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1 14:54
수정 : 2019.12.11 19:33
|
조성호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클라리넷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도쿄필 클라리넷 수석 3년 차 조성호
첫 리허설부터 다른 한-일 오케스트라
“두터운 팬층, 수많은 전용홀 부러워”
이번 주 오페라 아리아 주제로 리사이틀
|
조성호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클라리넷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오래 악기를 연주해온 사람은 그 악기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조성호(34)에게 이 말은 틀리지 않아 보였다. 안아주는 듯 포근한 소리, 찬란한 기쁨부터 어두운 절망까지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는 폭넓은 음색을 가진 클라리넷. 편안한 느낌의 얼굴 한켠에 다채로운 열정을 품은 조성호가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다.
조성호는 지난 2016년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으로 선발된 것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 전까지 외국인 단원이 1명뿐이던 도쿄필, 그중에서도 20년 만에 진행한 클라리넷 수석 선발 오디션에서 200명이 넘는 지원자를 제치고 한국인이 발탁된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도쿄필은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로, 엔에이치케이(NHK)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
오는 13일 예술의전당에서 단독 클라리넷 리사이틀을 여는 조성호를 최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마주했다. 도쿄필 직전 서울시향 단원으로도 활동했던 그에게 한일 양국 오케스트라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양국 오케스트라의 차이는 첫 리허설부터 드러난다”고 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문화가 강한 일본은 단원들이 첫 리허설부터 철저히 준비해와 완성된 소리를 낸다는 것. 반면 한국 오케스트라는 첫 리허설 때는 삐걱거림이 있지만, 점점 발전하다 본공연에선 ‘필을 받아’ 리허설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사운드를 낼 때가 적지 않다고. “일본 오케스트라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대단히 높아요. 우리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솔리스트로 따지면 한국이 더 많아요. 그건 한국사람에게 이런 뜨거움과 즉흥성,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가 일본의 클래식 문화를 볼 때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두터운 팬층.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아마추어 악단도 활성화되어 있고요. 사이토 키넨, 퍼시픽 음악 축제(PMF) 등 유럽의 루체른 페스티벌 같은 큰 음악제도 여러 개입니다. 도쿄필의 연주회는 항상 만석이에요. 그러다 보니 초대권이나 직원 할인 문화도 전혀 없어서 제 가족들도 돈 다 주고 공연을 봐야 할 정도입니다.”
두 번째는 클래식 전용홀. “지방 순회 연주를 다니는데, 작은 지방 도시에도 기가 막힌 홀이 있는 거예요. 홀이 소리가 연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좋은 홀이 많으니 연주자로서 행복할 수밖에 없죠.” 국내의 공연장은 대부분 다목적홀이고, 콘서트 전용홀은 전국적으로도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등 5개를 넘지 않는 걸 생각하면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차이다.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가 그의 일본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전혀 없어요. 음악은 그런 문제를 다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일본 사람들 특성도 있고요.” 오히려 팬은 점점 느는 중이다. 정기연주회가 끝날 때마다 매번 조성호를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는 여덟명의 50~60대 ‘아저씨 부대’도 생겼다고.
|
조성호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클라리넷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도쿄 오페라시피 홀에서 열리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까지 하는 터라 공연 일정이 빡빡한 것으로 유명한 도쿄필 생활이지만, 조성호는 협연·리사이틀·실내악단 활동까지 겸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힘들지만 제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어 감사하죠. 단 한 번의 기회도 얻기 힘든 연주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여러 곳에서 불러주시니까요. 지금이 학생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조성호는 외조부가 서울시향의 전신인 고려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고, 어머니는 음대를 나와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했던 음악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엔 할아버지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바이올린 레슨을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음악 수업에서 리코더를 접하게 된 것이 삶의 방향을 바꿔놨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기 전부터 혼자 연주법을 익히고 계속 가지고 놀게 되더라고요. 어머니가 ‘관악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자연스럽게 클라리넷을 하게 됐어요. 할아버지가 처음엔 실망하셨지만 결국 격려해주셨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클라리넷은 극소수의 연주자들만 사용하는 프랑스 ‘앙리 셀머’사가 제조한 악기다. 전 세계적으로 프랑스 ‘뷔페 크람퐁’사 클라리넷을 사용하는 연주자가 100명 중 99명인 상황에서, 국내 프로 클라리넷 연주자 중에서도 셀머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뿐이다. “뷔페는 청량하고 밝은, 클라리넷다운 소리를 내요. 반면 셀머는 더 깊고 다크한 소리가 납니다. 셀머는 무게도 더 나가서 여성 연주자들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클라리넷 연주자 사이에선 ‘몽둥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하하하. 그래도 저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꼭 제 것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의 독특한 악기 선택만큼이나 이번 주에 여는 리사이틀은 또한 꽤 독특하다. 푸치니 <토스카>,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아리아를 클라리넷 연주곡으로 편곡한 곡들로만 프로그램을 채웠다. “도쿄필에서 오페라 연주를 많이 하다 보니 오페라의 매력에 푹 빠졌거든요. 이번엔 제가 주인공이 돼서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표현하는 감정을 클라리넷이란 악기 하나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제가 오페라에서 느꼈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예정입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