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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7 20:03 수정 : 2006.10.16 16:34

‘옛 추억’까지 튀겨내는 바삭한 맛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구석동네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색다른 구경거리가 생겼다. 바로 단지 내 7일장이다. 시골의 왁자지껄한 장터 분위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먹거리도 많고, 눈요깃거리도 많아서 어슬렁거리기도 좋고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덕분에 매주 목요일에는 아내도 나도 밥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메밀묵, 감자전, 호떡, 족발, 떡볶이 등을 날씨와 기분에 맞게 조합해 사서 주전부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달덩이처럼 부어오른다.

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는 떡볶이와 튀김이다. 요즘엔 노점 떡볶이 가게들도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버려서 맛있는 곳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집 떡볶이는 오래전 학교 앞에서 먹었던 예스러운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먹을 때마다 입속을 옛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튀김도 훌륭하다. 단호박, 고추, 오징어 등으로 만든 튀김은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아삭한 입자가 바스러지는 소리도 경쾌하다. 시간이 갈수록 맛이 조금 떨어지고 있지만 - 내 입이 문제일까, 튀김집 아주머니가 문제일까 - 그래도 아직까지는 튀김을 먹을 수 있는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튀김에 대한 집착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비롯된 것 같다. 먹고 등을 돌리면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 불현듯 신의 은총이 나와 함께했으니, 어머니가 포장마차에서 ‘도나스’(도넛이 아니다)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집안의 가난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던 나는 도나스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이끌고 초등학교 운동회나 군체육대회 등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돌며 밀가루 도나스, 찹쌀 도나스를 팔았는데,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도나스 하나의 가격이 5원이었는데 다 튀겨지지도 않은, 거의 생가루나 마찬가지인 도나스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내 입에 들어올 도나스도 없었다.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었다. 기름에서 막 건져낸 럭비공 모양을 한 갈색의 도나스, 그리고 그 위에 내려앉은 하얀 설탕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물론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도나스를 주지 않았을 리 없지만, 그래서 많이 먹었겠지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감동받은 튀김은 명동의 ‘서호 돈까스’였다. 길쭉한 모양의 고기 조각이 여섯 개쯤이었나, 일곱 개쯤이었나, 아무튼 양도 많았고, 맛도 좋았다. 그때 튀김이란 바삭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바삭하게 튀기기는 쉽지만 바삭함 속에 졸깃함을 간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재료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튀기는 정도가 달라야 하며,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튀김옷과 재료가 따로 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튀김집은 명동 영플라자 건너편의 ‘가쓰라’(02-779-3690)다. 오래전 이 집에서 굴튀김을 먹었을 때 그 촉촉하고 바삭한 맛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가게를 넓힌 후에 “매장이 너무 넓어서 맛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맛은 변하지 않았다. 손님이 많아져 예전의 오붓한 맛은 사라졌지만 굴 철이 돌아오면 다시 가쓰라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 속의 음식은 가쓰라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고로케인데, 이 맛도 훌륭하다.

김중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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