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1.18 16:21 수정 : 2007.01.18 16:21

여행은 교감이다. 나무와 공기와 햇빛과 하늘과 나만이 존재하던 순간. (광릉 수목원)

소설가 황순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1970년대 장편 <움직이는 성>을 통해 말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이후 농업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정착과 안정을 위해 살아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떠남’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가슴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날 문득 문을 두드린다. 지독한 향수처럼, 마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어딘가에 존재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을 애태운다. 누구나 가끔씩은 떠나고 싶어 한다. 집과 직장, 자신이 거하는 처소 곳곳에서 벗어나 한번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조차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쩍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우리들이 남몰래 꿈꾸는 로맨스를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 드라마이다. 오늘날 한국 드라마들 중 대부분은 타지에서 인연을 만나게 되는 설정을 한다. 오히려 현실의 만남은 지극히 일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욕망을 충실히 대변하는 것이다. 여행은 그러나 단순히 욕망 충족으로서 하나의 일탈이 아니다. 여행 중에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진정 새롭고 새롭다. 여행 속에는 사람과의 만남이 있고, 거대한 자연도 있고,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우여곡절의 상황들이 널려있다.

사람과의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동안 몰랐던 그 누군가의 존재를 알게 되는 신기한 순간이다. (캄보디아)

여행 중에는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던 작은 생명체 하나에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태국 푸켓의 나비정원)

여행은 동행자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접하는 의외성은 실로 매력적이다. (인천 차이나 타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은 때로 자신을 잠잠하게 만든다. 나 개인을 벗어나 이 세상 전체를 묵묵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 (광릉 수목원)

여행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다. (갑자기 스쳐가던 비, 앙코르 와트)

여행 중에는 예민해지고, 세심해진다. 오징어가 가슴에 와닿던 순간. (추암 해수욕장)


독일인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하나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목적이 있는 소극적 자유는 참다운 의미로서의 자유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여행은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물질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유’가 되어야 한다.

한번쯤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당신은 지금, 여행이라는 이름의 문 앞에 있는 뜰 안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이미 뜰 안에 있는 당신은 망설이고 있지만 결국 그 문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문은 잡아당겨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밀기만 하면 언제 닫혀 있었냐는 듯 활짝 열린다. 몸을 부딪혀 무작정 밀어보는 것,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아마도 단숨에 여행의 문턱을 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