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은 고장난 앰프와 같은 것이다. 모든 소리들을 증폭시켜 자동차와 나의 거리 그리고 차종에 대한 내 감청력을 무력화시킨다. 터널을 차도로 통과할 수 있다면 도시 라이더로서 한 등급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내 분류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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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따라 라이더 등급을 매긴다면 6등급 인도→차도→터널→한강→다차선→고가도로급
처음 차도 내려올 땐 욕탕서 뛰쳐나온 느낌 질주하는 쇳덩어리를 맨몸뚱아리로 막아내야 하는
도시 굉음의 증감을 들으면 차종은 물론 운전자 성격 파악 트럭은 트롬본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⑥ 자전거 출퇴근 경력이 일천한 내가 등급을 매겨도 되는지 모르지만 대략 라이더들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인도급, 차도급, 터널급, 한강급, 다차선급, 고가도로급. 도심 주행의 난이도에 따른 6등급이다. 다시 내게 그럴 권한이라도 있다면 고가도로급 라이더들에게는 태권도의 검은 띠 또는 특전사 요원들의 공중 낙하 기장이라도 수여하고 싶다. 인도급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인도로만 가는 라이더들이다. 신속보다는 안전 주행을 생각하는 라이더들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참을성이 많은 라이더들이기도 하다. 그 다양한 장애물들, 인파와 공존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도심 주행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누리고 싶다면 곧 차도로 내려서게 된다. 차도급 라이더가 되는 것이다. 처음 차도로 내려 선 사람들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마치 목욕탕에서 바로 거리에 뛰쳐나온듯한 벌거벗은 느낌. 맨 몸뚱아리로 질주하는 육중한 쇳덩어리들을 막아내야 할 것 같은 아찔한 막막함. 특히 뒤에서 자동차가 들이박을까봐 간질간질하다. 아니 뒷골이 당긴다고나 할까. 인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듯 일부러 자전거를 들이박아 내가 자전거에서 멀리 튕겨져 나가는 모습을 즐기는 운전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봤을 때는 이미 나를 친 뒤라든지, “죄송해요, 사실 오늘이 운전은 처음이거든요” 또는 “아, 술이 확 깨네요. 그런데 아저씨, 왜 누워 있어요?” 이런 얘기를 길바닥에 피를 흘리며 누워서 들을 개연성은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제 차가 그렇게 큰 지 몰랐어요. 얼마 전 산타페로 바꿨거든요. 그냥 옆으로 피해간다고 생각했는데 받아버렸네요. 많이 아프죠?” 또는 “분명히 아저씨 보고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거든요. 근데 차가 오른쪽으로 가버렸어요.” 그런 얘기들이 귀로 들린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목숨은 붙어 있다는 뜻이니까. 'Miles From Nowhere'라는 자전거 여행기가 있다. 의역하면 ‘정처없이 달리다’라는 뜻일 텐데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를 한 바바라 새비지의 작품이다. 조마조마하며 때로는 낄낄거리며 즐겁게 이 책을 읽던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눈이 멈췄다. 책은 2년여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옆에 ‘추모하며’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이 있고 책 출판이 진행되는 동안 바바라가 캘리포니아주 산타 바바라의 집 근처에서 자전거 사고로 머리를 다쳐 숨졌다고 적혀 있었다. 수많은 위기와 위험을 이겨내고 세계를 일주한 라이더가 집 근처에서 당하다니. 허탈해서 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과 친지들은 세찬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꽃잎 같은 그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매년 좋은 여행기를 골라 바바라 새비지 상을 주고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바바라는 트럭에 당했다. 그 이상의 정황은 모르지만 라이더가 자동차에 당한 가장 극명한 경우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 기억은 엉뚱하게 그들 여행의 폭과 역경에 비할 바 아닌 내게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6400㎞를 달려 미국을 횡단한 라이더, 서울 양재대로에서 새벽 만취 차량에 가다.’ 그런 상상을 하는 걸 보면, 내면의 번다함을 청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80일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자기연민증은 살아남은 듯하다.
그런데 한가지 위안이 되는 통계를 찾았다. 도시 자전거 주행의 대부인 존 포레스터의 <효과적인 사이클링>을 읽던 중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통안전국의 의뢰를 받아 케네스 크로스라는 사람이 조사한 사고통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와 자전거가 부딪힌 사고 중 자동차가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은 경우는 불과 10%밖에 안 됐다. 이중에서도 자전거가 뒤에서 오는 자동차 앞으로 갑자기 뛰어들어서 난 사고가 6%이고 불과 4%만이 운전자의 과실이었다. 요약하면 자동차와 자전거가 부딪힌 사고 중 불과 4%만이 뒤에서 오는 자동차의 잘못에 의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걸 자전거 관련 사고의 전체 숫자에 비해보면 겨우 0.3%다. 자전거와 자동차 충돌 사고의 절대다수는 자전거든, 자동차든 우회전 또는 좌회전 하다가 일어난다. 뒤에서가 아니라 눈 앞에서 사고가 난다는 뜻이며 똑바로 앞만 보고 가도 사고가 날 확률이 극히 적다는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뒷골의 간지러움
세종문화회관 앞에 전시된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 라이더들은 금속 말을 타고 다니는 돈키호테와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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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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