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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출입사무소. 북측은 당연히(!) 찍을 수 없었다.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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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다는 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대륙으로 연결되는 통로여야 할 ‘국경’은 예사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국경’으로 불러야 할지, 조금쯤 망설여지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엄연한 개별 국가다. 이 두 국가가 나란히 만들어놓은 관문 역시 ‘출입국 사무소’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우리는 ‘출국’을 하고 DMZ(비무장지대)를 지나 MDL(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입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저 진지해보이는 영어 머릿자 조합은 국경을 넘는다는 게 우리에게 얼마나 두려운 일로 다가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국경이 아닌 ‘군사분계선’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쇼핑을 즐기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휙 넘나드는 국경도, 목숨 걸고 리오그란데 강을 헤엄쳐 건너는, 혹은 밀항선을 타야하는 지브롤터 해협과도 같은 그런 국경도 아니지만 남북이 맞댄 유일한 국경의 풍경은 앳된 얼굴을 애써 숨기려 하는 남북 초병들의 한껏 우그러진 표정만큼이나 험상궂다. 그리고 긴장했는지, 나는 전성태의 소설 ‘국경을 넘는 일’에 등장하는 한국인 주인공처럼 꽤 멋쩍은 실수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시사만화협회 그리고 평화통일만화전 수상 학생들과 함께한 나는 금강산에서 수상작품 전시회를 하기 위해 33점의 작품과 전시장에 걸 커단한 펼침막을 싣고 빛바랜 붉은색 동해선 선로, 그리고, 불안하게 넘실대는 해안선을 따라 북측 출입국사무소로 향할 채비를 했다. 사람 좋은 조선족 운전기사, 후덕해 보이는 금강산관광안내원인 ‘6조 조장’과 조우한 후, 우린 통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DMZ로 진입하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무더위’라는 말 그대로 날씨는 습하고 더웠는데, 그무러진 하늘에서 마침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가 대지를 식혀주기 시작했다. 비는 남북을 나누지 않고 흩뿌려진다. 그 덕에 짙푸른 녹음은 한결 검어지고, 먼 곳의 풍경은 아득해진다. 마치 다 그린 수묵화 한 폭이 는개에 젖어 번지는 것 처럼 말이다. 통문이 열렸다. 이 통문의 이름은 ‘금강통문’이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복무를 한 나는 통문이 열리는 시각을 기억한다. 보병 의 DMZ 수색작전 개시와 동시에 화력지원을 위한 화포대기가 내 임무카드에 적혀있었으니까. DMZ 수색작전은 ‘태양작전’이라 불렸고, 매복작전은 ‘은하수 작전’이라 불렸다. ‘태양코스(수색코스)’에 관한 정보와 보병 수색대의 현 위치를 시시각각 무전으로 전해 듣고 105미리 포의 편각과 사각을 결정, ‘적 침투 예상지역’에 포신을 겨눈다. 통문이 열린다는 것은 수색작전, 혹은 매복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다. 허나 지금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휴대한 바캉스 복장으로 눈이 보이지 않도록 철모를 푹 눌러쓴 헌병을 뒤로하고 통문을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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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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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DMZ를 지나며 50여년동안 시뻘건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아이 키만한 말뚝을 보았다. 안내원이 가리키는 그곳, 풍장을 당하고 있는 1292 개의 MDL 표식 중 1290번째 말뚝이 기울어질 듯 서있었다. 서글펐다. 황동규는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새생명을) 무연히 안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황동규, 풍장)라며 자연에게 자신의 장례를 애걸했다지만(괄호는 필자 멋대로 해석해 쓴 것임), 너는 분명 풍장을 애처롭게 구걸하기도 전, 무참히도 뽑히어 박물관에 보내질 것이다. 분단이 초라할대로 초라해진 네게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먼 훗날 박물관에서 너는 뒤썅의 친구가 되리라.
그 볼품없는 말뚝을 지나자, 황갈색 옷을 입고 어깨만큼이나 넓은 크라운의 인민군모를 쓴, 앳된 얼굴의 인민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모 선배의 표현대로 하자면 머리에 모자를 힘겹게 얹혀놓은 ‘허수아비’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인민군은 500미터 간격으로 길 양 옆 둔턱 위에 올라서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총질(손가락질)과 사진촬영은 역시 금지다. 위험한 사파리를 나온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위협적인가? 아님 그들이 위협적인가? 북측 DMZ를 지나 검사소(북측출입사무소, CIQ)에 도착했다. 남측에 비해 초라한 그곳은 임시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천막으로 건물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황량한 경치를 남기고 있었다. 한편 풍경은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북측을 바라보고 검사소 우측으로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 그 마지막 산줄기인 구선봉이 보인다. 낙타 등허리를 닮았다 하여 낙타봉이라고도 한다 했다. 여유가 없어보이게 뚝 떨어지는 단호한 기슭에 둥글둥글 두꺼비 등거죽 같은 구선봉은 남측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을 안겨준다. 삐쭉한 돌 뿌다구니 하나 없는 이 맨송맨송한 돌산은 북녁땅을 충분히 이국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적당히 당황해하고 적당히 감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측 DMZ의 끝자락에 위치한 구선봉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하며, 그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질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구선봉에 가려진 뒤편, 동해 쪽에는 해금강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바다의 금강이라, 병풍처럼 서 있을 깎아 지른 듯 장엄한 물벼루를 상상하며 검사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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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각에서 바라본 문화회관. 여기에서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이 있었다.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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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섰다. 절차는 간단했다. 신원 확인과 물품 검사. 다만 검사관의 옷이 황갈색 군복이라는 것, 그들과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해선 안 된다는 것. 그 뿐이었다. 안내원은 “관광객 증명서를 꺼내 접힌 부분을 펴서 왼손에 들어주세요. 꼭 펴서 앞면이 위로 나오게 들고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야 검사관이 짜증을 내지 않아요’라는 투였다. 만일 관광객 증명서를 뒤집기라도 하면 당장 전쟁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신분만 확인하고 입국 날짜가 새겨진 도장만 받아가면 되는 것인데, 안내원의 설레발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디카를 손에 들고 치렁치렁 메고 있던 가방을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놓았다. 디카는 검사관에게 보여주고 몸만 게이트를 통과하면 된다. 통과한 후 가방을 다시 집으려 몸을 짐 쪽으로 틀었다. 방금 X-레이를 통과한 짐이 덜컹덜컹 흘러나왔다. 순간 어디선가 ‘디카 가져가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북측 검사원이 건넨 디카를 황급히 받아들어야 했다. 그리고 짐을 잊은 채, 눈 앞에 보이는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황갈색 군복의 키 큰 사내가 오른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내게 묻는 것이었다. ‘가방은... 안가져 가십메까?’ 특유의 억양이었다. 수많은 남측 관광객을 대해본 이 사람과, 단 한번도 인민군을 대한 적이 없는 나 사이의 괴리는 컸다. 당황한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후 돌아가 컨베이어벨트 끝에 달랑달랑 걸쳐있는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란 정말 긴장되는 일이다. 적어도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내겐.
전성태의 소설 ‘국경을 넘는 일’의 몇 구절이 생각났다. 남한 출신의 주인공은 태국과 캄보디아를 나누는 ‘육지에 놓인 국경’을 지나는 중이다.
그러니까 국경을 넘는 일은 이 기획여행의 절정에 해당하는 셈이었다.…발길마다 뿌옇게 흙먼지가 이는 다리는 국경의 다리치고는 무척 낡아보였다.… 박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등뒤에서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으리라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런 심리의 변화는 아주 순식간이었다. 착각이라는 사실을 그 자신도 잘 알았지만 박은 뒤를 돌아볼 염이 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죽음을 의미하지요. 아마 제 무의식 속에 그런국경에 대한 공포가 잠재돼 있었던 모양이에요.”
나오꼬는 금방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조금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박을 바라다보았다. 박은 말을 하면서 줄곧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그게 진실일까 의문이었고, 이 이국의 여자 앞에서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고 싶다는 욕망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전성태, 국경을 넘는 일, 136~141쪽
그러니까 국경을 넘는 일이라는 것은 그렇다. 대단히 긴장되는 일이 아니면서도 내가 하는 비이성적 행동을 설명할 수 없는 것.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관광지로 향할 수 있는 전제를 둔,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관광은 특히 그런 것이다.
또 일이 생겼다. 모든 물건을 가지고 내려야 했던 우리는 버스 짐칸에 잠자고 있을 펼침막을 뒤늦게 생각해 낸 것이다. 황급히 안내원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 안내원은 울상을 지으며 당황해했다. 안내원의 심정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라는 원망투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펼침막 같은 물건은 검사원이 직접 펴 보고 확인을 해야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허락받지 않은 ‘단어’가 써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평화라는 단어는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안내원은 별걸 다 물어본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상관없다 했다. 나는 북한말로 평화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혹 ‘평화’라는 단어에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평화주의 : 평화를 극력 주장하는 사상, 운동. 제국주의에 아부하고 굴종하면서 정의의 전쟁을 포함한 전쟁 일반을 반대하고 무원칙한 평화를 주장하는 반동적인 사상이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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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각에서 바라본 외금강호텔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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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것은 ‘북한이 평화를 싫어할 것’이라는 데 전제를 둔 게 아닌, ‘북한의 평화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라는 전제를 둔 질문이었다. 평화라는 말, 혹은 평화 통일이라는 말이 북측에서도 별 무리없이 사용되는지도 알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묻는 걸 그만두었다. 나중에, 북측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을 때도 ‘평화통일만화전’이라는 이름에 그들은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남측 사람이, 예전에 금기시되었던 ‘동무’나 ‘인민’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된 사례와 비슷한 경우일 것이라고 유추할 뿐이다. 북측 사람들이 평화라는 단어를 직접 쓰진 않지만 남측 사람들이 쓰는 평화라는 말과 의미에 공감하는 것이라 해석해야 할까? 그 정도 문제인 듯 싶었다.
흠…. 하여튼 문제없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었고, 실제로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 그러려니 할 밖에…. 검사소를 넘어왔다. ‘정식’으로 북한 땅을 밟은 것이다. 매우 당연하게도 풍경은 변화가 없다. 금강산 산줄기 끝 구선봉은 여전히 굼떠보이는 자세로 그 자리에 웅크려 있었고, 군데군데 더운 김을 뿜고 있었지만 나름 온순해보였다. 그 앞에 ‘감호(鑑湖)’인지 영랑호인지 모를 호수가 있었다. 맑은 것은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조용한 수면은 거울처럼 반질반질했다.
우리 일정은 펼침막 문제로 조금 지체되고 있었다. 도로 양편을 따라 길게 세워져 있는 녹색 철조망 안쪽이자 노란색 줄이 쳐진 아스팔트 바깥쪽에서 감호와 구선봉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우리에게 한 파수병이 빨간 깃발을 흔들었다. 도로에 표시된 노란 선 안쪽, 아스팔트 위로 올라서라는 의미인 듯 하다. 철조망에 가까이 다가서는 남측 사람들이 불안해 보였나보다. 우리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다소 늦게 검사소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북측의 한 파수병이 만든 이 새로운 규칙(?)에 대해 알 리가 없었고, 아스팔트를 벗어난 후 갓길로 내려가서 철조망 쪽에 붙어 이 새로운 경치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재빨리 파수병 쪽으로 돌아보자 그는 다시 빨간 깃발을 들어 노란 선을 넘지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규칙’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노란 선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파수병 쪽으로 돌아보았으나 그 역시 당황해 하는 듯한 눈치다. 더 이상 빨간 깃발을 흔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새로운 ‘관광객’들을 길들이거나 살짝 위협하려 한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스스로 생각해봐도 쓸데없는 짓이 분명했나보다. 누구라도 그 규칙이 꼭 지켜져야 할 만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수병의 노력이 귀엽기도 했고, 가상하기도 해 나는 노란선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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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각에서 바라본 ‘닭알바위산’ 어떤가 닭알처럼 보이는가?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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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다시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 오른쪽에서 줄곧 따라오던 동해선은 점점 멀어지고 대신 남강이 새로 다가왔다. 남쪽에서 흘러오는 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쪽을 향해 흐른다 해서 남강이란다. 남강다리를 지나 관광도로를 타고 들어갔다. 여전히 양 옆엔 500M마다 황갈색 군인이 자리하고 있다. 조금 더 가자, 작고 아담한 회색빛 마을이 보였다. 북 고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본 첫 번째 마을이었다. ‘영웅해방중학교’라 이름하는 학교도 지나쳤다.
북한의 여염집은 레고블럭으로 만든 듯 전부 똑같이 생겨먹었고, 도무지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외주물집(마당이 없고 안이 길에서도 들여다보이는 집)이라는 말이 딱 맞는 듯 하다. 슬레이트 지붕인지, 아니면 자잘한 돌을 지붕에 얹은 너새집인지, 굴피나 너와로 얹은 집인지 모르겠으나(내 눈엔 규격화된 너새로 만든 집처럼 보였는데, 버스를 타고 다니며 관찰했기 때문에 집을 자세하게 볼 기회가 없어 확신하진 못하겠다.) 반듯하게 뻗은 용마루며, ㅜ 자 모양으로, 가운데 툭 튀어나온 문이 있는 것이, 규격화하기 최적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자면 일괄적으로 집의 모양을 정해 그에 맞게 통일한 것보다는 아예 규격화하기 좋은 형태를 염두해 두고 지어진 집 같은 인상을 풍겼다는 것이다. 북방식 가옥답게 창문은 작고 전체적으로 답답해 보였으며 색깔은 한결같이 잿빛이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군부대가 있는 지 집들이 모인 곳 사이사이에 경계를 서는 문지기들이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 단단하게 매달린 하얀 현판에는 빨간 글씨의 과격한 슬로건들이 쓰여 있었다. 다분히 자기 방어적, 자기 최면적인 슬로건들. 보위(保衛)니 무장(武裝)이니 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발톱까지 무장한다’는 북한의 관용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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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호텔 과녁빼기의 문구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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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분 쯤 더 들어가 삼일포로 빠지는 갈래 길에 자리한 마을과, 눈썰매장을 지나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현장이 왼편으로 보였다. 미사일 사태 후 남측이 결정한 대북 쌀 지원 중단에 맞서 북측이 내세운 게 이산가족면회소 건설 공사 중단이었다. 그물어진 하늘 아래 빨간 트러스 구조물이 비를 맞고 조숙조숙 졸며 서 있었다. 그 위쪽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재건중인 사찰 신계사가 있다. 한쪽은 공사 중단으로 인부들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한쪽은 해인사 출신 남측 주지스님을 중심으로 신계사 재건 사업이 부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은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당연한 전망을 이렇게 어렵게 한다… ㅠ.ㅠ)
드디어 금강산 관광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온정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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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호텔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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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온정리 위쪽에 자리한 금강산호텔에 들러 일단 짐을 풀어야 했다. 버스는 온정각을 지나 금강산 호텔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 옆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한다. 중간 중간 빗줄기 사이로 정문초소를 지키는 초병들이 우리가 탄 버스를 말없이 지켜본다. 그 길 중간쯤에는 붉은 글씨로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가 적혀있었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직설적인 구호였다. 금강산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과녁빼기에 역시 익숙한 폰트의 붉은 글씨로 쓰인 ‘21세기의 태양 김정일장군 만세!’라는 글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금강산호텔은 58년도에 착공해 82년도에 완공된 러시아식 건물이다. 전엔 주로 외국 관광객들을 맞던 곳이었는데 금강산 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현대아산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인터넷을 뒤져 발견한 한 구성주의 미술작품과 비교해 보았다. 비슷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여튼 멋지고 고풍스러우면서 안정감 있는 호텔 외관만큼이나 실내 풍경도 감탄할 만 했다. 특히 2층 식당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는 해금강, 만물상 등 금강산의 명승지를 섬세하게 구현한 것이었는데, 그 크기로 보아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아무래도 유럽의 유명한 프레스코들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었기에 더 장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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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호텔 8층에서 바라본 이름모를 건물 © 필진네트워크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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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 창문을 통해 왼편으로 이름모를 건물이 서 있었는데, 북측 종업원에게 물어본 바,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설명 뿐, 일부가 부서진 채, 낯선 패잔병처럼 힘겹게 서있는 그 건물의 내막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자, 호텔에서 있었던 일과 구룡연에서의 일은 2편에서 이어진다. 참고로 옛 선인들처럼 멋지게 풍경을 묘사할 글 재주도 없을뿐더러 내가 묘사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상투적인 언어나열은 사양한다. 이미 금강산 관련 책자나 시집에 무수히 인용된 싯귀들의 식상한 표현을 벗어나고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만 기록해보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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