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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4 17:58 수정 : 2006.07.04 17:58

선유도로 가기 위해 군산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흑산도와 홍도 여행을 끝마친 후라 굉장히 피곤했다. 개 때문에 집에 들렀다가 군산으로 올라가느라 늦어 질 수밖에 없었다. 새벽 두시 쯤 눈을 붙였을 것이다.

일어나니 10시였다. 둘이다 굼뜬 성격이라서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택시를 타고 배 시간을 얘기하니 기사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가 봐야 알겠는데요.”

택시는 총알처럼 달리면서도 신호위반까지 해야 했다.

“너무 일찍 와 부렀네유.”

택시 기사가 어눌하게 말을 했다. 늦었다는 말인 줄 알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승선 7-8분전이었다(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도 농담을 기대하는 내 심리가 좀 우습긴 하다).

표를 끊고 선착장으로 나가자 뱃고동이 울렸다(배를 타려면 기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꾸무럭대면 오 분 정도는 쉽게 가버린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이다. 300명 정도가 정원이었는데 손님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선유도에서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무녀도나 장자도를 잇는 다리가 약해 차가 다닐 수 없는 까닭이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가능한데 간혹 오토바이가 갈 수 없는 곳이 있어 자전거가 바람직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우리는 개인당 5천 원씩 주고 승합차를 탔는데 선팅이 되어있고 승객이 많았다. 그들은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곧 나갈 사람들이었다. 비좁고 바깥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지만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자전거는 한 시간에 3000원, 오토바이는 둘이 탈 수 있는 게 한 시간에 2만원이니 오히려 승합차가 싼 셈이다. 승합차 기사는 먼저 탔던 사람들을 내려주고 우리를 위해 섬을 더 돌았다.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곳을 들렀다.

고마움에 기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K가 하룻밤을 묵자한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개 때문에 집에 가야하는데, 라는 말을 하면서도 얼른 일어나지 않는다. 벌써 술 몇 잔을 들이 킨 탓이다.

기사가 안내해준 곳은 섬 뒤편이었는데 조용하고 파도소리는 좋았지만 방값이 너무 비쌌다. 텅텅 비어 있어도 사만원 이하로는 안 된다는 말에 그들이 돈에 너무 집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도는 여관이 25,000원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선유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여관으로 갔다. 페인트 칠 위에 때가 끼었는지 건물이 거무죽죽한 빛깔을 띠고 있다.

마침 손님이 한 팀 들어 있었다. 그들은 잡아온 조개를 물에 씻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선유도 명사십리 해변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바다로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해는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구름에 덮인다. 주변의 섬들이 까만 빛깔로 변할 때까지 나는 해변에 앉아 있었다.

눅눅해진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서 돌아보니 가깝게 있는 망주봉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선유도에 유배된 선비가 그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임금을 그리워하였다는 사연이 깃든 산이다. 망주봉은 바위산인데 산 중턱에 원추리 꽃이 한창이다.

여관으로 오니 낮의 그 팀이 술이나 한잔 하자며 이층에서 내려온다. 부부와 딸, 세 사람이다. 60대 초반의 남자는 과묵했다. 오십대 중반이라는 남자의 아내는 젊어 보이기도 했지만 늘씬하고 예쁘다. 그 팀과 우리는 갑오징어 회에 소주를 마셨다.

남자의 아내는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좌불안석이었다. 담배도 한 개비 입에 물었다. (심리적인 불안증처럼 보였다.) 나는 집안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어요. 남자의 아내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아내가 이층으로 올라가자 내가 말했다.

“아내를 공주처럼 떠받들고 살으셨군요.”

“그게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아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순진해서요.”

나는 착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가 지워버렸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선유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얘기가 흘러간다. K가 섬에 다리를 놓는다는 것 자체가 섬을 망가뜨리는 일이라 하자 남자는 선유도의 70- 80% 정도의 땅이 외지인에게 넘어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졸부라고 일컫는 사람들 외에 기업인들에게도 넘어갔다는 말이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았던 땅의 소유주 중 외지인들이 60%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진지하게 말을 하던 남자는 아내가 창을 열고 부르자 부리나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K는 또래인 여관 주인 남자와 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홀애비라 한다. 요즘 섬에는 홀애비가 많은가 보다. 여자 둘이 여행을 왔으니 그 남자는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얘기가 길어진다. 하지만 술이 내게 잠을 청한다. 소주를 한 병 반쯤 비웠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단을 밟았다. 얼마나 골아 떨어졌던지 발목 근처에 모기가 거미집을 지었는데도 모를 정도였다. K는 벌써 이불을 개고 앉아있다. 침대가 아니라서 허리가 아파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나가자. 섬을 돌아야지.”

K가 일어선다. 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자욱하다. 장자도와 대장도를 보기 위해 우리는 장자대교를 건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온다. 걷다보면 간혹 하얀색의 펜션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섬엔 인동초, 해당화, 땅찔레가 많다. 그것들은 지금 꽃이 한창이다. 인동초는 수수한 꽃이지만 해당화는 장미 계열이라 화려하다.

“저걸로 바구니도 짤 수 있어.”

땅 바닥이나 바위를 타고 기어오르는 땅찔레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K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까운 바위틈에 샛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K는 몸을 구부리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장자도의 민박집은 거의 다 흰색이며 펜션 형태이다. 길 중간쯤에 이르자 개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선다. 그물을 손질하던 아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몇 번 불렀다. 개는 곰살궂은 표정이 되더니 그쪽으로 간다.

방파제를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산이 낮아 완만한 길이다. 소나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거미줄에 달라붙어있는 자잘한 물방울이 부담스러워 보인다. 중간에 팔각정이 지어져 있어 올라갔다. 내려다보았지만 가까운 바다조차 안개에 자취를 감춘 상태이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해도 안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장자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대장도이다. 대장도에 할매바위가 있어 선유도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나는 할매바위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바위를 쳐다보며 소원을 빌었다. 대장도를 마지막으로 돌고 식당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표를 끊고 선착장으로 나오는데 K가 마치 잃어버린 물건이 있는 것처럼 허둥거린다.

“왜?”

“여기까지 와서 무녀도에 들르지 않으면 되겠어?”

배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별 무리는 없겠다싶었다. 우리는 두 시간 후의 배표로 바꿨다.

무녀도라는 독특한 이름을 지닌 그 섬은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이 되어있다. 무녀가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고 부른다한다. 긴 다리를 건너니 포장마차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물 한잔도 얻어 마시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니 그냥 지나친다. 구부러진 길을 조금 더 가는데 풀만 우거진 숲이 나타난다. 푯말이 세워진 그곳은 풍장터이다. 관 위에 짚을 덮어 두고 사체가 미생물에 분해 되길 기다렸는데 초분이라고도 한다. 그런 생각에 수풀을 쳐다보던 나는 금방 걸음을 떼지만 K는 카메라를 들고 그 주변을 맴돈다.

물어물어 염전을 찾아갔더니 기우뚱한 소금 창고가 보인다. 낡고 초라한 소금 창고에는 소금이 없다. 염전에도 소금은 없고 더러 풀만 깔려있다. 주변 초등학교의 운동장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섬이 개발이 되면 그나마 아이들이 남아 있을까싶다.

안개는 아직도 섬 주변을 맴돈다. 안개도 볕을 차단하는 데에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내 얼굴은 잘 익은 사과빛깔이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다음배가 결항이라고 배가 지체를 한다.

미련이 남은 것처럼 창가에 앉아 섬을 쳐다본다. 신선이 놀다간 곳이라하여 선유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섬, 선유도.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망주봉의 전설이나 할매바위의 전설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꾸물거리던 안개도 뱃머리를 벗어난다. 바다에 꽂힌 햇살이 눈부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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