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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9 19:16 수정 : 2017.09.19 22:04

【짬】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소장 김종갑 교수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소장.

건국대 몸문화연구소가 지난달 설립 10돌을 맞았다. 이달들어 축하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6년 동안 해마다 2억원을 지원받는 중점연구소로 선정된 것이다. 연구소는 그간 몸에 초점을 맞춰 포르노에서 페미니즘, 인공지능까지 다양한 사회적 테마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이 연구소 소장인 김종갑(59·영문학과) 교수를 지난 15일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른 ‘혐오’란 낱말의 유래와 그 용법의 문제를 다룬 <혐오-감정의 정치학>(은행나무)도 펴냈다.

몸문화연구소엔 문학과 철학, 미학, 심리학, 역사학, 법학 등 각기 다른 전공의 연구자 20여 명이 속해 있다. 지난 10년의 활동을 보면 매우 역동적이란 인상이 든다. 해마다 두차례 학술대회를 열었고, 연구소 총서를 7권 냈다. 은행나무 출판사와 함께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를 기획해 지금껏 9권을 냈다. ‘혐오’를 다룬 김 소장의 책은 이 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이다. 3년 전부터는 아카데미를 열어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지난달 연구소 이름으로 나온 책 <지구에는 포스트휴먼이 산다>(필로소픽)는 김 소장과 연구원 4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가 은행나무 출판사와 공동 기획해 펴내고 있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9권 중 올해 나온 4권.
왜 ‘몸문화’ 연구인지 묻자 대뜸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말레이시아가 다문화의 메카라면 한국은 몸문화의 메카입니다. 한국엔 얼짱, 몸짱, 초콜릿 복근 등 외모지상주의와 관련한 무수한 용어가 있어요. 인구대비 성형 비율이나 남성 화장품 1인당 소비량이 세계 최고입니다. (외국 회사들이) 새 화장품이나 옷을 내놓을 때 한국에서 먼저 테스트를 할 정도라고 해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 한국 몸문화의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1987년 민주화가 된 뒤 ‘공공의 적’이 사라졌어요. 그동안 억눌렸던 몸이 백일 하에 드러나게 되었죠. 마침 경제도 좋았어요. 이제는 뭘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뭘 입고 먹느냐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된 거지요.”

설립 10돌 맞아 중점연구소 선정
포르노·페미니즘·인공지능까지
“타자화된 몸의 주체성찾기 연구”
연구소 총서·공저·강연 등 활발

마이크로 인문학 시각 ‘혐오’ 저술
“여혐은 배타적 ‘여성비하’ 썼으면”

연구소는 ‘타자화된 몸을 어떻게 나의 몸으로 주체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몸이 자본화하면서 나의 몸이 아니라 문화·의료·미용 산업의 몸이 되었죠.” 미디어나 광고에 휘둘려 성형, 화장품 구매, 헬스장 등록, 야식 주문에 열을 올리는 광경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몸은 100년 전과 엄청 달라요. 그땐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시대이죠. 또 가족 중에 할아버지가 죽으면 당연하고 신생아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되었어요. 100년 전과 반대죠.”

한국의 몸문화를 비평해달라고 했다. “너무 똑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요. 서로 다르게 가면 경쟁할 필요가 없는데, 너무 한 방향이죠. 옷입는 것을 보세요. 규범화, 획일화가 심합니다. 또 몸에 너무 강박증을 가지고 있어요. 초콜릿 복근과 같은 용어를 유포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압박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자기 배려’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숙고를 이야기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잠 자고 일어나면 꿈을 분석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했다고 해요. 자기 배려이지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묻고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갔으면 해요. 자본의 관여에서 벗어날 순 없겠지만 그들이 내놓은 재료들을 주체적으로 선택, 배치할 순 있겠지요.”

‘몸문화 연구’라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 추구가 중요하겠다고 하자 이런 얘기를 했다. “저는 쾌락주의자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껴요. 어려서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 일년에 두 달은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기도 했죠.” 어려서부터 겪은 몸의 고통이 그의 연구 행로에 적잖은 영향을 준 셈이다. “지난 1년 보디빌딩을 해 몸이 좋아졌어요 하하.”

그는 공고 출신이다. 대학도 3년 늦게 들어갔다. “서울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한 뒤 취직해서 일하기도 했고 직업적으로 신문도 배달했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영문학과에서 해체주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2 때 로맹 롤랑의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제2의 탄생’을 했어요. 베토벤이 모델인 소설이죠. 베토벤이란 존재의 향기가 주변에 삶의 의미를 주고 기쁨을 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란 존재의 의미를 묻고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김 소장은 ‘혐오’에 대한 책에서 서구 고전과 문학 속에 드러난 다양한 혐오의 모습을 갈무리했다. 그는 혐오를 ‘생명의 유지를 방해하는 타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몸은 역한 음식에 구토로 반응한다. 가장 일반적인 혐오 반응이다. 이런 생리학적 설명에서 출발해 혐오가 정치적인 것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그리고 자기혐오가 어떻게 타자혐오로 나아가는지로 글을 이끈다.

그는 책에서 다소 논란이 될만한 제안을 했다. ‘미소지니’의 역어인 ‘여성혐오’가 너무 극단적이니 ‘여성비하’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맞아요. 하지만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기대하는 남자들까지 다 여성혐오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건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요. 혐오는 사유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혐오란 말의 강도 때문에 남녀 관계가 더 배척의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

연구소는 ‘학문의 세속화’를 내세운다. “학자들이 어려운 용어로 글을 쓰는 건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죠. ‘계급장 떼는 글쓰기’를 강조하려고 그런 표현을 썼어요.”

그는 지금 <몸이란 무엇인가>(가제)란 책을 3분의2 정도 완성시켜 놓았다고 했다. 사회학이나 의학, 역사학, 인지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해 몸을 설명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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