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산등성이를 힘겹게 타고 넘는 산 마을의 겨울 해는 유난히 짧다. 겨울 해가 짧은 만큼 겨울 꼬리는 반대로 길다. 산그늘이 겨울 꼬리를 따라 깊어지면 을씨년스러운 나무들 그림자도 함께 깊어진다. 인적도 드문 겨울 산골짜기에 밤이 깊어지면 천지는 조용한 정적에 파묻힌다. 그러나 산 전체가 소리도 없이 고스란히 잠들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거긴 바람결에 우는 나뭇가지도 있고 한창 제시간을 즐기기 시작하는 야행성 짐승들도 얼마든지 많다. 단지 주행성인 우리 인간들만이 정적에 빠지고 밤 세계로 더 깊숙이 들어갈 뿐이다. 우리가 우리 식대로 편하게 생각해서 그렇지 한밤중에도 대개의 산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산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의 숨소리가 와글거린다.기온이 어쩌고 기압이 어쩌고 구태여 딱딱하고 재미없는 과학적 이유를 들어 논할 필요도 없이 한낮보다 특히 밤에 눈이 더 많이 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 또한 살아 있는 산의 생명력이 조용한 밤에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사르륵-사르륵' 내리는 눈은 사진을 그림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명징하게 자태도 분명한 다채색 겨울 산 사진같이 분명한 모습을 그만 바탕도 단순한 흑과 백의 무채색 그림으로 잠시간에 만들고 만다.검 초록 일색인 소나무 가지 위에도 어김없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다. 작은 바람에도 반쯤은 공중을 나르듯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라고 해서 무게조차 없는 건 아니다. 밤새 내리는 눈의 자취는 나뭇가지 위에 고스란히 내려 쌓이고 내린 눈이 끈기도 좋고 알도 굵은 찰 눈이라면 가지 위를 수북하게 덮는 건 잠깐 사이이다. 한밤중, 조용한 산 마을엔 그렇게 가지 위에 수북히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힘없이 부러지는 나뭇가지의 비명 소리가 '뚜두둑-딱'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진다. 살아 있는 산이 외치는 비명처럼 온 계곡에 가득히 울려 퍼진다. 작은 소리조차 모두 매몰되어 지극히 고요한 산천에 홀로 울리는 비명, 가슴마저 서늘한 나뭇가지 비명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뒷 잔향만은 차가운 밤의 기운을 타고 꽤 오랫동안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가볍고 보드라워 보이는 눈송이라도 가지 위를 조용히 덮으며 두께를 더해 가면 제아무리 강한 나뭇가지도 견디질 못할 정도로 무게가 느는 것이다. 수십 수백 년을 꿋꿋이 견뎌 온 역전의 굵직한 나뭇가지가 어느 날 한순간의 눈 무게에 그만 손을 들고 마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하얀 제 속살을 드러낸 채 부러진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들은 마냥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눈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겨울나무들을 설해목(雪害木)이라 한다. 특히 소나무 종류는 바늘잎일지언정 한겨울에도 잎새를 다 떨구지 않는 사철나무이기에 낙엽수에 비해 쌓이는 눈을 피할 수도, 떨굴 수도 없는 양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국 한복판에 오래 살아 정리가 된 소나무들은 옆으로 뻗은 곁가지가 적고 위로 곧게 뻗은 쓸모 있는 둥치가 많다. 이름조차 황송하리 금강송(金剛松)이란다. 큰 나무는 탄력이 적어서 자신의 가지를 부러뜨려야 눈 무게를 이기지만 작은 나무는 나무 끝이 땅에 대일 정도로 둥글게 휘어져 온몸의 탄력으로 힘겨운 버티기에 들어간다. 어린 나무의 유연성은 일견 대견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애처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보기가 딱해 도움을 줄 요량으로 가지를 툭 건드려 주면 이때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가지에 쌓인 눈을 떨구며 재빨리 제자리를 찾아 다시 일어선다. 잔뜩 허리가 꺾일 만큼 휘어져 있던 작은 나무들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그대로 꺾여 버리는 경우도 드물다. 날씨가 풀리고 눈도 녹으면 거의가 다시 허리를 펴고 제 모습을 찾는다. 다만 연이은 강추위에 쌓인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눈덩이의 눌림이 워낙 극심해 처음과 같이 완전한 복귀가 어려운 경우는 더러 있다. 그런 나무들은 한 폭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들어지게 휘어진 모습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게 된다. 구불청 휘어짐이 나무에겐 계절의 상처이고 아픈 불구의 상황이겠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 꺾이고 휘어진 멋들어진 모습에서 그림도 한 폭 구하고 시 한 구절도 얻는다. 허나 이것도 눈이 덜 오시는 지방에서나 가능한 일, 본판의 설국에선 한번 휘어진 나무는 결국 길게 버티질 못하고 언젠가 폭설에 마저 꺾임으로써 소임을 끝내 접어 버리고 만다. 때문에 몇 번인가 폭설의 내습을 이겨내고 본판 설국에 남아 있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늠름하고 쪽 곧은 모습을 띄우기 마련이다. 그렇다. 사람에겐 가장 조용하고 정숙한 계절, 은근한 겨울잠에 들어야 할 깊은 산 속 나무들은 오히려 일년 중 가장 큰 힘을 들여가며 정중동(靜中動)의 안간힘으로 버티길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얼마 되지 않는 제 에너지마저 성장과 번식에 쓰질 못하고 단지 개체 생존을 위한 버티기에 모두 사용하느라 겨울날에 남겨지는 나이테는 유달리 짙고 근육처럼 단단하게 뭉쳐져 있나 보다. 설해목, 곁가지를 무참하게 떨군 덕분에 곧게 뻗은 둥치만 눈에 남을 뿐, 원래부터 그렇겠지, 부러지고 꺾인 상처가 아물면 겨울 소나무의 안간힘을 사람들은 막상 봐도 모른다. 이곳에서 진짜 겨울을 만나기 이전엔 난 오래된 나무가 제 가지를 금방 부러뜨린 채 흉하게 서 있는 모습에 그다지 유념하지 않았었다. 그저 (멀쩡하게 생긴 나무가 아깝게 됐구나!) 라는 정도로 가벼운 관심뿐이었지만 이젠 나무가 겨울 무게를 오랜 동안 감당해 오다가 남긴 고달픈 흔적이라고 단번에 이해 할 줄도 안다. 쌀과 옥수수엿을 고아서 만드는 이 마을 고유의 동동주가 제대로 익는 시간은 이때가 가장 적절하다고 한다. 몇 대를 이어 자연에 잘 순응해 가며 삶을 영위하는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영혼도 달래주는 옥수수 동동주는 산 속 눈밭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같이 깊은 밤에만 몰래 깊이 익어 간다고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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