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 가정에 매달린 경제학자들
심리학 연구성과 받아들이는 데 인색
‘사람’ 분석이 빠진 이론체계
‘시장의 실패’냐 ‘제도의 실패’냐에 주목
행동경제학, ‘중요한 건 선호다’ 주장
주체의 비합리성에서 ‘실패’ 원인 찾아
세일러, 이득보다 손실에 민감 밝혀내
넛지 등 ‘무간섭 온정주의’ 대안 제시
[토요판] 최정규의 우울하지 않은 과학
⑪ 세일러와 행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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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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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지난 9일 저녁 노벨상위원회는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시킨 공헌”을 인정해 미국 시카고대학교 리처드 세일러 교수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상위원회는 세일러 교수의 업적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손실회피, 초기부존효과, 심리적 계정 등의 개념을 통해 의사결정자의 비합리성에 대한 연구를 체계화한 점, 둘째, 공정성이나 정의감 등 사회적 선호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킨 점, 그리고 셋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는 데서 흔히 드러나는 의사결정자의 통제력 부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론을 구축한 것.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가 보여주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에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공정함을 추구하는 존재다.
오랫동안 경제학과 심리학은 서로를 반목해왔다. 심리학자들은 지속적으로 경제학의 출발점인 합리적 행위자들이라는 가정을 문제 삼았고, 경제학자들은 이런 지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현실의 인간을 보라. 이들은 당신들이 가정하는 만큼 합리적이지 않다”는 심리학의 메시지는 날카로웠지만, 경제학의 단단한 성채를 뚫지는 못했다. 경제학이 수학적 엄밀함에만 치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이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좀더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두 학문이 바라보는 곳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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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동일한 크기의 위험에 대해서, 위험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변화(즉, 이득)보다 위험을 떠안는 방향으로의 변화(즉, 손실)를 더 크게 느끼는 편이다. 손실회피 경향은 행동경제학의 주된 연구주제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전광판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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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성의 원인은 ‘선호의 실패’
행동경제학이 등장하기 이전, (행동경제학이 아닌) 경제학의 기본적인 관점은 이랬다. 경제에서 비효율성이 발생하면 그것은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혹은 정부나 여타 제도적 요인이 잘 기능하지 못해서라고. 그리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든 국가든 그 제도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제학자들은 생각했다. 경제학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갖고 움직이더라도” 그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잘 굴러가는 제도를 찾고자 노력했고, 시장이 바로 그러한 제도임을 증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엄격한 가정하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서만 행동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최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그런데 이때 필요한 엄격한 가정들이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으면 당연히 시장도 최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기에(이를 시장의 실패라 부른다) 그러한 문제를 교정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시장 외적 제도에 주목했다. 외부성이 있을 때 조세를 통해 교정해야 하는지, 소유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독점이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면 가격규제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혹은 독점의 형성을 막기 위해 어떤 법적 조치가 필요한지 등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시장이 실패할 때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며, 어떻게 제도를 짜야 하는지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시기가 바로 1980년대였고, 이러한 노력은 이른바 ‘신제도경제학’이라는 분야를 열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분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제도의 실패를 논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논할 때 경제학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불변이며 일관된 선호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저 합리적 의사결정자들이었다. 비합리성은 있더라도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경쟁 속에서 비합리성은 학습되고 교정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안정된 선호를 가지고, 제도가 부여하는 인센티브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는 존재이면 충분했고, 그 외 심리적 요인들은 오히려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것으로 여겨져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됐다. 이처럼 경제학은 의사결정자들의 다양한 동기와 편향을 연구하는 심리학과는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중요한 것은 제도다”라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선호다”라고 말한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행동경제학자라고 불렀다. 이들은 경제에서 어떤 비효율성이 보이면, 그 원인을 시장의 실패나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말하자면 “선호의 실패”, 즉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성에서 찾았다. 이들은 그동안 심리학 분야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증거들을 본격적으로 경제학으로 가져오기 시작했고, 이를 체계화하고 범주화했으며, 현실에 존재하는 비효율성이 제도가 아니라 의사결정자들의 비합리성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논의는 풍부해졌고, 현실의 사례들과 데이터가 축적되어 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선두에 있었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심리학 분야에서 그리고 경제학 내부에서 파편적으로 진행되었던 행동연구 성과들을 정리해냈고, 그 결과를 <저널 오브 이코노믹 퍼스펙티브>라는 학술지에 ‘이상현상들’이라는 특집을 통해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인 로빈 도스와 함께 이타성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대니얼 카너먼과는 초기부존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썼으며, 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와는 금융시장에서 의사결정자들이 보이는 행태들에 대한 논문을 썼다. 수년에 걸쳐 이 특집에는 십여편의 논문이 실렸고,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소개되었다. 이 특집을 계기로 행동경제학의 목소리가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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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우고도 정작 실행에 실패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금연이다. 리처드 세일러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계획자’의 입장에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정작 ‘실행자’의 입장이 되면 눈앞의 이득과 손실이 크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진은 ‘세계 금연의 날’을 맞은 2016년 5월31일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금연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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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실패? ‘계획자’와 ‘실행자’의 차이
세일러 교수는 1980년 박사학위 논문을 쓸 당시부터 손실회피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손실회피란 이득보다 손실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동일한 크기의 위험에 대해서, 위험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변화(즉, 이득)보다 위험을 떠안는 방향으로의 변화(즉, 손실)를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박사 논문에서 사용한 사례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0.001의 확률로 치사율 100%의 희귀병에 걸릴 위험이 있을 때 이 병을 완벽히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경우를 들어, 지금은 건강한 상태인데 0.001의 확률로 죽을 수도 있는 의학 실험에 참가를 권유받는다면 이 실험에 참가하기 위해 최소한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같은 크기의 위험인데도 전자와 같이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의 변화보다 후자처럼 손실이 발생하는 방향으로의 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두 배가 넘는 가격을 불렀다. 즉, 같은 크기라도 이득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선택에서 이러한 손실회피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며,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비효율성을 낳는지를 보고자 연구를 진척시켰다.
세일러 교수는 손실회피 현상이 다양한 거래와 의사결정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대니얼 카너먼과 잭 네치와 함께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머그잔을 무작위로 나눠준 뒤 머그잔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포기하기 위해 얼마를 받아야 하냐고 묻고, 머그잔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들은 전자에게서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작위적으로 나눠준 것인데, 사람들은 머그잔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그 머그잔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긴 것이다. 이들은 이를 손실회피의 한 형태로 해석했다. 그 물건을 남에게 판매함으로써 그 물건을 포기해야 할 때의 상실감이 머그잔을 얻었을 때 생기는 만족감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이 어떤 재화에 부여했던 가치보다 그 재화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가치를 매기기 시작한다면 그만큼 거래는 위축될 것이고, 그만큼 시장은 잘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손실회피 편향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옮길 기회가 왔을 때 막상 옮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옮겼을 때 얻게 되는 기대이득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손실을 더 크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효율성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텐데, 옮기는 게 정말 유리하고 그래야 할 때조차 옮기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세일러는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해나갈 때 흔히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합리적 계획자처럼 행동한다. 10일째 되는 날 담배를 끊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기 위해 미래 10일째 되는 날과 11일째 되는 날을 비교할 것이다. 10일째 되는 날 엄청나게 괴로울 것이지만 그 괴로움은 11일째 되는 날(그리고 그 이후) 얻게 되는 건강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계획자의 입장에서 10일째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할 것이다. 하지만 10일이 지나 실제로 오늘이 담배를 끊어야 하는 그날이 되었다고 하자. 이제 우리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실행자 입장에 서게 되는데, 실행자가 비교해야 하는 것은 10일째와 11일째가 아니라 당장 오늘과 내일이다.
그런데 실행자의 입장에 서보니 모든 게 반대로 보인다. 지금 당장 담배를 피우지 않음으로써 얻게 될 괴로움은 내일 얻게 될 건강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똑같이 하루를 사이에 두고 두 사건을 비교하는데(담배와 건강), 멀리 봤을 때는 건강이 중요했는데 지금 보니까 담배가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다. 둘 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비교한 것인데도 10일째와 11일째를 비교할 때와 오늘과 내일을 비교할 때가 다르다는 것, 똑같은 하루 차이인데도 당장 눈앞의 차이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우리가 “계획자”의 입장에 서 있을 때는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 10일째와 11일째를 적절히 비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행자”로서 당장의 실천을 앞두고는 눈앞의 이득과 손실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일러에 따르면, 새해 계획이 번번이 실패하고, 시험 준비와 보고서 작성은 벼락치기를 면치 못하며, 비싼 대신 에너지 효율이 높아 전기비를 아낄 수 있는 제품은 그 경제성에 비해 잘 팔리지 않고, 금연도 다이어트도 노년을 대비한 저축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계획자와 실행자의 갈등에서 번번이 실행자가 이기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에 무게 실리는 추세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뭘 어쩌자는 말인가? 세일러가 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것이 넛지다. 세일러 교수는 캐스 선스타인 교수와 함께 쓴 <넛지>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비합리성이 경쟁 과정에서 학습되고 교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즉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극복할 수 없는 제약과 같은 것이라면, 비합리성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좀더 나은 선택으로 유도해보면 어떨까?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고등학교의 뷔페식 식당에서 단지 음식들의 배열을 바꿈으로써 건강식을 선택하는 비중을 높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넛지의 모범 사례다. 메뉴에서 어떤 음식을 제외한 것도 아니고,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해서 가격을 높이 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배열만을 바꿨다. 학생들이 합리적 개인들이라면 배열이 바뀌었다고 해서 선택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배열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비합리적이었기에 배열을 바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적 대안을 “무간섭 온정주의”라고 부른다. 바람직한 쪽으로 선택을 돌리기 위해 개입한다는 의미에서는 온정주의적이지만, 특정 선택지들을 금지하거나 그것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지 않고 의사결정자들의 어떠한 선택의 자유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무간섭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누가 노벨상을 받았는지가 경제학의 현주소를 얼마나 잘 드러내주는 지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벨상 수상만 놓고 보면 행동경제학의 무게가 점점 커지고 있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1978년 허버트 사이먼 이래 모리스 알레(1988년), 대니얼 카너먼(2002년), 엘리너 오스트롬(2009년), 로버트 실러(2013년), 그리고 올해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까지 여러 차례 직간접으로 행동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상이 돌아갔다. 노벨상위원회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접목을 높이 평가했지만, 어떻게 제도와 사람을 동시에 고려할 것인지는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경제학이 사람을 보는 데 익숙지 않았던 것처럼 심리학도 제도를 보는 데 익숙지 않을 것이기에 아직 둘을 함께 보는 시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남은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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