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4 18:57
수정 : 2019.11.15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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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스페이스 22 전시장에서 만난 김녕만 사진가. 뒤에 보이는 사진은 1977년 전남 장성역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시골 상인의 뒷모습을 찍은 것으로, 그가 아끼는 초창기 대표작중 하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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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고학하며 찍은 37점
강남역 ‘스페이스22’서 21일까지
“참 내가 고생했구나는 생각과
더 열심히 했더라면 후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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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스페이스 22 전시장에서 만난 김녕만 사진가. 뒤에 보이는 사진은 1977년 전남 장성역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시골 상인의 뒷모습을 찍은 것으로, 그가 아끼는 초창기 대표작중 하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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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발효가 된다는 거 아세요? 처음 찍을 때와 달리 시간 지나면 묵은 김치맛 나듯 새롭게 보는 맛이 계속 나온다는 걸. 전시에 처음 내보이는 이 작품이 저한텐 딱 그래요.”
국내 저널다큐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김녕만 작가(70)는 곰삭은 사진의 맛을 이야기하면서, 전시장 한켠에 걸린 43년 전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20대 대학생 시절이던 1976년 고향인 전북 고창의 시골학교 운동회 현장을 찾아가 찍은 동네 아낙네들의 달리기 시합 장면이었다. 은염 프린트로 다시 나온 이 사진 속에는 여섯명의 아낙들이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맨발과 버선발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순간이 담겼다.
“처음 찍고 나서 필름을 현상했을 땐 그렇게 눈에 차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전시하려고 암실에서 다시 필름을 꺼내서 보니까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 생각이 나고 그리움이 밀려오더군요. 그 시절 촌 운동회는 어른들에게도 잔치였거든요. 경주해서 상 타면 연필, 공책 등을 타갖고 애들한테 주고싶어 했지요. 애들도 응원하고, 있는 힘을 다해 뛰는 모습을 지금 보니 더 애착이 생기더라구요.”
작가는 운동회 사진을 실마리 삼아 구수한 남도 억양을 섞으며 전시공간에 나온 자신의 초창기 시골 사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품에 어린 추억들을 펼쳐놓았다.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옛 작품과 이야기꽃을 피운 곳은 서울 강남역 근처의 사진전시공간 스페이스 22다. 지난달 15일부터 여기서 회고전 ‘김녕만, 기억의 시작’(21일까지)이 열리는 중이다.
그는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으로 1980~90년대 판문점과 분단현장, 광주항쟁 등을 취재해 담은 다큐사진 연작으로 대중과도 친숙하다. 이번 전시는 그가 서라벌예대와 중앙대 사진과 재학시절 고학하며 남의 카메라를 빌려 찍은 향수어린 남도의 농촌 사진들이 주류를 이룬다. 80, 90년대 경상도 농촌의 풍경을 찍은 3점을 뺀 37점이 70년대 남도 고창, 장성과 경기, 충청도 농촌을 렌즈에 담은 것들이다.
유명한 그의 판문점, 분단 연작에서도 보이듯 그는 사람의 냄새, 사람의 흔적이 진득하게 남는 사진을 좇는다. 전시장 초창기 사진에도 이런 그의 지론은 여실해서,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시절 시골마을의 독특한 풍광과 일상, 사람들의 생활상을 자연스러운 구도 아래 실감나게 볼 수 있다. 런닝셔츠를 젖가슴 위로 올린 채 소금지게를 들고가는 고창 염전의 노동자, 말 안듣는 숫송아지의 코뚜레를 웃으면서 끄는 소녀, 파먹은 수박을 모자처럼 쓰고 머리를 긁적거리는 발가벗은 아이, 털모자 쓰고 머플러 두르고 신작로를 걷는 아이들의 사진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77년 전남 장성역 플랫폼에서 갓쓴 상투 뒤편에 표를 꽂고 열차를 기다리던 나이든 시골상인의 뒤태나 74년 고창의 자기집 근처 오리들이 떠다니는 개울가에서 우연히 포착한 동네 아낙의 빨래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그가 가장 아끼는 초창기 작품들이다.
그는 “사진인생의 서막을 열어준 70년대 초창기 작업이 벌써 반세기가 지나 지금 회고전시를 안하면 나중 세월이 흘러도 옛날얘기처럼 될 것 같아서” 전시를 차렸다고 했다. 강남 도심에서 자신에게는 가장 오래된 시골 사진을 한번 대비하면서 전시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초창기 사진들을 들고오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작가는 “새마을 운동이 막 시작될 즈음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야한다는 생각에 관심을 갖고 찍은 사진들”이라며 “사람의 뒷모습을 실제 앞모습처럼 찍으라는 대학시절 스승 이명동 선생의 말씀을 새기면서 쉴새 없이 걸어다니면서 관찰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찍었다”고 말했다. “작품 풀어놓으니 내가 참 고생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한편으론,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오고…그 두가지 상념이 뒤섞여 코끝이 찡했습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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