휘청휘청 동교동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어? 이 골목이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긴 공백의 시간 동안 익숙했던 공간은 먹을거리와 옷, 멋진 소품들이 즐비한 색다른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그 틈에 화투장 똥광이 걸려 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이집을 설명해 주는 것은 똥광 그림의 판때기뿐이다. 왠지 주인장은 세명대학교의 그 직원처럼 재치가 번득이는 사람일 것 같다.

안이 훤히 보이는 <똥광>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둥근 아치형 천장이 구획을 나누고 있다. 어라, 테이블이 재봉틀이네! 우리네 어머니들이 많이 사용했던 재봉틀이 곳곳에 놓여있다. 자리에 앉자 잘 생긴 주인장이 주문을 받는다.

진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연인이라면 홀 너머 안쪽 자리에서 한잔해도 좋다.

원래 의상실이었던 이곳을 먹을거리 공간으로 바꾼 것은 주인장의 형들이다. 여행업을 주 업무로 하는 농협 자회사에서 여행 코디네이터로 일 했던 주인장은 98년부터 이집을 떠맡게 됐다. 원래 사람 만나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주인장은 형들이 떠난 이 둥지를 멋지게 장식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동안 할 생각이 없었단다. 하다보니 단골들이 생기고, 그들로부터 음악, 요리를 배우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 공간에 정이 들었단다. 호텔 주방장도 단골인데, 그가 오면 손수 주인장에게 요리 강습을 한단다. 2, 3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손님들도 있고, 벽에 출석부를 그려 넣고 올 때마다 표시하는 단골들도 있단다. 주인장은 이들을 위해 꼭 이 곳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요리는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 진다. 작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어묵은 계속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이곳의 음식 맛이 아주 특별하고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요상하게 구획이 나누어진 이곳에서 술도 밥도 맛나다.

테이블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테이블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진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연인이라면 홀 너머 안쪽에서 한 잔 해도 좋을 듯하다. 갑자기 음흉한 상상이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한잔한 후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이 많다. 그래서 데이트하던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는 부부도 많단다. 우연히 전 직장 동료도 이곳에서 데이트 하다가 결국 웨딩마치를 올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김치전과 함께 맑은 소주 아니 다른 술이라도 한잔하다 보면 아마 손등, 눈빛에 애정이 송골송골 맺힌다. 바로 그때 은은한 재즈 음악이 귓가를 맴돌면, 창 가까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전화기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벽에 출석부를 그려놓고 올 때마다 체크하는 단골도 제법 있다.
세명대학교 포스터만큼이나 똥광 간판은 재치가 번뜩이고 눈에 띈다. 삶은 어쩌면 이런 작은 웃음으로 지탱되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 유난히 지친 당신이라면 이런 미소를 찾아 거리를 헤매보시길….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전화번호 325-3067
영업시간 오후 6시~다음날 새벽 4시
메뉴 김치전 외 9천원 / 조개탕 외 1만원 / 동태찌개 외 1만1천원 / 음료 2천원 / 술들 3천원~6천원

* 귀뜸 한마디 결혼하고 싶은 그 사람과 함께 이곳에서 한잔하라. 홍대 주변에서 1차 먹은뒤 2차로 가기 좋은 곳. 주인장에게 좋은 여행 스케줄을 물어보면 일정을 비롯한 각종 정보(어디는 꼭 가야 되고 어디서 사진 찍으면 잘 나오고 등)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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