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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0 17:16 수정 : 2006.07.21 16:20

동호대교의 오렌지색은 낮에 보면 주위와 동떨어진 색감이지만 밤에 보면 일부러 무대장치를 해놓은 것처럼 화려하게 빛난다. 동호대교는 차도로 주행하기 시작한 뒤 내가 애용하는 주요 다리가 됐다.

차도 진입 보름도 안돼 59분 기록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는데 지하철보다 빠르다니
책을 못읽는걸 빼도 ‘일석이조’ 지하철 앞지른건 강남 주민들 민원 덕이다
1호선이 생길 때만도 지하철은 혐오시설
2호선이 부도심 성장 거점 되자 3호선부터 유치경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⑤

차도 주행을 시작하면서 출근 시간이 확 당겨졌다.

인도를 달릴 때 지나가던 주요 지형물은 일원터널 양재천 탄천 한강 잠수교 녹사평역 삼각지 남영동 서울역 덕수궁 광화문으로 가장 빨리 도착한 기록이 1시간40분. 차도로 달리면서 잠수교를 버리고 동호대교를 선택한 게 주효했다. 만약 우리 집에서 광화문까지 직선을 긋는다면 그 선은 동호대교와 겹치게 돼 있다. 코스는 한강에 접어들어 동호대교까지 오는 구간은 똑 같고 대교를 건너서 옥수와 금호 두 개의 터널을 잇따라 관통한 뒤 약수동 장충체육관 동대문운동장 청계천을 거쳐 광화문에 진입하는 것이다. 첫 시도에서 1시간10분대를 기록하더니 보름도 안 돼 기록은 50분대로 떨어졌다. 3월24일 내 자전거일지에는 59분을 기록했다고 적혀있다.

드디어 자전거 출퇴근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를 잡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지하철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알고 희열을 느꼈다. 지하철을 타면 1시간 남짓 걸린다. 아침 저녁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는데 더 빨리 오가는 것이다. 책을 읽지 못한다는 점을 빼면 일석이조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음악을 듣고 가는 분들이 있는데 만약 중국어 회화 테이프를 듣고 간다면 그것마저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주행실력이 없기도 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뭔가 아침부터 부산스럽기 때문이다.

어쨌든 목소리가 컸던 강남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지하철이 처음 생길 무렵인 1970년대 초 사람들은 건물에 균열이 가고 소음이 심할까봐 지하철이 자신의 동네로 지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1호선 노선도를 가만히 보면 직선이 아니라 뱀처럼 휘어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직선화하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만 나는 힘깨나 쓰던 사람들이 밀어낸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이 지금처럼 천지 사방 생길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노선이 많지 않으면 교통수단으로서의 유용성이 떨어지니까 지하철을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서울의 새로운 명물 정도로 취급됐다. 74년 개통 당시 서울역과 청량리 구간만 운행했는데 그 때는 긴 의자에 누워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더 주목했다.

그러다 10년 뒤인 84년 2호선이 개통되면서 사람들은 지하철을 다시 보게 됐다. 그에 앞서 편도요금만 내도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에 조금 흥분했다. 사실 한 바퀴가 아니라 두세 바퀴를 돌아도 요금을 한번만 내면 되니까 이렇게 싼 교통수단이 없었다. 지금은 3시간이 지나면 초과요금을 물어야 하지만 그 때는 얼마나 오래 탔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돈 많이 버는 역 1~4위가 2호선

2호선에는 지하와 지상 구간이 적절히 섞여 있어 서울을 관광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나는 비가 올 때면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와 같은 책을 한 권 들고 2호선 전동차에 올라탔다. 그 때는 시간이 짐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번 돌면 1시간 반 가량 걸렸는데 책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면 한바퀴를 더 돌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내려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지하철 2호선이 신촌과 구로, 사당, 잠실과 같은 부도심을 연결하면서 서울은 4대문에 집중된 단핵 도시에서 다핵 도시로 성장했고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마다 부동산값이 뛰었다. 대학들은 근처에 있지도 않은 역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짓도록 로비를 했는데 그 때는 학생들의 파워가 셀 때라서 어렵지 않게 먹혀 들어갔다. 그래서 서울대 입구역 근처에 서울대가 없고 경기대입구 역 근처에 경기대는 없는 희한한 작명이 돼버렸다. 반면 지하철이 진짜 근처로 지나가는 대학은 한양대와 이대처럼 입구 자를 붙이지 않아 나름대로 구분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낙성대를 낙성대학으로 읽을 수 있는 위험은 있지만 그렇게 읽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거라고 가정한다면.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지하철사는 물론 서울 개발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지하철 1호선에서 8호선까지 수백개의 역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역 1위부터 4위가 다 2호선에 있다. 서울 메트로 웹사이트의 자료실에서 찾은 2005년 수송현황에 따르면 강남역은 지난해 하루에 6천5백만원을 벌어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삼성, 잠실, 신림역 순. 1호선의 지존인 서울역의 순위는 7위에 불과하다. 랭킹 10위까지 보면 강변 신촌 선릉역을 포함 7개역이 다 2호선 소속이다. 2호선이 자신이 키운 부도심과 동반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자료실에 가면 흥미로운 통계들이 제법 있다. 일례로 일원역에 지난해 10월 새벽5시에서 6시 사이 미명에 하차한 손님은 하루 평균 모두 19명이었다. 이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시간대에 승차한 사람은 118명이었다. 새벽밥을 먹고 출근해야 하는 이들의 직업은 뭘까. 이런 걸 알아서 뭐해 하는 핀잔이 들리는 듯하지만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거기에 2006월 4월분 서울 지하철의 전력사용량 및 전기요금 통계도 있다는 걸 알려드린다.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건설될 무렵에는 이미 지하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었고 서로 역을 끌어들이려고 데모까지 했다. 특히 발언권이 센 강남의 경우 주민들의 민원이 거세 노선이 많이 휘었고 ‘불필요하게’ 역을 많이 만들었다. 그 결과 내가 일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까지 가면 탑승시간만 45분이 걸리고 도보시간을 합쳐 출근시간에 1시간을 쓰도록 하고 결국 자전거에게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 얘기를 하려고 너무 돌아온 셈이다.

내가 주행하는 자전거 코스도 어느 정도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만약 강남의 시내를 관통해 동호대교를 탄다면 보다 더 시간을 줄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양재천과 탄천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가 아름답고 편한데다 그 코스로 가도 지하철보다 빠른데 굳이 질러갈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출퇴근길에 지하철이 완전 용도폐기된 것은 아니다. 황사가 자욱한 날, 마스크를 써도 먼지를 막을 수 없는 날에는 나는 황사 때문에 일원역에서 광화문까지 새로 뚫어놓은 지하통로라도 되는듯, 아니면 화생방대피소라도 찾듯 지하철을 이용했다. 어쩌다 한번씩 타니까 지하철도 새롭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것은 시선의 쿠데타였다. 모두 한 방향의 버스 좌석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 지하철의 마주보는 두 줄 좌석은 어색한 충격이었다. 모르는 타인들이 서로 뻔히 얼굴을 마주봐야 했으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그냥 눈을 감거나 아니면 딴데를 쳐다보는 과정에서 시선이 교란되고 결국 국민적 시력 난시화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도 난시가 좀 있다. 아름다운 이성이라도 앞 좌석에 앉으면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해야 하겠지만.

청계천 자전거도로 꿈꿨건만

지하철의 기능은 또 있다. 자전거는 대리운전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많이 마시면 대리운전을 부르듯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귀가한다. 그렇다고 지하철 안에서 버젓이 자동차 운전자가 대리운전을 쓸 때 자신의 차 안에 앉아있는 것처럼 안장에 앉아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까지 튀는 편은 아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의 눈길이 꽂히는 판인데 조신하게 행동한다. 내가 자전거를 번쩍 들어 개찰구를 통과할 때 놀라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 마치 내가 힘깨나 쓰는 장사나 된 듯하다.

눈총 대신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은 다 지하철 3호선에 승객이 적은 탓이다. 2호선이라면 도저히 자전거를 실을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 공간을 비집고 자전거를 싣는다면 눈총 정도가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텐데. 그런 점에서 역을 많이 만들고 노선을 휘게 해서 승객 수가 적도록 해준 당시 주민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어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짙어지는 어둠과 엷어지는 어둠. 같은 어둠이라도 전자는 두려움을 주고 후자는 기대감을 준다. 사실 보이는 라이더로 전환한 초반에는 출근길이 여전히 어두웠다. 그래도 차도로 갔는데 가다보면 동이 터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위대한 사람들은 바로 이런 역사적 전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의를 버리고 타협하는 사람들은 퇴근길의 나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퇴근할 때는 갈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차도로 가기가 꺼려졌다. 밤에는 왠지 사람들이 피곤해서 또는 방심해서 운전을 함부로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일에 지쳐 아침의 집중력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어둠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래서 퇴근할 때는 보이지 않는 라이더로 돌아갔다. 적극적으로 자전거도로를 찾았다.

청계천이 복원되는 동안 나는 미국에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청계천 산책로에 자전거도 통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 수서에서 자전거도로만 타고 광화문까지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가슴이 설렜다. 만약 수량만 충분하다면 여름에 퇴근할 때는 청계천 중랑천의 물결을 따라 수영을 해서 한강에 합류, 청담대교 부근에서 도강한 뒤 뛰어서 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야무진 꿈까지 꿨다.

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적어도 자전거통행만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는 빗나갔다.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광화문에서 청계천로를 따라 마장동 우시장까지만 차도로 간 뒤 동대문구청이 보이는 입구에서 자전거도로로 들어갔다. 이 도로는 곧 중랑천을 만나고 중랑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동호대교에 이른다. 거기서 자전거를 번쩍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 한강을 건널 수 있다.

중랑천은 산업폐수로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였지만 언젠가 일급수에서만 사는 은어가 잡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내 후각으로는 중랑천이 탄천보다 냄새가 덜 난다. 아마 유속이 탄천보다 빠른 탓인지도 모른다. 천의 유역이 넓어서 탁 트인 느낌까지 더 좋다. 철새도래지도 있고 살곶이라는 오래된 다리도 있다. 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조그만 바위섬도 하나 있는 걸 알게 됐다. 서울에서 아주 먼 곳까지 온 듯하다. 자전거 덕분에 중랑천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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