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정아은 지음/민음사·1만4000원 <맨 얼굴의 사랑>에서 주인공 서경은 실패한 아이돌 그룹 멤버였고,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기도 하다. 30대 후반의 그에게 남은 건, 방송가를 서성거리며 얻은 알량한 인맥과 한류스타 재희의 섹스파트너로서의 관계뿐이다. 서경은 성형외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쓰려고 취재차 병원을 찾았다가 ‘페이스 메이커’로 이름을 날리는 의사 조성환을 알게 되고,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조성환의 추천으로 성형외과 상담실에 취직한 서경은 빳빳하게 다림질한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가슴에는 영어 이름이 쓰인 반짝이는 은빛 명찰을 단 채 환자들을 맞는다. 상담실은 “계약 내용을 실행에 옮기고 난 뒤 마주치게 될 실제, 즉 붓고 멍든 얼굴, 엄청난 통증, 부작용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미심쩍은 증상들과는 너무나 다른, 그러니까 미래에 있을 고난의 행군에 미리 뿌리는 성유와도 같은 공간”이다. 서경은 이곳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지켜본다. 얼굴과 몸을 바꿈으로써 마음속 불안과 외로움을 치유하려는 도시의 맨얼굴들을 만난다. 정작 자신도, 그리고 그가 물질적·정서적으로 기대고 있는 재희와 조성환 또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연 뒤에 관계 맺기에 실패한 채 외로움에 치를 떨며 서성이는 군상들이다.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모던하트>(2013) <잠실동 사람들>(2015)을 선보인 소설가 정아은은 이번 소설에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거대 도시를 살아가는 군상들의 정서와 세태를 핍진하게 그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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