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들에게 말걸기
“무모한 도전, 배낭여행” 중학생 형의 공부방 한켠에는 보물이 모셔져있었다. 롯데 파이오니어 오디오, 이 보물은 은빛이었다. 형은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나오던 팝의 명곡들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학습 했고, 오디오를 다루던 형의 손길은 주의 깊었다.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와 ‘이종환의 디스크쇼’등은 그 당시 또하나의 음악교과서인 듯싶었다. 동생은 형의 보물을 감히 만질 수 없었다. 그저 테이프를 몰래 빼와‘마이마이’로 귀동냥 음악공부를 할 뿐이었다. 어느 날 형은 LP판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집에 왔다. 턴테이블 위로 LP판이 올려졌고 지글대는 잡음 속에 울부짖음과 같은, 음악이라고 말 되어져선 안 될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요상하던 그 노래들, 허나 들어볼수록 중독성이 짖던 그 노래들, 바로 들국화 1집이었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수록되었던 그들의 1집에는 ‘세계로 가는 기차’라는 명곡도 실려 있었다. 증기기관차의 엔진음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시작되는 이 곡은‘대학생만 되면 세계로 가는 기차를 꼭 타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었다. 386세대에게 전국일주, 무전여행이 있었다면 90년대의 20대에게는 해외로 나서는‘배낭여행’이 있었다. 88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자율화 조치는 대학생들이 배낭 하나 짊어 미고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할 기회를 줬다.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젊은이들은 방학 기간의 절반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배낭을 한가득 꾸려 해외로 나갔다. 배낭여행은 여행사나 연고자 없이 떠나는 그야말로 철저한 단독자로써의 여행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밀어넣는 무모함이었다. 하지만 도전에서 돌아온 단독자의 귀환배낭에는 언어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피부색깔이 다른 수많은 단독자들에 대한 이해로 가득차있었다. 각양각색의 세상을 관통하는 작을지라도 소중한 보편성을 발견해낸 자신감이 여행자의 야위어진 얼굴에 차고 넘쳤다. 배낭여행이 유행하기 전부터 들국화 형님들은‘세계로 가는 기차를’통해 노래했었다.“이제는 정말 떠나가야 하는 길 위에 서서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너와 나의 꿈은 하나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새해다. 각자가 꾸린 배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설 때이다. 단독자로써 너도 가고 나도 가야한다. 허나 불안해하거나 외로워 말았으면 한다. 무모한 도전 속에서도 가치를 발견하였던 우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꿈에 대해 대화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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