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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0 14:45 수정 : 2007.05.03 15:14

후루룩 국수 한 젖가락이면 뱃속이 든든해진다.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 하다> 연재
국수와 파전의 무아지경에 빠지다 ‘무아국수’편

K군은 뛴다. 큰일이다. 오늘 만나야 할 여자들 숫자를 다 채우지 못했다. 아마도 종합인구국에서 또 난리를 피울 것이 뻔하다. 손목시계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K! 당신은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수감이다.” 에어버스가 3000m 상공을 나른다. 아,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 여자들을 만나는 것, ‘관계’를 하는 것, 모두 너무 힘들다. 사랑은 없다. 과거 2000년대 남자들이 부러울 뿐! 지구를 공해 천지로 만든 조상들이 원망스럽다.

어쩌면, 3000년대가 되면 후손들 중에 이런 청년이 나올지 모르겠다. 여성의 숫자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지구는 생존을 위해 이런 방법들을 선택할지 모른다. 최근 영국 과학 전문잡지 <네이처>는 브라질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염도가 높은 지역에서 여아 출생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여성이 공해처럼 인류에게 부정적인 요소에 맞서 여아출산율을 늘려 자연스레 종족을 보존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남성의 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X염색체보다 공해에 대한 저항력이 낮다는 해석도 있다. 어찌되었든 ‘생존’을 위해서라면 변화하고 열심히 달릴 수 밖에!

생존에 한가운데에는 먹을거리가 있고 그 먹을거리 한가운데에 <무아국수>가 있다. 아무리 3000년대가 되어도 무아국수가 주는 생의 기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안암동에 있는 <무아국수>는 2명의 사내가 만든, 국수 맛이 기가 막힌 곳이다. 두 사람은 고향, 학교, 선후배 사이로, 부산을 거점으로 20년 넘게 맛난 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느 날 죽이 맞아서 신기한 국숫집을 열었다.

우리 전통문양과 글자가 맛깔스러운 국수처럼 정겹다.


그냥 왠지 국수를 만들고 싶었던 이들은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많은 국수를 먹어봤다. 그 결과, 부산에서 유명한 ‘구포국수’면을 매일 공수해 오기로 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구포국수’는 역사가 오래된 면발이다. 국물은 최상의 멸치로 우려낸다. 멸치의 질은 금세 국물로 드러나기 때문에 아무 거나 쓸 수가 없단다.

소설가인 주인장은 1주일에 한 번 서울에 올라오고, 이곳은 거의 박영환 실장이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배워서 지하 창고였던 이곳을 역사가 묻어 있는 퓨전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상하게 일본 분위기가 느껴진다. 국수 하나 후딱 말아 먹고 삶의 터전으로 향했던 우리네 근대사를 반영한 것이란다.

실내에 들어서면 국수 하나 후딱 말아 먹고 삶의 터전으로 향했던 우리네 근대사가 느껴진다.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먹고, 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해서 먹으면 알록달록 기분이 좋아진다. 실내 분위기는 현재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연세 많은 주인장의 문학적인 기질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실내 분위기에 취해 누구든 심순애와 이수일이 되어버린다. “에라,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국수를 다오~ 파전과 함께!”

흑갈색 젓가락에 국수 면을 돌돌 말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살짝 까치발를 하고 고개를 내밀면 금세 춥고 차가운 언 바람이 작고 보잘것없는 슬픈 가슴으로 냉큼 스며들어 온다. 이럴 때 정종만 한 친구가 없다. 정종 한잔, 파전 한 입 그리고 후루룩 국수 한 젓가락이면 뱃속이 든든해진다.

국수와 파전을 먹고나서 무아지경에 빠지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는 <무아국수>. 현재는 안암동과 종암동에만 있지만 앞으로 지점을 더 만들 계획이란다. 물론 모두 직접 꾸려 갈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국수 맛을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흑갈색 젓가락에 국수 면을 돌돌 말아 먹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3000년대 K군이 이 국수를 한 입 맛나게 먹는다면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시대적 과업을 완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헤죽헤죽 웃음이 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찾아가는 길
위치 서울 성북구 안암동
전화번호 02-927-7050
영업시간 오전 10시~다음날 새벽 1시
메뉴
정종·막걸리 3000원
국수류 2500원~4500원
파전류 5000~9000원

* 귀띔 한마디 6호선 안암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주차장 있다.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 하다> 연재에 들어가며

어찌하다보니 먹을거리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출간했다. “사진기자가 어떻게, 왜?” 라고 질문을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 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리와 사진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각가지 재료와 여러 가지 기자재가 필요한 것도 비슷하다. 한 품, 한 장이 나올 때마다 들여야 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 둘은 아주 창조적인 냄새가 난다. 한겨울 따스한 태양처럼 반짝이는 창조적 향기, 아마도 그 향기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듯하다. 지금부터 연재할 맛집들은 두 번째 책 <박미향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에 수록된 것들이다. 서문에도 적었지만 그저 독자들이 제발 맛나게 즐겼으면 한다. 때로 짜고, 때로 너무 달아도 그저 이런 곳에 이런 삶과 맛이 있구나 하면서 넓은 아량으로 웃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주인장들의 삶만큼 독자들의 시간들도 쫄깃하고 푸짐한 것이 되길 역시 소망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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