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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8 21:21 수정 : 2006.05.18 23:18

섬진강변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 앞 ‘무딤이들’을 보랏빛 자운영 꽃들이 수놓고 있다.

지리산 자락 올망졸망 마을들
골골마다 아늑한 고향의 정취
“월선네 임이네는 밭일 가셨나”

‘토지’의 무대 섬진강과 악양

해질 무렵 섬진강으로 나갔다. 강물이 느릿느릿 하동포구로 흘러가는 길목에 아늑하게 펼쳐진 금당 모래밭을 걸어 반짝이는 강물에 발을 담갔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굽이돌아 오백리 물길을 흘러온 강은 넉넉한 손길로 지친 다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포구 멀리 거랭이로 재첩을 훑는 쪽배 두 척 한가롭게 떠있다. 팔십리 하동땅을 적시며 남해에 몸을 푸는 강줄기를 바라보다 문득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김용택 ‘섬진강 3’

고운 모래가 많아 모래가람, 다사강, 두치강이라 불리기도 했던 강. 속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맑은 섬진강 줄기를 따라나섰다. 벚꽃길과 배꽃길, 대나무숲길, 차밭길을 서성이다 보면 골골마다 아담한 강마을들과 마주친다.

그러다 지리산 남쪽 자락 형제봉(성제봉) 아래에 이르자 악양이 잔볕에 졸고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땅. 미점리 개치마을을 지나 외둔삼거리를 접어드니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 만한 넓은 들이 펼쳐졌다. 평사리 외둔마을 앞 ‘무딤이들’은 보라색 자운영꽃과 청보리로 뒤덮였다.

지리산 시루봉에서 흘러나온 악양천이 작은 하천들과 만나 무딤이들을 적시면서 어머니 섬진강의 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보리가 한창 패기 시작하는 들판을 가로지르자 부부 소나무 너머로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나타난다. 3000여평의 터에는 용이네 월선네 귀녀네 초가와 최참판댁의 화려한 대가가 세워져 있고, 조선 후기 우리 민족 삶의 생활모습을 담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개면 부춘마을 야생차밭에서 마을 주민이 찻잎을 따고 있다

악양면 노전마을로 귀농한 이창수씨 부부가 찻잎을 덖고 있다

농촌과 산촌이 함께 어우러진 악양은 소상팔경을 비롯해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악양의 들머리 개치마을과 외둔마을, 대봉감의 시배지로 이름난 큰둔이(대축)마을, 동매마을, 청학동의 전설이 서린 매화꽃의 매계마을과 노전마을 …. 지리산 마지막 자락에 14개 리 30개 마을이 앞으로는 어머니 섬진강에 팔을 벌리고 아버지 지리산의 품에 안겨있다.

악양면 소재지 주변에 올망졸망 펼쳐진 산골마을에는 층층이 쌓아올린 다랑논에 보리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고 부지런한 농부는 모내기 준비에 바쁘다. 산기슭에 조성된 야생차밭에는 삼삼오오 시골아낙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마을마다 담쟁이로 뒤덮인 돌담이 아득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3년 전 전주 모악산에서 악양면 동매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는 박남준(50) 시인은 “악양은 널리 알려진 유원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나 술집, 노래방 등이 없고 사람들도 순박한 편이어서 한적한 시골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악양의 산골마을 곳곳에서 번잡한 도시생활을 떠나온 문인과 화가들의 한거를 발견하곤 한다. 신문사 사진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6년 전 악양에 내려와 노전마을에서 차를 재배하고 있는 이창수(48·순천대 사진학과 강사)씨는 “골마다 고향에 대한 까마득한 향수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늘 새롭고 어디를 둘러봐도 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하동/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차 한잔 하시게” 천년의 향기 유혹
야생차 축제 다양한 행사 펼쳐

하동은 우리나라 차 시배지답게 직접 차를 재배해 만든 수제 차를 파는 전통다실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 줄기인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었다. 특히 화개장터 입구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야생 차밭이 화개동천 계곡 주변을 따라 8㎞ 가량 이어진다. 화개차는 대밭의 아침이슬을 머금고 자란 싱그러운 차나무의 잎으로 덖어 만들어 죽로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야생차의 고향답게 하동군은 해마다 5월이면 ‘하동 야생차문화축제’를 여는데 올해 제11회 하동 야생차문화축제는 18일부터 21일까지 화개면 다시배지(쌍계사)와 진교면 백련리 샘골마을 찻사발 도요지에서 펼쳐진다.

화개골 지리산 기슭에 서린 천년의 향기를 달빛으로 우려내고 빛 고운 막사발로 맛보는 하동 야생차문화축제는 한국 최고 차나무 헌다례를 시작으로 대렴공 가장행렬, 세계 명차전 등 모두 일곱 분야 120여 가지 행사로 꾸며진다. 또 해차 무료 시음, 다도체험, 전통 차 만들기, 녹차 마사지, 찻사발 만들기, 관광객 찻잎 따기, 야생차 재배농가 체험, 제조공장 견학, 산사음악회 등 다채로운 가족 체험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6. www.hadong.go.kr.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2000년 국내 최초의 민간 차박물관으로 설립된 매암차박물관(관장 강동오)에서도 19일부터 21일까지 ‘제7회 매암차문화축제’를 연다.

‘차, 그 좋은 인연’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민간축제는 박물관 안에 있는 1만여평의 녹차밭에서 ‘차울력’(차 만들기)과 ‘찻자리’(들차회), 다식 만들기, 매암 강화수 옹의 ‘차문화사 강의’ 등이 펼쳐진다. 또한 그림책 작가 오치근씨와 산골 아이들이 함께 만든 ‘악양의 오래된 이야기’전, ‘차 유물전’으로 꾸며진다. 이와 함께 가수 정태춘·박은옥씨 부부의 노래공연, 백무산·박남준·이원규 시인의 ‘차와 노래’ 주제 시낭송회도 열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특별 초대손님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초청해 관람객들과의 뜻깊은 만남도 준비했다. (055)883-3500. www.tea-maeam.com.

정상영 기자

여행 정보 악양면 등촌리 최참판댁 뒤편에 있는 형제봉(성제봉·111)에 오르면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의 풍성한 들녘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강 건너 백운산의 자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해마다 5월 말께 형제봉 철쭉제가 열린다. 또 형제봉 중턱에 자리잡은 고소산성(300m)은 성벽은 둘레 약 560m, 높이 3.5~4.의 견고한 석성으로 600년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번호 055)

♤가는길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진주~남해고속도로~하동 나들목

동서울~중부고속도로~호법 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

♤먹거리

자연산 재첩국 전문 여여식당(884-0080), 자연산 활어회 전문 풍어(884-7330), 참게탕 전문 은성회식당(884-5550), 지리산 토종닭 전문 범바구식당(882-7359), 솔잎한우 전문 하동솔잎한우식당(883-6686) 등이 있다.

♤숙박

하동읍에 섬진강변의 관광호텔 미리내호텔(884-7292)을 비롯해 악양면의 알프스여관(884-6427), 화개면의 쉬어가는 누각모텔(884-0151~2), 그랜드모텔(884-3778·3245), 화개파크(884-1811), 화개랑모텔(883-0485) 등과 민박집 토담농가(884-374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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