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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05:00 수정 : 2019.11.22 16:36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20년 만에 새로 번역…쉬운 우리말에 친절한 각주
억울한 사람 없길 바라며 기록한 ‘함봉련 사건’ 등 다산의 ‘애민의식’ 곳곳에

역주 흠흠신서 1~4권
정약용 지음, 박석무·이강욱 옮김/한국인문고전연구소·각 권 2만5000원

평창 군졸 서필홍은 환향(환곡으로 운용하던 군량)을 독촉하러 양주 의정리 김대순의 집에 가서 송아지를 대신 끌고 가다가 뒤쫓아 온 김대순을 길에서 만났다. 옥신각신하다 김대순이 서필홍을 넘어뜨리고 배에 걸터앉아 무릎뼈로 가슴 한복판을 짓찧고 송아지를 도로 빼앗았다. 김대순은 돌아가던 길에 친족의 머슴인 함봉련을 만나 서필홍을 가리키며 우리 송아지를 훔친 자이니 가서 뺨을 때려 주라고 했다. 함봉련은 땔감을 짊어진 채 서서 서필홍의 등을 떠밀었고, 서필홍은 밭에 쓰러졌다가 즉시 일어나 떠났다. 평창으로 돌아간 서필홍은 몇 되의 피를 토하며 ‘나를 죽인 사람은 김대순이니, 당신이 복수해 주시오’라는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죽었다.

<흠흠신서>에는 다산이 강조하는 ‘애민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다산연구소 제공

<흠흠신서>에는 다산이 강조하는 ‘애민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정조 23년(1799년), 다산 정약용을 형조 참의에 제수한 정조는 ‘함봉련 사건’에 의문점이 있으니 상세히 살펴보고 대책을 마련하여 보고하라고 명했다. 함봉련은 서필홍을 죽인 죄로 12년째 복역 중이었다. 다산이 1차와 2차 검안서를 가져다 보려 하니 형조의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건은 벌써 10년이 넘어서 이제는 번복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 되었으니, 상세히 살펴보아도 도움이 될 게 없다”고 했다. 다산은 정조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서필홍의 등에는 명백히 상처 한 점도 없었으나, 서필홍의 가슴 한복판에는 검붉은 색을 띤 상처가 3치였습니다. 이 상처를 가지고서 이 사건의 주범을 찾는다면 누가 합당하겠습니까?” 다산은 주범으로 고소당한 김대순을 증인으로 삼은 점, 또 다른 증인으로 나선 이웃들이 모두 김대순의 친인척이고 이장 또한 김대순의 후원자인 점을 지적하며 경기 감영을 시켜서 다시 조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함봉련은 풀려났다.

다산 정약용.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흠흠신서>를 두고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다.<한겨레> 자료 사진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 ‘전발무사’ 편에 실린 ‘함봉련의 살인 사건을 상세히 조사한 뒤 대책을 마련하여 보고한 계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근 진범의 자백으로 진실이 밝혀진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평생 다산의 저서를 번역하고 연구해온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산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바라는 마음을 이 책의 저술 목표로 분명히 밝혔다”며 “다산이 가장 염려했던 것은 목민관들이 권력의 압력과 뇌물, 사사로운 친분의 영향을 받아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즘도 전관예우가 횡행하는 등 공정성에 의문이 있다.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이 이강욱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자문위원과 함께 번역한 <역주 흠흠신서>는 30권으로 이뤄진 <흠흠신서>를 4권에 옮겨 담았다. 마지막 권에는 원문을 실었으니 한글 번역서는 3권이다. 쉬운 우리 말을 사용하고 친절한 각주를 달아 쉽게 술술 읽힌다. <흠흠신서>는 다산의 대표작인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의 하나로, 중국과 조선의 살인사건 판례를 모아 다산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형법서다. 흠흠(欽欽)이란 <서경>의 “조심하고 조심하여 형벌을 신중하게 내려야만 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흠흠신서>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일종의 3심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에서 초동 수사를 통해 1차 의견을 올리면, 조정에서 2차로 심사하고, 중요한 사건의 경우 왕이 마지막 판결을 내렸다. 왕이 대법원장을 겸했던 셈이다. 특히 정조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백성이 없어야 한다며 형사 사건을 세심히 살폈다. 다산은 정조의 판결에 때로 찬탄하기도 하고, 드물지만 반박을 하기도 한다.(‘상형추의’편 ‘주범과 종범을 구별하다’ 항목의 11번째 판례 ‘문화의 백성 배홍적이 배학대를 죽인 사건’) ‘경사요의’편 ‘어리석은 사람은 사형을 감해 준다’는 항목에서는 아버지에게 밥사발을 던진 백성을 사형에 처하려다 ‘효’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는 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백성을 가르치지도 않고 형벌만을 시행하는 것은 백성을 속이는 것이다. 옛날에 ‘백성을 도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통일시킨다’ 하였으니, 참으로 까닭이 있어서였다”며 형장만 약간 쳐서 깨닫도록 용서해 준 사례도 나온다. 책에는 이렇게 다산이 강조하는 ‘애민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정조 어진. <한겨레> 자료 사진

박 이사장은 1999년 <흠흠신서>를 번역 출간한 적이 있다. “나중에 보니 오역도 많았고,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어 슬슬 넘어간 것도 많아 스스로 부끄러웠다. 이번엔 고어투도 현대어로 바꾸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며 뿌듯해했다. 이번 책은 2017년부터 네이버가 한국인문고전연구소와 함께 진행해온 ‘고전 번역 프로젝트’의 하나다. <여유당전서> 가운데 <시문집>과 이번에 나온 <흠흠신서> 번역본을 네이버 지식백과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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