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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6 19:13 수정 : 2017.09.26 20:54

【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남형두 교수

남형두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은 우리 문학계의 표절 논의 수준을 몇 십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소재였어요. 그런데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흐지부지 된 게 아쉽습니다. 검찰은 업무방해에 대해 무혐의 판단을 했는데, 일부 언론은 마치 신 작가가 표절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것처럼 기사를 썼어요.” 남 교수는 신 작가가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은 미시마 유키오 작품의 표현이 얼마나 독창적이었는지가 표절 판정의 핵심이라고 했다. 독창적이지 않다면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판단은 결국 문학계의 몫이라고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남형두(53)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표절 백문백답>(청송미디어 펴냄)이란 책을 냈다. 표절과 관련된 100개의 예시 상황을 질문으로 추려 답을 달았다. 자신이 쓴 글이 표절인지 확인이 필요한 연구자나 글쟁이라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2년 전 그가 쓴 <표절론-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현암사)의 후속편이다. 국내 최초로 표절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작이란 평가를 받은 이 책의 말미엔 ‘표절 백문’이 들어 있다. 2년의 시간이 걸려 그 질문에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를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최근 2년 새 사회적으로 표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기자들은 남 교수를 찾았다. <표절론> 출판 뒤 그가 신뢰할 만한 표절문제 전문가로 공인받아서일 것이다. “표절로 갑론을박할 때 제 책(표절론) 몇 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논쟁을 하더군요.” 지난 2년 자신의 처지를 ‘어항 속 물고기’에 견주기도 했다. 그래서 표절 논란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변호사 시절 제가 맡았던 <태왕사신기>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표절 의혹을 샀던 작가가 판사에게 그러더군요. ‘내가 표절했다고 하는 건 판사님이 뇌물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요. 명예를 먹고 사는 창작자에게 표절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문제이죠.”

1986년 사법시험 합격 뒤 16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2005년 교육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줄곧 표절 문제와 씨름했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표절 시비로 낙마한 뒤 당시 김명곤 문화부 장관한테서 표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는 3년의 시간을 달라고 한 뒤 표절 문제의 역사적 뿌리부터 훑었다. 그리고 국내 표절 사례를 모두 검토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표절 논란은 우리가 문화국가로 들어섰다는 증좌이다. 하지만 논란을 처리하는 과정은 퇴행적이다.’ 그가 한국의 표절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전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도 로스쿨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렸고, 앙겔라 메르켈 내각의 각료 두 명도 그랬죠. 반면 박정희 정권 때는 표절 시비가 없었어요.”

100개 예시 ‘표절 백문백답’ 펴내
2015년 역작 ‘표절론’ 후속편으로
“연구자·글쟁이 스스로 검증용”

2006년 ‘김병준 부총리 낙마’ 계기
3년간 국내 표절사례 조사·정리
“학계·대학 ‘권위 부재’가 주원인”

그는 지금의 표절 시비를 ‘요격용 미사일’에 견줬다. “진짜 표절인가엔 관심이 없어요. 미사일 한번 쏴서 떨어뜨리면 끝나요. 수많은 임명 혹은 선출직 후보자들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지만 제대로 검증된 건 문대성 전 새누리당 의원이 유일합니다. 의혹이 제기되면 누군가 나서 검증하고 판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아요.” 공직 후보자에게 표절 의혹이 제기될 땐 ‘선 임명, 후 검증’ 방식으로 풀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후보는 대신 표절 판정이 나게 되면 사퇴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표절 사냥꾼’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깊이 우려했다. “지난 표절 논란을 보면 학문적 논의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차원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 혹은 다른 진영 사람들을 배제하고 망신주는 용도로 활용되어 왔어요.” 지난 몇년 야당이나 진보 인사한테 집중된 특정 집단의 표절 시비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런 공격은 사회참여 지식인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법률가 표절을 다룬 논문으로 한국법학원이 주는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대법원조차 표절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표절 문제와 관련해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 나왔어요. 판결문을 너무 잘 썼어요. 그런데 이 판결이 ‘전형적 표절과 비전형적 표절’과 같이 제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표현을 출처도 없이 갖다 썼어요. 이렇게 되면 제가 판결문을 표절했다는 오인을 받을 수 있어요.” 그는 “헌법재판소는 최근 들어 결정문에 출처를 밝히고 있지만 대법원은 권위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표절을 꾸짖는 판결이 표절을 하면 되겠습니까?”

표절 연구의 밑바닥엔 정직한 글쓰기에 대한 고집이 있다. “학문이란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아래가 부실하면 바로 무너져요. 왜 유학을 갑니까? 각주가 있는 글을 보러 가는 것이죠.”

그는 퇴행적 표절 논의의 배경엔 학계나 대학 사회의 권위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교수들이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의 게재 탈락률을 높이기 위해, 떨어지는 용도의 논문을 쓰고 있어요. 탈락률이 높으면 등재지 심사 때 높은 평가를 받아요. 교수들이 이런 비윤리적 행위를 합니다. 헌법이 보장한 대학 자치를 주장할 정도의 권위가 없는 것이죠. 대학이나 학계가 논문이나 승진 심사 때 제대로 표절 여부를 검증했다면 인사철마다 생기는 그런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았을 겁니다.”

대학들이 만든 표절 가이드라인을 두고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가이드라인이 너무 많아 문제입니다. 교육부 지원 때 평가요소가 되기 때문에 짜깁기해 이상적 규범을 만들어요. 장식용일 뿐이죠.”

그는 2005년 미국 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일하던 법무법인 광장의 지원으로 97년부터 3년 동안 워싱턴대에서 공부한 뒤 2000년 논문을 제출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한국에서 5년 동안 논문을 보충한 뒤에야 통과된 것이다.

“지도 교수가 다시 쓴 논문을 승인하며 ‘이제 네 논문은 네 책임으로 가는 것이다’란 말을 해요. 충격이었죠. 그때 제가 쓴 첫 논문을 봤어요.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정직하게 구별해 써야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부끄러운 논문이었어요. 그 논문이 그대로 통과됐다면 제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었어요.”

그는 지난해 9월 퇴임한 이인복 대법관 후임으로 천거된 34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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