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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1 17:15 수정 : 2007.01.11 17:15

화엄사

새벽3시, 고요한 산사의 선방
108배뒤 ‘참나 찾는’ 참선시간
번뇌 망상 하나씩 내려놓고
발우공양 하며 ‘공생’ 깨달음을

화엄사 탬플스테이

아직 미명에 휩싸인 화엄사 산문을 들어서자 차가운 새벽 공기에 맑은 소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100평 남짓한 범음료(선방 이름)에는 포교국장 대요스님과 더불어 새벽 3시 도량석을 시작으로 법당에서 예불과 108배를 마친 수련생 20명이 아침 참선에 빠져 있다. 서울과 경기도, 부산, 마산 등에서 모여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잿빛 승복 차림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544년 백제 성왕 22년에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화엄사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천년 고찰의 정갈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템플 스테이를 하기에 좋은 대가람이다. 올 여름에는 외국인 500명을 포함해 모두 1500여명이 화엄사를 다녀갔으며, 겨울에는 지금까지 300여명이 참가했다. 직장인이 가장 많고 교수와 교사, 학생, 자영업 등 직업도 다양하다. 대요 스님은 “템플 스테이가 끝나 묵언을 풀고 산중법담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보면 뜻밖에 불교 신자보다 가톨릭 신자들이 더 많다. 개신교인들도 더러 눈에 띈다”고 귀띰한다.

화엄사
산사의 생활 자체가 구도과정이지만 특히 참선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 번민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대요 스님이 앉는 자세와 호흡법을 설명한 뒤 화두를 툭 던진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참 주인공이 있는데 그 주인공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과연 어떤 것이 참 나인고?” 이따끔 한점 바람이 무심히 울리는 풍경소리만 청아하게 들릴 뿐 고요한 정적이 선방을 감싸고 있다. 모두들 화두를 좇아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해 보느라 미간마다 골이 새겨진다. ‘나는 과연 무엇인가’ ‘참 나를 찾았는가’

아직 새벽잠이 덜 깬 김한결(8·서이초등2학년)이 터져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가리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의자 생활을 해오다 가부좌로 앉아 있으려니까 불편했는지 이따끔 몸을 들썩거리다 몰래 아빠 김정규(41·토목설계사·서울 서초구 서초1동)씨의 눈치를 본다. 묵언수행 중에는 일체 소리를 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여유가 참 없는 것 같았어요. 방학을 맞아 아이와 단 며칠이라도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저도 세 시간 이상 앉아서 제 자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 것은 처음입니다. 아이도 저도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한결이도 “108배도 힘들었지만 참선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형아랑 싸운 것을 많이 반성했어요. 앞으로는 많이 안 싸우겠다고 결심도 했고요”라고 털어놓았다.

올해 대학진학을 앞둔 최문주(19·마산성지여고3) 양은 “기대한 만큼 시험을 못 쳐서 방황하다가 이러다가는 대학에 가서도 방황할 것같아서 템플스테이를 삶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어서 혼자서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참선을 하면서 고3 때 힘들었던 일과 후회스러웠던 일, 부모님께 죄송했던 일 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괴로왔다”면서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대학에 가서 전공하고 싶은 법학이 과연 내 적성에 맞는지, 앞으로도 열심히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침 참선을 끝내자 발우공양이 시작된다.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갖는 평등공양의 뜻이 담겨 있다. 조금도 낭비가 없는 절약공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대요 스님이 가볍게 죽비를 세번 치자 모두를 합장 반배하고 발우를 펼친다. 또 죽비가 한번 울리고 선정의 자세에서 어시발우와 국발우, 천수발우, 반찬발우에 절 음식을 조심스레 받는다. 정갈한 산나물이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욕심을 내어서는 안된다. 공양에서는 밥 한톨도 남겨서는 안 되므로 먹을 만큼만 받아야 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비록 입에 맞지 않는 절 음식이지만 ‘오관게’를 외고 공양을 하는 모습이 짐짓 근엄하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함께 나눠 소박하게 먹는다. 공동체의 단결과 화합을 이루는 공동공양의 정신이 엿보인다.

밥을 먹고나면 천수발우에 담긴 천수로 발우들을 깨끗히 헹군 뒤 퇴수통에 모은다. 퇴수통에 고춧가루와 밥알 찌꺼기가 보이자 대요 스님이 그 물을 나눠 마시게 한다. “발우공양은 이 시대의 가장 맑은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춧가루 한개도 남겨서는 안되는 청청한 식사법이죠.” 모두들 퇴수를 받아 마시며 괴로워 하는 표정들이 역역하다. 헛구역질을 하는 이도 있다.

원주 스님인 덕제 스님이 아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에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귀라는 동물이 살고 있는데 배는 태산만 하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작다고 한다. 스님들이 먹고 남은 고춧가루 하나라도 버리면 아귀가 먹다가 목에 걸려서 숨이 막혀 죽는다고 한다. “저는 아귀가 자연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 찌꺼기가 결국 자연과 환경을 파괴시키는 이치와 같지요.”

선방을 몰래 빠져나와 희뿜하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법당 앞 경내로 나섰다. 국보인 각황전을 돌아서자 4사자삼층석탑으로 향하는 108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면서 대요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긴다. “여러분들이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세속의 모든 번뇌망상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올라가시라. 그리고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다시 108계단을 내려오면 세상을 사는 108가지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구례(화엄사)/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온 가족 손모아 황토 염색 해볼까?
구례 ‘황기모아’ 체험장 인기…황톳물로 옷·손수건 등 염색

구례구역에서 섬진강을 따라 6㎞쯤 달리다 구례읍 계산리에 이르면 섬진강을 앞마당처럼 거느린 다무락 마을이 나온다. 유곡마을이라는 본 이름 대신 전라도 사투리로 담장을 뜻하는 마을 초입에는 황토 체험학교 ‘황기모아’가 있다. ‘황토의 기를 모은다’는 뜻을 가진 이곳은 창업주인 류숙(56)씨가 지난 1999년 폐교된 계산분교를 개조한 뒤 황토를 비롯해 명아주 토란 민들레 물푸레 진달래 쑥 황칠 인삼 등 이 땅의 토종식물을 이용해 만든 78가지 천연염료를 이용해 침구류, 의류, 소품류, 지장수단, 황토팩 등 생활용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 곳 황토체험장에서 자신이 가져간 옷이나 천에 황톳물을 들이는 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구례 ‘황기모아’
학교에 들어서자 파란 하늘 아래 누렇게 물든 황토천이 바람에 날리고 있고, 운동장 한가운데 놓인 10m 가량의 미니 철로 위에는 유인옥(34·주부·서울 마포구 성산동)씨 가족들이 황톳물 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홍예진(9·서울 성서초2)양은 “황톳물 들이는 것을 처음 해보는데 너무 재미있다”면서 “면티를 예쁘게 물들여서 아빠에게 드릴 것”이라고 자랑한다. 동생 윤화(5)양도 이제 갓 태어난 동생에게 선물할 거라면서 황톳물통에 여러번 담근 자기 손수건을 끄집어내 보인다. 유인옥씨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구례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황기모아를 알게 됐다”면서 “아이들 방학숙제 중 체험학습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우리 천연염색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황기모아의 조성래(40·전남 순천시 해룡면 상삼리) 팀장은 “관광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체험하면서 황토염색의 좋은 점을 깨닫는데 보람을 느낀다”면서 “주로 본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속옷, 손수건 등을 가져오는데 아토피피부염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이 아기 기저귀감 천을 많이 가져온다”고 일러준다.

황기모아에서는 황토염색뿐만 아니라 대나무 염색과 치자 염색 등 천연염색 체험을 비롯해 양초 만들기, 비누 만들기, 구례에서 나는 우리 밀을 이용한 오색 수제기 만들기, 초코렛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61)783-5515, 5942~3. www.hwanggi.com

구례/글·사진 정상영 기자

여행수첩

지리산과 백운산, 섬진강이 어우러지는 청정관광지 구례는 예부터 ‘구례 10경’이라 불리는 관광명소를 자랑한다. 지리산 3대 주봉 가운데 하나인 1507m 높이의 노고단 아래 펼쳐지는 구름 바다인 ‘노고단 운해’가 제1경이요, 천왕봉에 이어 지리산 제2봉인 1732m 높이의 반야봉에서 맞이하는 ‘반야봉 낙조’가 제2경이다. 가을의 ‘피아골 단풍’과 ‘섬진강 청류’, 이른 봄 ‘산동 산수유꽃’, ‘섬진강 벚꽃길’, ‘수락폭포’, ‘천년고찰 화엄사’, ‘오산과 사성암’, ‘노고단 설경’이 차례로 ‘구례 10경’ 반열에 든다.

▶가는길

서울 → 경부고속도로 → 판교 나들목 →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 전주 나들목 → 남원 → 춘향터널 → 순천·구례간 국도 → 화엄사

서울 → 경부고속도로 → 회덕 나들목 → 전주 나들목 → 남원 → 춘향터널 → 순천·구례간 국도 → 화엄사

서울 남부 터미널 - 구례 고속버스(1일 6회 운행), 서울 - 구례구역 기차 이용. 구례구역 - 화엄사 시외버스(30분 간격), 구례종합터미널 - 화엄사 시외버스(20분 간격).

▶잠자리

화엄사 아래 리틀프린스펜션(061-783-4700)을 비롯한 깨끗하고 저렴한 통나무펜션들과 모텔, 지리산한화리조트(061-782-2171) 등이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지리산 심원계곡 심원마을의 황토흙방(061-782-5846)과 토지면 내동리 농평마을에 옛 흙벽집을 간직한 농월관 황토민박(061-782-5945) 등에서 민박과 식사를 할 수 있다. 또 산동면 좌사리에서 순수 천연온천수에 게르마늄과 탄산나트륨 성분이 풍부해 피부병과 신경통, 관절염, 부인병 등 성인병에 특효가 있는 지리산온천랜드(061-783-2900~10)의 야외온천탕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먹거리

화엄사 아래 상가에는 지리산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로 만든 산채정식 전문 해성식당(061-782-3816)을 비롯해 맛깔스런 음식점들과 구례읍에 참게매운탕 전문 전원가든(061-782-4733) 등에서 구례의 맛을 즐길 만하다.

▶특산물

뭐니뭐니해도 구례에는 지리산에서 나는 송이버섯과 표고버섯, 고사리, 더덕, 취, 도라지 등 산나물이 유명한데 구례장날(3·8장)에 가면 값싸게 살 수 있다. 또 지리산 작설차와 한봉(꿀), 전남 지정 1특품인 우리밀과 구례오이, 산수유, 고로쇠약수 등이 있다.

▶주변 볼거리

지리산 자락 아래 예부터 화엄사와 함께 화천양사로 불리는 천년고찰 천은사, 동쪽과 북쪽 두곳 부도탑이 아름다운 지리산 첫 사찰 연곡사 등 사찰, 토지면에 있는 조선시대 옛 사대부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택 운조루 등이 있다.

▶문의

화엄사(www.hwaeomsa.org) (061)782-7600. 템플스테이(www.templestay.com). 구례군(www.gurye.go.kr) 문화관광과 (061)780-2224~5, 780-2352~3. 구례구역 (061)782-7788. 구례시외버스터미널 (061)782-3941. 구례공용터미널 (061)780-2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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