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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09 15:27 수정 : 2009.02.09 00:17

재벌가의 후손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27세의 젊은이가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후,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평생을 수도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다 득도하여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면, 아마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천년 전에 실제로 있었다. 고모부가 왕이며 고모 3명이 왕비출신이고, 할아버지는 최고의 권력을 쥐었던 실력자 이자연이었다. 권력실세 이자겸과도 사촌지간인 그의 집안은 법상종(“사람은 누구나 성불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문벌귀족을 대변한 불교의 한 종파)을 소유하다시피 할 정도로 권력과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대 최고 집안출신이지만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기인처럼 살다간 그가 바로 청평거사라 불리었던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다.

봄내(강원도 春川)는 이름 그대로 봄이 되어야 강다운 강들로 둘러 싸인다. 북녘의 금강산과 남녘의 설악산에 겨우내 얼었던 눈이 봄 햇살에 녹아, 봄내에서 합쳐질 즈음 비로소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방 약 50km에 이르는 분지로 이루어진 춘천을 이중환 (택지리의 저자)은 가장 살기 좋은 고장 중 하나로 꼽았다 한다.


시내를 중심으로 북쪽에 나란히 용화산과 오봉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데, 천년 전 그 오봉산에 부인과 사별한 젊은 이자현이 숨어든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중창한 사찰 주변을 자신의 수련도장이자 기도처로 만들고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현실정치와는 일정한 선을 긋고, 불교교리 연구와 참선으로 한 생을 보냈다. 역설적이지만 지탄의 대상이었던 그의 집안에 그나마 이자현이 있어 다행이라 할만하다.



경운산이라 불리었던 산간 계곡의 사찰은 한눈으로 보기에도 도적들이 숨어들기 좋을 법한 곳인데, 자현이 들어와 조용해지고 평정되었다 하여 보우국사가 청평사(淸平寺)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오늘날엔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너무나 유명해졌다. 오랫만에 찾은 그곳은 여전히 손잡은 쌍쌍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경춘선을 타고 직행버스로 갈아탄 후,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도착해, 계곡을 낀 오솔길을 한동안 걸어야 도착하는 그 곳은 사랑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인 것이다. 분명 이자현의 따스한 사랑얘기가 넘실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양강에 인공댐을 만들듯 청평사 일대로 인공의 손길이 많이 닿았지만, 분위기 만큼은 여전히 좋았다. 예전에 이자연이 곡식을 빻아 먹었던 디딜방아가 사라져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영지가 훼손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족했다. 절 좌우와 뒷편으로 조성된 이자현의 손길을 더듬어 보려는 욕심은 뒷날로 미루고, 배시간이 끊겼다 하여 서둘러 하산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정상급이라고 한다. 쉽게 만나 사소하게 헤어지는 세태속에 1000년을 두고 내려오는 이자현의 아내사랑과 청평사 상사뱀 전설은 우리에게 새삼 사랑의 의미를 되짚게 만든다.



* 최근엔 배후령 방면으로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해 짐.
* 청평사 아래 고려산장에서 숙식 가능
* 추천 맛집-http://wnetwork.hani.co.kr/gaga/view.html?blog_board=4&log_no=2341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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