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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1 23:27 수정 : 2006.09.01 23:27

여수는 그야말로 돌 벅수의 고장이다. 실제로 많이 있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벅수골'이라는 지명이 이어오고 있다. 여수의 벅수는 독특한 몇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눈은 하나같이 왕방울이며 코는 뭉뚝하고 입은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있다. 이런 벅수가 어느 시기에 누가 세워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꽤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풍우와 사람의 손길에 깎이고 닳은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것말고도 여수에는 진남관(鎭南館) 경내에 벅수의 나이와 비슷한 석인상(石人像) 한개가 현존해 있다. 이것은 비교적 제작시기가 드러나고 있는데, 지금부터 대략 400여 년 전에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좌수영의 역사와 함께 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이 석물은 지금 진남관 경내에 있지만 당시에는 해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석인상은 당초에는 모두 7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관리 소홀로 멸실 되고 지금은 단 한 개만이 남아 있다. 한편, 여수 연등동 구도로 가에는 돌 벅수가 많이 훼손된 형상을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편 것은 남정중(南正重), 서편 것은 화정여(火正黎)인데, 이것은 방위를 나타냄과 동시에 물과 불을 다스리는 주술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진남관에 보존중인 석인상은 적으로 하여금 경계병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병선을 매어 두는 계선주(繫船柱) 역할을 했다. 이 석인상이 당초 바닷가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현 보존 위치의 모순에서도 짐작이 된다. 현재의 위치는 적진을 살피던 망해루(望海樓) 안쪽이어서 여기서 배를 매달거나 경계를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석인상은 화강암으로 부조되어 있다. 그렇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손상을 많이 입었다. 그러나 윤곽을 알아보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다. 형상은 문인상이다. 전장(戰場)에 있던 인물상이라면 당연히 무인상 이어야 할텐데 이 석인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어 관모 쓰고 손을 앞으로 모은 공수(拱手) 자세 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소 의아스런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크기가 180Cm나되고, 앞면 과 옆면이 또한 45Cm에 이르는 대인이어서 여간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다.

이에 비하면 돌 벅수는 매우 해학적으로 생겼다. 일견 제주도 명물인 돌하루방 모양인데, 그러나 돌하루방이 벙거지를 쓰고 있는데 비하여 이것은 어엿이 관모를 쓰고 있다. 그리고 얼굴 또한 살쪄 보이지 않고 깡마르고 길어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렇지만 왕방울 눈이라든가, 과장된 주먹코는 여느 나무 장승과도 흡사하다. 한데, 서편에 있는 벅수는 코가 심하게 훼손이 되어있다. 아마도 그것은 자식 못 낳은 부녀자들이 벅수의 코를 떼어내 갈아 마시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을 믿고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바람에 여간 민망해 보이는 게 아니다.

여수시에서는 최근에 이런 벅수를 본래의 벅수골 이름에 걸맞게 상징 사업으로 하기 위해 새로이 벅수를 만들어서 간선도로변 여러 곳에 새워 놓았다. 그래서 지천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눈에 띈다.

그동안 이 석인상과 벅수는 주민에게 많은 위안과 의지처가 되어온 것을 부인 못한다. 특히 석인상의 경우는, 여느 석인상이 대부분 군왕의 능이나 고관대작의 무덤을 지키는데 역할을 할 따름인데 비하여, 국난을 당해 인명을 지키고 왜적을 무찌르는데 힘을 불어 넣어 주었던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이 것들은 그동안 수 차례 겪은 수해와 비극적인 반란사건등 암담한 시절에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냥 돌덩어리가 아니다. 세상을 보면 생명을 받고 태어나 버젓이 사람의 탈을 쓰고 살면서도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가 얼마나 많고, 입으로는 애국을 외치면서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정의를 외치면서 기실은 자기 입신출세만을 돌보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석인상과 벅수는 수 백년 동안을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눈이오나 괘념치 않고 오직 나라의 안위와 고장의 평화를 묵묵히 빌고 지켜내는데 일조를 하였으니 어찌 장하지 않는가. 그런고로 이 석물들은 그냥 돌덩이가 아니다. 의인상(義人像) 인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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