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9 07:01
수정 : 2019.10.3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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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중인 옛 채동선 가옥. 2층 부분이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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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위해 28일 전격 철거돼
해방 직후부터 타계 때까지 살았던 거처
학계 지인들 “좀더 빨리 보존조치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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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중인 옛 채동선 가옥. 2층 부분이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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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전격적으로 철거에 들어간 서울 성북동 옛 채동선 가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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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인 정지용이 노랫말을 쓴 유명가곡 <고향>의 작곡가. 조선 최초의 현악 4중주단을 결성했고, 전통민요 채록에도 열정을 쏟으면서 창씨개명은 거부했던 민족음악가 채동선(1901~1953). 그가 1931년부터 말년까지 20여년을 작곡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서울 성북동 옛 집이 28일 갑자기 헐려 사라졌다.
문화유산 보존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와 건축사학계 쪽에 따르면, 서울 성북동 성북로 8길 12-8번지에 자리한 채동선의 옛 거처 2층 가옥에 이날 오전부터 전격적인 철거작업이 이뤄졌다. 집터에 새 아파트 건축을 추진해온 집합주택 건설업자가 집행한 것으로, 이날 오후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트러스트에 관여하며, 건물 보존 상황을 살펴온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국 근대음악사의 소중한 산실이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업자가 주변 대지까지 사들여 건축허가를 받았다. 철거가 급한 건 아니었으나 최근 시민들 사이에 보존여론이 일어나고 지난주 시 직원과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벌이자 급히 헐어버린 것 같다”고 전했다.
채동선의 옛 집은 1930년대 전형적인 ‘문화주택’이다. 양식 가옥 얼개의 1층에 맞배지붕의 일식 가옥이 올라간 절충식 근대 가옥으로, 주위에 넓은 정원도 딸려 있다. 채동선의 대표 가곡을 작사했던 시인 정지용과 작곡가 홍난파 등의 여러 음악인들이 드나들며 교류했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빈 폐가가 되어 예술인들의 작품 전시장이나 공연장으로 간간이 활용됐으나, 올해초 건축업자가 일대 터를 사들인 뒤 아파트 건립을 위한 철거작업을 준비해온 상황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일부 성북동 주민과 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들이 뒤늦게 성북구청에 보존을 요청하는 민원을 내고, 시청 담당자와 기록도면을 만들기위한 전문가 조사 등도 벌였으나, 집이 헐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윤 교수는 “철거될 위기에 놓인 상황이 너무 늦게 알려져 손쓸 겨를도 없었다”면서 “철거과정에서 채 선생과 관련된 유물, 부재들이 나올 경우 채동선 기념관 등에서 인수해 보관할 수 있게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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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찍은 옛 채동선 가옥의 모습. 1930년대 지어진 전형적인 문화주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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