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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17:29 수정 : 2006.07.07 14:45

하늘에서 그냥 콘크리트를 쏟아부은 것처럼 서울은 아파트로 뒤덮여 있다. 제일 앞에 보이는 게 타워 팰리스. 나는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한곳에 오밀조밀 모여 살아주는 게 감사하다.

도로 포장은 애초 자전거를 위해서 했다
고토회복 농성이라도 할 판에 차도 진입 쭈뼛대지 말고 당당하자
대신 ‘보이는 라이더’로 전환해 사고를 막자
운전자는 우릴 투명인간 취급하니까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④

도시는 시골과 대비해서 언제나 죄악시된다. 전원을 기리며 콘크리트 삶을 개탄한다. 시골에는 정겨운 마을이 있었고 장독대 위에서 아들 딸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도시는 공기도, 인심도 나쁘다. 북적대고 지저분하다. 반면 시골에는 사람들과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 있다. 그 조화를 상징하는 다른 표현이 고향이다.

그래서 도시가 고향이라는 아이들을 볼 때, 우리 아들처럼 태어난 곳이 여의도 성모병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상실한 채 인생을 시작했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근데 과연 그럴까. 연세 드신 분들이 고향송가를 부를 때 나는 그것이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혼돈과 속도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안식처. 그러나 그것은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기억 속의 안식처라면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나는 그런 곳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곳이 하얀 병원 침대일지라도.

오히려 시골의 삶에는 고된 노동이라는 씨줄과 봉건적 질서라는 날줄로 엮인 그물이 쳐져 있었다. 파울 볼이 날아오지 않도록 야구장 본부석 앞에 쳐있는 그물처럼 잘 보이지 않는 그물. 차별이 관습과 도덕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곳이었다. 칠거지악이 있던 곳, 반상 차별이 있던 곳, 맏아들이 싹스리하던 곳, 집안의 정혼이 있던 곳.

반면 한 때 도시가 상징한 것은 자유과 개인이었다. 내게는 어릴 적 진해만에서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던 마산항이었다. 마산은 내게 흰색 건물들이 눈부신 햇볕을 튀기며 줄지어 서 있는 나폴리였다. 나는 바다를 헤엄쳐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것은 근대적 개인으로 태어나고 싶은 욕구였다. (20여 년 뒤 실제 마산 수출 자유지역을 가봤을 때 낡은 건물들의 퇴락한 도시를 발견하고 씁쓰레 하긴 했지만)

지금은 봉건과 근대, 친족과 개인의 대립으로 시골과 도시를 이분화하기 어렵다. 도시에는 새로운 봉건성, 자본의 축적에 따라 서열화되는 질서가 생겨버렸고 마을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시골은 도시의 신 봉건성에서 탈출하고 싶은 근대적 개인들에게 터를 내주고 있다. 이름 하여 전원생활. 그러면서 다시 도시에 대한 경멸이 시작된다.

그러나 나는 도시가 좋다. 낯선 타인들과 우연히 모여 사는 게 좋다. 그 익명적 개별성이 좋다. 관찰 당하지 않으면서 관찰할 수 있는 게 좋다. 무엇보다 도시는 인류의 지혜가 응결된 결정체라고 믿는다. 도시에서는 좁은 공간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 지구를 아껴 쓴다는 점에서 도시가 생태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처럼 인구가 조밀한 나라에서 아직 많은 땅이 비도시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도시 때문이다. 특히 부자들이 타워 팰리스처럼 63빌딩보다 더 높은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게 고맙다. 그것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끼리끼리 모여사니 더욱 감사하다. 안 그랬으면 넓은 땅을 사들여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을 테니까. 그들이 ‘소박하게’ 공중에 점유하고 있는 103평짜리 집 한 채 값은 시골에 가면 수십만 평의 영지를 만들고 남을 액수다.

서울 신대방동에 살 때 서울예식장 집이 있었는데 높은 축대 위의 어마어마하게 넒은 땅에 큰 집을 짓고 살았다. 그 대문 안을 한번 들어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몇 년 전 가보니 그 집은 사라지고 연립주택 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신대방동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동네의 맹주 역할을 하던 부잣집들은 소개된 것처럼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강남의 초고층아파트에 부자들이 집결했다. 난 이걸 공간 아껴쓰기의 사례로 본다.

서울의 대표적 건축양식은 바로 아파트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곳곳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쌓아올라가는 대도시는 드물 것이다. 산 위에서 보면 마치 하늘 위에 레미콘 차를 대놓고 콘크리트를 뿜어댄 것처럼 보인다. 공간을 조금이라도 짜내려는,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도 극단으로 치닫으면 미학의 경지까지 올라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미와 대비되는 실용적 인공미의 극치.

부자들 타워팰시스 모여사니 감사

청계천 마장동 부근에서 퇴근 무렵에 바라본 내부순환도로. 마치 굵은 붓으로 휘갈겨 놓은 듯 도로가 꺾어지는 모습이 인공미를 느끼게 한다.
개발 연대에 급증하는 도시 인구를 소화하기 위해 우후죽순 생겨난 슬라브 양옥들이 내게는 전혀 흉물스럽지 않다. 자못 향수까지 든다. 그렇듯 우리 아이가 성장해서 아파트를 보고 향수를 느끼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서울의 미는 한옥 골목길에서부터 대단위 아파트의 지하상가까지 한 뼘의 공간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집념이다.

그렇게 밀집한 서울을 즐기는 합리적 방법이 자전거다. 천천히 가면서 구석구석 볼 수 있지만 다른 교통 수단에 비해 유용성이 떨어질 만큼 느리지도 않다. 자전거는 기원에서부터 도시적이다. 도시에서 최첨단 발명품으로 태어났고 양산되기 시작했을 때 대당 가격이 헨리 포드가 조립공정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T 모델 자동차의 대당 가격보다 더 높았다. 도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도로 포장도 공기주입식 고무 타이어가 개발되면서 자전거의 주행을 위해 시작됐다. 처음에는 천연 아스팔트를 썼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남미의 작은 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질 좋은 천연 아스팔트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도로 포장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은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에서 아스팔트 성분을 추출하면서부터다. 그렇게 잘 닦아놓은 길로 자동차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자전거가 밀려나게 됐으니 라이더들로서는 ‘고토회복’을 부르짖으며 도로 연좌농성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게 쑥스러우면 그냥 차도로 가면 된다. 남의 땅에 무단 침입한 것처럼 쭈뼛대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차도는 라이더들의 고향이다. 그러나 운전자들과 달라야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향기로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바이크 라이더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유는 단 한가지다. 붙으면 깨지는 것은 항상 라이더이기 때문이다. 사고의 책임과 원인 규명은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피해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부러진 쇄골이, 깨진 두개골이 원상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우리 잘못이다. 그런 생각으로 주행을 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인도형 라이더에서 보이는 차도형 라이더로 전환할 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다. 운전자들이 우리를 봤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우리를 못 봤을 거라고 가정해야 한다. 요란한 사이클 복을 입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때로 운전자들의 시선은 라이더들의 몸을 투과해 지나쳐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도시의 경락 ‘맨홀’ 요주의 1호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등을 기다릴 때는 요리조리 자동차들 사이를 파고 들어 맨 앞에 앞을 가로막고 운전자들의 눈엣가시가 돼야 한다. 눈을 마주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러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잽싸게 도로의 가장자리로 피해주면서 운전자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등 뒤에서 울리는 경적을 ‘아 나를 봤다고 신호를 보내주는구나. 참 고마운 운전자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낮추지만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 그런 사람. 길은 도시 라이더들에게 인성 훈련의 도장이다.

그리고 길을 공부해야 한다. 길찾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길눈이 밝은 것만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도로학 개론을 청강하면서 “기능의 분류에 따르면 고속 주간선 보조간선 집산 국지 도로가 있고 도로법의 분류에 따르면 고속국도(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군도, 구도 등이 있다”고 외우는 걸 뜻하지도 않는다.

애인의 머릿결을 쓰다듬듯 길에 난 균열을 확인하고 패인 구멍의 다양한 생김새를 파악하고 튀어나온 맨홀과 표층의 고도차이를 가늠해야 한다. 황색 청색 백색 그리고 실선 점선으로 이뤄진 차선의 차이를 이해하고 밤에 빛을 반사하기 위해 차선에 박아놓은 표지병의 위치를 머리 속에 넣어두는 한편 중앙으로 솟은 차도의 기울기를 계산해야 한다. 길의 모든 요소가 때로는 치명적인 위험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병을 갑자기 발견하고 핸들을 왼쪽으로 트는 순간 뒤에서 오는 차에 받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요주의 리스트의 1호가 맨홀이다. 사람이 들어가는 구멍이라는 뜻의 맨홀은 사람 잡는 덫이 되기도 한다. 맨홀의 세계는 도시의 기능만큼 오묘하고 복잡하다. 맨홀이 있으면 반드시 그 아래에 관이 있다는 뜻이다. 온갖 종류의 관들이 도로 아래로 지나간다. 전기, 전화선, 광섬유, 유선방송 케이블, 도시가스, 빗물, 오수, 상수도… 그 많은 관들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도로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게 경이롭다. 맨홀은 바로 그 관들의 경락과 같은 존재다. 관이 시작되거나 나눠지는 지점 그리고 관의 굵기가 바뀌는 곳 또는 관이 직선으로 길게 있으면 그 중간쯤에 맨홀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람이 들어가서 손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의사가 환자의 경락에 침을 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맨홀의 모양이 대부분 원형인 것은 사람이 어깨가 걸리지 않아 작업하기 쉽고 뚜껑의 아귀가 안 맞아서 틈이 벌어지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맨홀 뚜껑을 뜯어서 고철로 팔곤 했다. 신문의 사회면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만큼 자주 맨홀 사고가 보도됐다. 맨홀에 빠져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최근에도 맨홀에서 새어 나온 전기에 감전돼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라이더들에게 맨홀이 치명적인 것은 표면이 미끄럽고 가끔 뚜껑이 위로 삐져나와 있어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 바퀴 달린 자동차조차도 맨홀 뚜껑에 걸려 전복되는 사고까지 있을 정도니.

내가 차도로 내려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무질서한 맨홀들의 행진이었다. 맨홀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몸으로 배우는 공부였다. 도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고 나는 도시를 보다 더 이해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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