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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06:00 수정 : 2019.11.29 14:07

소설가 김남일 새 책 ‘염치와 수치’
식민 시기 선배 작가들 삶 소개
이광수의 친일과 육사의 항일 두 축

고향 친구 주요한을 질투한 김동인
총독부 취직했다가 봉변당한 이효석
“선배들의 삶과 문학은 ‘고투’였다”

염치와 수치

김남일 지음/낮은산·1만6000원

소설가 김남일은 지난 3년여 동안 ‘읽는 사람’으로 살아 왔다. 특히 식민 시기 한국 근대 문학 작가와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출발은 엉뚱했다. 선배 문학평론가의 권유로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세설>을 읽고 매료되어 또 다른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겐지 이야기>로, 다시 중국 작가 루쉰으로 독서는 가지를 쳐 나갔다. 그러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때 우리 작가는 어디 있었나, 아니 누가 있긴 있었던가. 이태준, 현진건, 최서해, 김명순 등 근대 문학 작가들의 삶의 한 장면씩을 포착해 소설처럼 풀어 놓은 책 <염치와 수치>는 그렇게 탄생했다.

“명색이 작가인 저부터도 한국 문학과 작가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료 작가들을 만나 보아도 이런저런 외국 작가와 작품은 좋아하는데 정작 한국 근대 문학에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거예요. 제 책꽂이에 한국 근대 문학을 위한 공간은 아예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러고도 내가 한국 작가라 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였죠.”

2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남일은 “지난 3년여 부지런히 책을 사 모은 결과 이제 책꽂이의 대여섯 줄을 한국 근대 문학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권수로 치면 100여 권이 넘을 것”이라고.

<염치와 수치>는 작품보다는 작가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을 세련되고 온당한 태도인 양 여기는 풍토가 있지만, 김남일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을 그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선 작가에 관심을 지니게 되면 그 뒤에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염치와 수치>가 독자들로 하여금 근대 문학 작품들에 다가가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식민 시기 근대 문학 작가들의 삶을 소개한 책 <염치와 수치>를 낸 소설가 김남일. “엄혹한 시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고투했던 작가들의 삶을 알게 되면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더 애정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염치와 수치>에서 다루는 작가는 모두 23명. 다른 작가들은 한 꼭지씩만 썼는데, 이광수에게만은 세 꼭지를 할애했다.

“이 책의 기본을 이루는 건 부끄러움입니다. 한국 문학의 토대를 닦은 이광수의 친일이 그 부끄러움의 출발이지요. 그러니까 이광수라는 존재가 이 책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끄러움을 상쇄시켜 줄 작가는 누가 있을까. 염상섭의 산문 정신, 채만식의 반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육사와 신채호 같은 이들이 있어서 염치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육사에 관해 쓰면서는, 아주 몰랐던 사실이 아닌데도, 눈물이 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이 책 <염치와 수치>가 친일과 항일의 이분법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광수와 김동인, 채만식 등 친일 행위를 한 이들을 포함해서 식민 시기 선배 작가들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태도는 단죄나 숭상보다는 공감과 연민에 더 가깝다. 그들이 살았던 때가 개인의 선택권보다는 상황의 규정력과 제약이 더 컸던 시대였다는 판단 때문이다.

“식민 시기 한국 작가들을 전체적으로 돌이켜 보면, ‘고투’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나라는 망해 버리고, 무기도 없고, 전고(典故)도 없고, 말과 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기 식으로 글을 써야 했으니까요. 김윤식 선생님이 말씀하신 ‘고아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작가의 생애에서 달랑 한두 장면만을 뽑아 내기란 얼핏 쉬울 것 같으면서도 사뭇 까다로운 일이었을 듯하다. 작가 생애의 결정적 장면이거나 적어도 의미심장한 맥락을 지닌 대목이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염치와 수치>의 지은이가 김동인의 삶에서 잡아낸 것은 고향 친구인 주요한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주요한은 언제나 김동인이 가려던 길을 한 발 앞서 감으로써 그의 질투를 자아냈다. 요한은 동인보다 먼저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메이지학원에서 동인의 1년 선배가 되었으며,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명문 제1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요한이 저보다 먼저 문학에 뜻을 두었다는 것도 동인에게는 질투의 요인이었다. ‘언제고 한번 꼭 요한을 이기고야 말리라’ 하는 강렬한 질투심이 동인으로 하여금 잡지 <창조>를 창간하고 근대적 소설들을 쓰면서 신문학을 선도하게 하였다.

식민 시기 작가들의 삶을 소개한 책 <염치와 수치>를 낸 소설가 김남일이 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남대문역 도착 환영 행렬에 나가라는 학교의 지시를 거부하고 집에 머물렀던 소학교 학생 염상섭의 1909년 어느 날, 신입 기자 김기림이 간도 대사변 취재차 특파되어 가면서 기차편으로 고향 성진을 지나던 1930년 6월의 어느 날, 수재였던 이효석이 조선총독부 검열부에 취직했다가 카프 소속 열혈 문사와 마주쳐 욕설을 듣고 봉변을 당한 1931년 봄의 어느 날, 흥남질소비료공장 노동자 이북명이 자신과 같은 함흥 출신 작가 한설야를 찾아가 문학 수업을 받고 등단작인 ‘질소비료공장’(1932)을 발표한 일 등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태준이 가람 이병기의 계동 집 서재에 난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지용, 노천명과 함께 가서 난향을 맡았던 1936년 1월22일의 일을 두고 김남일은 이렇게 썼다.

“하지만 오직 난향 한번 맡을 일념으로 계동 가회동 추운 거리를 바삐 걷던 작가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 문학사도 식민지의 우울에서 아주 잠시라도 벗어나는 여유를 챙기게 될 것이다.”

지난 8월 말부터 강화에서 ‘서점 상주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김남일은 “책읽기가 너무 재미 있어서 그동안 소설 쓰는 일을 미뤄 왔는데, 내년에는 새 장편을 쓸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니까 내년에는 <천재토끼 차상문> 이후 무려 10년 만에 그의 신작 소설을 만나게 될 모양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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