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 고가도로의 흔적으로 청계천과 성북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교각 3개를 남겨놓았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개발시대의 유적으로, 또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상징물로 해석하겠지만 내게는 청계고가도로 위를 달리고 싶었던 꿈이 이뤄진 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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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7일 ‘터널 첫통과’ 6월19일 ‘약수 고가 통과’ 한달 만에 터널급 라이더 승급 뿌듯한데
넉달여 만에 최고 경지 고가도로급 오르다니 여러부분, 저 검은띠 매어 주세요
터널이 무서운 이유가 인공 어둠속 좁은 곳에서 오는 협착감 때문이라면
다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⑦ 나는 차도급 라이더가 된 지 얼마 안 돼 바로 터널급 라이더로 올라섰다. 내 자전거 일지를 보면 3월27일 ‘터널 첫 통과’라고 기록돼 있다. 일기에 간단하게, 아니, 거의 적는 게 없는 나로서는 ‘터널을 통과하는 위업을 달성하다’고 표현한 것과 같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집에서 나와 첫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자마자 일원터널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안장에 올라타 불과 200m도 못 가서 인도로 새는 것은 차도급의 스타일을 구기는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 일원터널은 터널급 라이더 양성 기초과정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설치할 만큼 좋은 연습용 터널이다. 터널 안이 넓고 쌍굴이어서 공기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260m로 짧다. 터널은 한 지역의 생태계를 바꿔버리는 폭발적인 파괴력이 있다. 내가 사는 수서는 대모산 산자락에 숨은 동리여서 한국 전쟁 때도 인민군이 안 들어왔다고 하는데 일원터널이 뚫림으로써 천년의 고립에서 벗어나 강남에 복속됐다. 그 배후에는 6공화국의 2백만호 주택 건설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원터널을 뚫고 간 것은 정치경제적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게는 다른 의미가 있다. 아침에는 여행을 떠나는 첫 관문, 밤에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귀환하는 마지막 관문이 된다. ‘통과의례’의 이중적인 통로인 것이다. 살짝 북쪽으로 내리막이어서 아침에는 내달릴 수 있고 밤에는 결승점에 골인하는 마라토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귀가하기 위해서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가장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부순환도로 하루만 내준다면
동호대교를 타고 광화문으로 진입하는 코스에는 옥수와 금호터널 두 개가 더 있다. 금호터널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도심이다. 약수 고가도로가 있고 너머로 장충체육관과 한 백만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태극당 제과점이 있다. 분명 어릴 적 이곳에 태극당과 함께 무슨 피부과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금호터널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게 강북을 열어보인다. 터널에도 서열이 있어 내가 통과하는 터널 3개 모두 1종 터널이다. 1종 터널이 되려면 길이가 1천m가 넘거나 폭이 편도 3차선 이상이어야 한다. 3개의 터널은 길이는 짧지만 폭이 넓어 1종들이 됐다. 그렇다고 내가 1종 터널급 라이더라고 생각지 않는다. 1천m가 넘는 남산 터널들과 같은 것들을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가장 긴 터널은 남산 터널들이 아니라 내부순환로에 있는 홍지문 터널(1890m)이다. 이 터널을 들어갈 때는 서대문구(홍은동)인데 나올 때는 종로구(평창동)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정릉터널로 이어지는데 이것 역시 1650m로 서울에서 두번째로 길다. 이 터널들을 연속 통과하는 사람에 한해 최상급 터널 라이더 또는 터널 라이더 지존의 칭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갈 수는 없다. 나는 내부순환로만큼 자전거 타면서 강북을 완상할 수 있는 도로가 없다고 생각한다. 총 연장 40㎞나 된다. 서울의 아파트들은 저마다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있어 전체적으로 화사함을 풍긴다. 빨간 아파트나 파란 아파트도 한 두 채 정도는 있어도 무방할 것 같다. 그 아파트들이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살펴보고 싶은데 내부순환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여서 라이더로서는 침만 삼키고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내 꿈은 꼭 한번만이라도 차 안 다니는 날로 해줘서 내부순환로를 타고 서울을 관통해 보는 것이다. 많은 라이더들이 동시에 탄다면 장관일 것이고 사진을 찍어서 웹사이트에 띄우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구 서울로 몰려들지 않을까. 서울시청에서도 혹시 이 글 보시는 분 계신가요? 내가 달리기를 열심히 하던 시절, 나는 청계고가도로 위를 달려서 출근하는 꿈을 꿨다. 가장 도시적인 달리기는 숲 속을 달리는 게 아니라 고가도로의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꿈이 이뤄졌는데 그 사연이 가슴 아프다. 서울시는 철거되기 직전 청계고가도로에서 단축 마라톤 대회를 개최했다. 그날 비가 내렸다. 흠뻑 젖어 달리는데 발 아래로 고가도로가 출렁거린다고 느꼈다. 높은 건물들이 낮아보이고 때로는 옥상도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리고 광화문 동아일보 신 사옥 앞에 있는 결승선. 고가도로를 치달아 내려가면서 나는 왠지 내 등 뒤로 청계고가도로가 차례로 허물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는 미래를 향해 달리고 고가도로는 역사 저편으로 퇴장한다. 결국 운명을 다하는 순간에서야 청계고가도로는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청계천 위 지금은 허공이 된 고가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을 되새겨보곤 한다. 아직도 청계고가 허공 달리는 꿈
성수대교로 진입하는 남단 고가차도가 은하철도999처럼 휘돌아간다. 도시 라이더를 유혹하는 콘크리트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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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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