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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4 07:20 수정 : 2019.11.14 16:00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칠수와 만수>는 두 청년의 뿌리 속에서 분단 남한의 비극, 그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낸 아시아 근대사의 비애를 비춘다.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롱테이크는 그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정치영화에 대한 정치적 태도처럼 보인다.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2)<칠수와 만수>
감독 박광수(1988)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칠수와 만수>는 두 청년의 뿌리 속에서 분단 남한의 비극, 그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낸 아시아 근대사의 비애를 비춘다.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롱테이크는 그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정치영화에 대한 정치적 태도처럼 보인다.

1980년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아시아 영화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세 개의 중국, 중국 본토의 제5세대와 대만 신랑차오, 홍콩 뉴웨이브의 새로운 세대. 그리고 이란 영화. 그다음 한국영화가 도착했다.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이론은 각자의 나라에서 트랜스내셔널한 관점으로 옮겨갔다. 현기증 나는 글로벌리즘 경제와 산산조각난 희망을 조롱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속에서 아시아 민중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광수는 그 질문을 안고 한국영화 안에 들어왔다.

대만 작가 황춘밍의 단편소설 <두 페인트공>을 희곡으로 각색한 오종우의 <칠수와 만수>는 연우무대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사라진) 극장 간판을 그리는 두 청년. 칠수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 뒤 오래전 소식이 끊긴 누나에게 초청장을 받아 미국에 가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그러면서 우연히 여대생과 알게 돼 대학생 행세를 하고 다닌다. 부질없는 짓이다. 만수는 비전향 장기수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자기를 알아보는 이 없는 노동판을 전전하며 그저 살아간다. 두 청년의 뿌리 속에는 분단 남한의 비극, 그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낸 아시아 근대사의 비애가 담겨 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날 옥상 간판을 그리던 칠수와 만수는 사소한 실수로 ‘옥상에 올라가 임금투쟁을 하는 노동자’로 둔갑하고 경찰과 기동타격대가 몰려들면서 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옥상에 매달린 그들의 선택은 거의 남지 않았다.

박광수는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거의 멈춘 카메라와 종종 오랫동안 편집을 잊은 것만 같은 롱테이크는 미학이라기보다 그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정치영화에 대한 정치적 태도처럼 보인다. <칠수와 만수>는 구호 없는 정치영화이며, 아시아의 보잘것없는 민중들과 연대하는 정치영화이며, 한반도의 근대사에 희생당한 호모 사케르들의 정치영화이며, 모든 한국 정치영화들에 대한 포스트 정치영화이다. 그해 서울에선 올림픽이 열렸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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