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0 18:05
수정 : 2019.11.20 19:24
[짬] 음악여행기 펴낸 신경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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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씨는 7남매 중 막내다. “언니 오빠들이 다 음악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해 오르간이나 기타, 색소폰 같은 여러 악기들을 사주셨어요. 다락에 가면 다 있었어요. 아버지가 올해 우리 나이로 100살입니다.” 노래는 잘 부르냐고 하자 “못하는 편은 아니에요. 모임이 있으면 늘 마지막에 한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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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쁨이 조금 달라졌어요. 음악여행 전에는 가이드북 사고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좋았다면 음악여행을 시작하고는 진짜 원하는 음악을 만났을 때가 가장 기뻐요. 그동안의 고단함이 일순간 사라지죠.”
‘역마살’이 두 개라는 신경아씨 말이다. 그는 4년 전 정년을 5년 남기고 다니던 주한 프랑스문화원에 사표를 썼다. 그해 정년퇴임을 한 남편과 지치도록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서였단다. 그의 환상적인 여행 짝꿍이기도 한 남편은 30년 이상 우리 민요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최상일 전 엠비시 피디이다.
둘은 퇴직 이듬해부터 사라져 가는 세계의 전통음악을 찾아 지구촌의 궁벽한 곳을 찾아 여행하고 있다. 2016년에는 이란과 터키, 인도네시아를 넉 달 훑었고 재작년에는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 등 서아프리카 지역을 찾았다. 작년 봄에는 석 달 발칸반도와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을 다녔다.
부부의 여행은 뚜렷한 목적이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민속 음악을 찾아 영상과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민속음악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는 여정이기도 하죠. 어느 나라든 왕실이나 귀족이 즐긴 음악은 잘 보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민중들이 즐긴 민요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지금 온 세계가 엄청난 속도로 개발돼 민속음악이 망가지고 있어요. 사라지기 전에 많이 다녀야 해요.”
“역마살이 하나인” 남편은 21일 문을 여는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초대관장으로 임명됐다. “관장 얘기가 나올 때 저는 남편한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면 한두 달씩 길게 여행하기 힘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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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살바르 할머니가 신경아 최상일 부부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신경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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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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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최근 <세계의 끝에서 만난 음악>(문학동네)이란 책을 냈다. 지난 3년 여행 체험을 글로 푼 것이다. 이란 여행은 따로 쓰기 위해 이번에는 뺐단다.
15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저자는 음악여행의 기쁨을 이렇게 말했다. “터키의 한 유목민 마을에서 만난 살바르 할머니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처음에는 노래를 못한다고 엄청 빼셨죠. 터키 할머니들이 대체로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꺼리거든요. 그런데 한번 시작한 노래가 기가 막혔어요.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원맨쇼를 하시더군요. 노래하는 사이사이 치즈나 과일 디저트도 내놓고요. 좋은 음악을 듣고 밥 먹고 가라는 소리까지 들으면 그 기쁨은 플러스알파죠. 우리가 가는 곳은 깡시골이라 과자 같은 간식은 없어요. 먹을 것을 내놓으면 대개 밥상이죠. 감동이 밀려옵니다.”
부부가 다 음악과 여행에 꽂혔지만 아무래도 남편은 음악, 아내는 여행에 더 흥미를 느낀다. “저는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남편은 사라져 가는 민속과 음악을 찾는 남자죠. 처음엔 (퇴직 뒤) 쉬지 않고 이년이고 삼년이고 세계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음악여행을 하니 모은 자료를 정리할 필요가 있더군요. 그래서 몇달씩 끊어 다녔어요.”
부부의 여행은 여느 퇴직자들의 것과 많이 다르다. 여행 전에는 들를 국가와 비행기가 도착하는 도시만 정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자유롭게 정한단다. 현지에서 수소문해 전통이 숨쉬는 좋은 노래와 연주를 접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는다. 예컨대 모리타니에서 한 사하라 사막 도보여행은 애초 3박4일 일정이었지만 그 지역에 전통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일주일로 늘렸다. “혼례 의식은 전통음악과 춤을 제대로 맛볼 좋은 기회이죠.”
순조로운 여행을 위해 부부는 각자의 장점을 살려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장소는 남편이 주로 정해요. 저는 비행기 예약을 하고, 마을에 도착해 음악을 잘하는 분들을 찾는 일을 합니다. 불어나 영어는 제가 좀 낫거든요. 노래나 악기 연주를 끌어내는 일은 남편이 합니다. 남편 성격이 내성적이지만 취재 때는 넉살이 좋아요. 어른들한테 노래를 끌어내는 건 ‘넘사벽’이죠. 처음엔 빼다가도 다 해요.” 책에는 산골 쿠르드인 농가에서 커다란 젖소 두 마리를 보고 “예전에 버터 만들면서 노래 부르셨죠?”라며 집 주인에게 자연스레 노래를 유도하는 대목이 나온다. “버터를 만들려면 우유를 40분 동안 흔들어야 해요.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서울에서는 맨날 남편과 싸우지만 여행 때는 절대 싸우는 일이 없단다. “오지 여행은 서로 의지해야 살아남거든요.”
어려서부터 늘 음악이 흐르는 환경에서 자란 신씨이지만 월드뮤직의 매력에 빠진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90년대 초반 프랑스 회사에 다닐 때 프랑스인 직장 동료의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들었는데 처음 들어본 음악이었어요. 블루스한 음악인데 경쾌하고 듣기 좋았죠. 바로 아프리카 말리 음악이었어요. 깜짝 놀랐죠. 세상에 너무나 많은 음악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죠. 그 뒤로 음반을 모아 지금 집에 월드뮤직만 3천 장 정도 있어요.”
최상일 전 피디와 부부 동반 ‘퇴직’
‘세계의 소리를 찾아서’ 채록 여행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오지로
3년기록 ‘세계의 끝에서 만난 음악’
“진짜 민중들 음악 만났을 때 기쁨”
25일 보안클럽 첫번째 북토크 예정
한국외대 불어과 79학번인 신씨는 대학을 나와 줄곧 프랑스계 회사에서 일했다. “2008년부터 2년 동안 프랑스 은행 파리 본사에서 일할 때는 월드뮤직 공연을 150회 정도 봤어요. 일주일에 두번은 공연장에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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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씨 자택의 월드뮤직 음반들. 신경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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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 곳곳에서 전통음악이 젊은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세네갈 성인식에서도 마이크는 전문 가수에게만 주어졌고 쿠르드족 결혼식에서는 초청가수가 어마어마한 스피커로 노래를 부르면 하객들은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만 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다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음향장치를 틀면서 잘하는 사람만 노래해요. 미디어 발달로 터키의 산골 목동에게도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라 들으면서 향유하는 게 되었죠.”
여행지 중 그래도 전통음악이 잘 이어지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하자 조지아와 이란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꼽았다. “조지아는 평범한 가족모임에서 할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손자가 폴리포니(다성) 합창을 해요. 각자 다른 성부를 맡아 노래하더군요. 민속음악이 그대로 내려오는 것 같았어요. 5년 전에 갔는데 개발이 빨리 되고 있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가야죠. 이란은 지식인들이 다 전통악기를 다루고 직접 악기도 만들더군요. 미취학 아이들도 학원에서 전통악기를 많이 배우고요.”
부부의 여행 원칙 중 하나는 ‘돈을 요구하면 만나지 않기’다. 금전을 대가로 하는 공연은 그들이 원하는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공연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떠날 때는 대개 작은 선물로 답례한다. “모로코는 차를 많이 마시니 설탕을 준비했죠. 인도네시아는 씹는 담배를 드렸고요. 대개는 되로 주고 말로 받아요. 찾아가면 ‘왜 이런 걸 들으려 하지’ 하며 신기해합니다.”
궁금증이 하나 더 생겼다. 음악과 여행이라는 공통의 취향을 가진 남편은 어떻게 만났을까? “가수 배철수씨의 아내인 박혜영씨가 저의 외대 불어과 동기동창입니다. 학교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 혜영이와 같이 산에 많이 다녔어요. 그때 남편은 혼자 산에 다녔죠. 남편이 친구의 엠비시 라디오국 1년 선배라 한번 우리 산행에 합류했어요. 그게 계기였죠.”
(북토크 일정 - 서울: 11월 25일(월) 오후 7시30분, 통의동 보안클럽 -전주: 12월 6일(금) 오후 7시, L의 서재 - 대구: 12월 8일(일) 오후 5시, 스튜디오 콰르텟 - 부산: 12월 10일(화) 오후 7시, 백년어서원)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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