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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7 18:39 수정 : 2019.12.18 02:34

지난 13일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개인전이 개막한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 고려제강의 부산 망미동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3’ 안에 자리한 이 전시장은 지난해 문을 열었다.

다니엘 보이드 국내 ‘첫’ 개인전
아시아 ‘최초’ 미얀마 불교미술전
전례 없는 국외 대가 전시 잇따라

전시장 찾은 국내외 유력인사들
삼삼오오 모여 ‘국제업무’ 논의
영남권 유력 컬렉터들도 관심

“1~2년새 도약한 부산 시각 문화
우수한 인프라 요건 뒤받쳐줄
예산 지원·구조 개선 등 필요해”

지난 13일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개인전이 개막한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 고려제강의 부산 망미동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3’ 안에 자리한 이 전시장은 지난해 문을 열었다.

“믿을만한 작가니까 지켜봐주세요.”

“앞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더 주목받겠죠?”

“그럼요. 참, 말씀하신 서구 아티스트 섭외 건은 적극적으로 추진해볼게요.”

“예. 내년 전시에서 중요하게 검토할 부분이에요. 부탁드려요.”

지난 13일 저녁 부산 수영구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3’ 경내의 국제갤러리 부산점.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출신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개막한 이날, 전시장 한쪽에서 국내외 미술판의 몇몇 유력 인사가 ‘국제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곤소곤 주고받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최고의 사립미술관으로 꼽히는 도쿄 모리미술관의 실세인 가타오카 마미 부관장과 최근 취임한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국제갤러리의 찰스 김 대표였다. 서로 눈을 맞추면서 갤러리 전시 작가에 대한 품평과 내년 벌일 전시와 관련된 협력사업을 한창 논의하는 모습이었다. 그들 옆으로 조금 떨어진 카운터 쪽에서는 부산, 대구, 포항 등 영남권 일대 유력 컬렉터들이 모여들어 갤러리의 이현숙 회장, 송보영 이사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16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시작된 일본 미술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영혼의 떨림’ 전시장. 배 모양 조형물에서 나온 붉은 실들을 엮어 올린 <불확실한 여정>의 설치 공간에서 작가가 자세를 잡았다.

이런 개막 전시장의 모습은 1~2년 전만 해도 부산지역 전시장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전시 작가인 다니엘 보이드는 인쇄물의 사진 망점 같은 흰 점들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인상이나 역사를 담은 사진 같은 도상 위에 무수히 찍는 회화 작업을 해왔다. 소외된 원주민들의 역사를 보고 인식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이야기해온 그의 작업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에서 소개되면서 최근 급속히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유망 작가를 화랑이 미리 스카우트해 서울 본점이 아닌 부산지역 컬렉터에게 소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현숙 회장은 “지역 컬렉터들이 정말 좋아한다. 수집할 작품의 저변을 넓히는 차원을 넘어, 부산 자체의 시각문화 수준이 지난 1~2년 사이 많이 도약해서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도시가 될 가능성도 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전언은 단순히 빈말은 아닌 듯하다. 해운대 등 바닷가에 자리한 휴양·업무타운과 교통상 요지라는 문화관광 인프라 장점을 내세워 부산에선 최근 국제미술시장의 허브(거점)로 지역 경제와 문화를 살리자는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부산에서는 최근 전례를 찾기 힘든 국외 대가들의 전시가 잇따라 열리면서 새삼 눈길을 받고 있다. 보이드 전시에 이어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18일 구사마 야요이를 잇는 일본의 세계적인 여성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이 개막했다. 지난 6~10월 모리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무려 60만 넘는 관객을 불러들여 일본 작가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운 작가의 전시를 그대로 옮겨왔다. 혈류, 인연, 관계 등을 상징하는 붉은 실과 검은 실 연작으로 천장과 공간을 가득 채운 스펙터클한 설치작품으로 개막 즈음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미술 분야에서는 부산박물관이 2주 전 불교대국 미얀마의 전통불교미술전을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처음 유치해 벌이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에선 세계적인 서구 작가 그룹 랜덤인터내셔널의 유명한 설치공간 전시인 레인룸 프로젝트가 시작돼 수개월째 매진 행진을 기록 중이다.

영국의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의 신작 <탐지>. 최근 그가창작 중인 ‘뿌리내리는 자’ 연작의 일부다. 지난 10월부터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1층에서 <탐지>를 비롯한 그의 신작 조형물 4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산지역이 산과 바다를 낀 자연조건과 오랜 물류·교통의 요지이며 숙박, 전시 관람 등에서 인프라 요건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서울보다 국제아트페어 같은 미술시장 유치에 적지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특히 홍콩 바젤아트페어가 시위 사태로 주춤한 틈을 타 부산시나 일부 미술인들은 부산에 새로운 플랫폼 미술시장을 만들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자체 미술 인프라에 대한 빈약한 예산지원에 대한 개선책, 세제나 외환송금 등에서 국내 규제를 풀 면세지대 등 보완책, 빈약한 컬렉터 시장에 대한 구조적 개선 작업 등이 동반되어야만 국제적인 미술 플랫폼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어쨌든 국내 미술시장의 대개편론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부산을 중심으로 한 국제미술시장 대망론은 끊이지 않고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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