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할대 타율 넘보게 만든 투박한 개성손맛
야구에서 4할은 꿈의 타율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 이후 단 한 사람도 4할을 넘기지 못했다. 10번 중에 4번 안타 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신의 책 〈풀하우스〉에서 “어째서 더는 4할 타자가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답이 재미있다. 야구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선수들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인원으로 구성되며, 경기의 질도 높아지기 때문에 ‘4할이라는 변이’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읽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늘은 또 어디 가서 밥을 먹나”라는 고민을 할 때마다 야구선수가 된 듯한 기분이다. 홈런은 치지 못하더라도 조미료 좀 덜 쓰고 손맛이 살아 있는 집을 골라내 겨우 1루에 출루만 한다 하더라도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일찍이 미식가 선배들은 ‘간판만 보고도 그 집의 맛을 알아낼 수 있는 비법’을 후대에 전수하였거늘, 내 경우엔 그 비법도 별 소용이 없어서, 나의 ‘맛있는 식당 고르기 타율’은 고작 2할대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당들이 좀더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나도 4할대의 타율을 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포부를 갖곤 한다. 일산의 ‘개성가(家)’는 최근 내가 쳐낸 안타 중 하나다. 홈런까지는 아니고 한 2~3루타쯤이 될 법한 맛이지만, 그 위치 때문에 값어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개성가는 (참, 신기하게도) 개성 없는 집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산 라페스타 근처의 개성음식 전문식당이다. 가게의 깔끔한 외관만 보고는 너무 새침하고 깍쟁이 같은 맛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개성가에서 처음 맛본 음식은 김치찜이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한마디로 터프하다. 몇 년을 묵혔어요, 우리 집만의 비법이 있어요, 절대 안 가르쳐줘요라고 으스대는 여느 김치찜 전문집보다 훨씬 나았다. 길쭉하게 통째로 익혀 내놓은 김치와, 그 위에다, 역시 터프하게 얹어놓은 돼지고기의 맛이 잘 어울렸다. 홈런까지는 아니었고, 펜스 상단을 맞고 퉁겨 나온 3루타쯤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말 그대로 겉과 속이 다른 빈대떡의 맛도 일품이었고, 먹을수록 입안이 얼얼해지는 흑돼지 두루치기의 졸깃함도 마음에 들었다. 굴만두의 맛도 특별하다.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닭고기를 빼고 내놓는 개성온반-내 경우엔 닭고기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지만-역시 털털하게 친근한 맛이었다.이 집의 모든 음식 앞에는 개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개성김치찜, 개성녹두빈대떡, 개성온반, 개성새우수제비…. 이 음식이 정말 개성식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의 오리지낼리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몰라도, 상관없다. 맛있으면 그만이다.
소설가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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