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이반디 지음, 홍그림 그림/창비(2018)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마음이 있다. 다만 그 마음을 전해줄 어린이의 언어는 아직 영글지 않았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의 표정, 몸짓, 태도 같은 비언어를 통해 아이의 속마음을 짐작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이 되어도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지도, 마음의 언어를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최고의 감정수업이다. 특히 아직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린이에게 문학은 그 언어를 영글게 하는 최고의 연금술이다. 이반디의 <꼬마 너구리 요요>를 처음 읽고는 초등 1~2학년이 읽을 만한 저학년 동화에서도 이렇게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구나 싶어 내심 놀랐다. 특히 아름다운 문장과 적절한 비유로 꼬마 너구리 요요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줘 무척 반가웠다. 요란스럽게 꾸미거나 특별히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지만 동화에는 일고여덟살 아이의 마음을 건드릴 만한 표현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밑줄을 치고 싶은 구절이 많은 저학년 동화를 만나는 건 참 오래간만이었다. 예를 들어 “세수도 안 한 조그만 얼굴이 기쁨에 반짝였어요”라든가 “힘없이 리코더를 분 것처럼 후후 하고 소리를 냈어요” 같은 문장들은 잘 적어두었다가 써보고 싶었다. 꼬마 너구리 요요는 동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어느 날 엄마가 집을 잃은 아기 늑대를 데려오자 ‘후우’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동생을 삼기로 마음먹는다. 요요는 후우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추며 같이 놀아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후우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친구들이 놀러오자 요요는 후우가 동생이라도 된 양 자랑을 했다. 하지만 후우는 요요가 아닌 흰곰 포실이에게 다가가 안아 달라 하고 까르르 웃는다. 포실이가 돌아가자 후우는 서럽게 울기까지 한다. 후우는 요요가 아니라 포실이를 좋아하는 거였다. 결국 후우는 포실이네에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모두 떠난 후 엄마는 요요에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포실이네 집에 가서 후우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자고. 요요는 대답할 수 없었다. 포실이는 좋아하면서 요요는 좋아해주지 않는 후우 때문에 울음이 멈추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실망스럽고 분하고 속상하고 서러워서 요요처럼 “왜 나는 아니야” 하고 울음을 터트릴 때가 있다. 아직 어리지만 요요는 한바탕 울고 난 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는 마음에 너그러운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마음을 작가는 ‘슬프지만 밉지는 않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후우의 마음은 요요가 어찌할 수 없는 거다. 저학년 동화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나의 마음 그리고 타인의 마음에 관한 성찰로 나아가니까. 많은 아이들이 요요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처럼 뒤끝이 심한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초등1~2학년. 출판칼럼니스트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