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30 20:05 수정 : 2006.08.31 15:33

압구정동 ‘현대낙지’ /

가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외로운 자세로 앉아 벽이나 천장을 응시하며 멍하니,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보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쓸쓸하게 밥을 먹는다. 내가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저렇게 쓸쓸해 보였나 싶다. 나 역시 혼자서 밥을 먹을 때가 많다. 가끔은 일부러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외출했을 때, 약속을 해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귀찮고,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면 혼자서 밥을 먹는다. 낯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요구하거나, 1인분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예의 없는 식당을 만나면 화가 나지만 그래도 혼자 밥 먹는 게 좋을 때가 있다.

3년 전쯤 혼자서 밥을 먹을 때의 일이다. 가을이었고, 낙지가 너무 먹고 싶었다. 나는 수소문 끝에 식당 하나를 골랐다. 식당을 추천한 사람의 말이 기억난다. “그 집 할머니가 좀 무서워. 조심해.” 어떤 식으로 무섭다는 건지, 그리고 뭘 조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낙지만 먹고 나올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나는 오후 4시의 식당이 좋다.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도 없고, 이른 저녁을 먹는 사람도 없다. 주방장이나 종업원에겐 좀 미안하지만 - 쉬어야 하는 시간이니까 - 그래도 그 한가한 식당이 좋다. 오후 4시에 나는 낙지볶음 한 접시를 주문했다. 주인 할머니는 1인분 낙지볶음은 없다고 했다. 나는 2인분을 주문했다. 한 접시에 2만4천원이었다. 어지간한 고급 레스토랑의 점심 식사 가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식당은 조용했다. 쫀득쫀득하고 탱탱한 낙지의 몸통이나 무교동 낙지볶음처럼 무자비하게 맵지 않은 양념도 일품이었지만 반찬이 맛있었다. 눅눅하지 않고 아삭한 묵은지와 고추장아찌, 뭇국이 압권이었다. 혼자서 천천히 반찬을 음미하고 있을 때 주인 할머니가 곁으로 다가왔다. 왜 이러시나, 순간 무서웠다. 할머니는 내 탁자 앞에 서더니 내게 물었다. “왜 혼자서 밥을 먹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끼니를 놓쳤어요”라고 얼버무렸다. 주인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반찬 맛있지? 다 내가 직접 만든 거야.” 나는 맛있다고, 특히 묵은지와 뭇국이 정말 맛있다고 대답했다. 주인 할머니는 주방 쪽으로 가더니 작은 접시에 게장을 담아 왔다. “이것도 먹어봐.” 주인 할머니는 아예 내 탁자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반찬을 집을 때마다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게장의 맛도 좋았다.

주인 할머니가 지켜보는 바람에 나는 그 많은 밥과 낙지와 반찬을 거의 다 먹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외갓집에서 먹었던 밥 맛과 비슷했다. 외할머니는 연신 내 쪽으로 반찬 그릇을 밀어주곤 했다. 모든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계산대 앞에 섰다. “됐어, 돈 내지 마. 나중에 사람들이랑 같이 와서 그때 사 먹어.” 나는 당황했지만 주인 할머니는 내 등을 떠밀었다. 도대체 밥값을 받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쓸쓸해 보였나? 내가 너무 가난해 보였나? 내가 주인 할머니의 손자와 닮았나? 이유를 모르겠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압구정동의 현대낙지 주인 할머니가 생각난다. 혼자 밥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신사동 현대고등학교 건너편 뒷골목 (02)544-8020.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