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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1 17:00 수정 : 2019.11.22 10:36

┃인터뷰┃조형근 전 한림대 교수

교수 현실 비판한 ‘대학을 떠나며’ 칼럼 화제
“안타깝기도 사치 같기도” 격려부터 비난까지

“본의 아니게 우리 사회 ‘통감대’ 건드린 듯
서로 고통의 감각 통한 것…탈진한 사회의 단면
대학사회 공공성 회복 위한 뜻으로 읽어주길”

지난 11일치 <한겨레> 오피니언면에 실린 ‘대학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칼럼이 대학사회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며 잔잔한 파문을 낳고 있다. 

칼럼을 쓴 조형근 전 한림대 교수는 18일 <한겨레>와 만나 “원래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글이 공유되고 댓글이 달리는 걸 보고 가만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칼럼이 나간 날 오전까지만 해도 “슬프다”거나 “공감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많았는데, 오후부터는 학교에 남아 있는 대학교수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싼 등록금으로 탱자탱자하는 것들이 무슨 독서와 사색 타령이냐”는 원색적인 비난도 있었다. 그의 칼럼은 “수많은 학술행사와 잡무, 수시로 날아오는 공문과 각종 평가, 주민 대상 봉사활동 등등. 이 모두를 위한 끝없는 회의와 전화통화와 메일작성과 서류작업에 탈진했다. 밤 열시 전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며 “독서와 사색이 대학교수에게 사치”가 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조형근 전 한림대 교수가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종의 해명성 글을 올렸다. “지금의 대학과 지식생산체제가 근본적으로 문제라고 해서, 거기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 개개인이 문제라는 건 아니”며 “맞서 싸워 일터를 좋게 만드는 것이 제일 훌륭하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서 도망친 쪽에 가깝다. 밥그릇 걷어차기가 칭송받는 건 불편하다”는 심경을 담았다.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까지 논란에 가세한 것을 두고 그는 “본의 아니게 ‘통감대’를 건드린 듯하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통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다들 탈진 상태에 이른,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신다는 분의 글이 기억에 남아요. 아침엔 제 글을 보고 함께 슬픔을 느꼈는데, 새로 시작하는 사업과 관련해 온종일 시달리다 저녁때가 되니 ‘정규직 교수’의 저런 고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는 글이었어요.”

교수사회 일반을 매도하는 이들의 심정 또한 각자가 처한 경쟁적인 환경에서 비롯한다고 그는 해석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서로에 대한 ‘멘탈리티’가 이러하죠. ‘난 이렇게 힘든데 왜 너만 편하려고 해?’라고 묻는 겁니다. 이 질문이 ‘밥값을 하라’는 요구로 바뀌고, 사회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추라는 명령이 됩니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서로에게 더 준엄한 잣대를 들이대며 경쟁과 희생을 강요하는 아이러니.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지만, 점점 더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율배반의 악순환에서 비롯하는 것 아닐까. 그는 “이런 여론을 알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대학을 일률적으로 규격화하고 일반 직장처럼 생산성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언론이 나서서 터뜨린다”며 “지금 대학은 획일적인 실용지식 공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본격화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 개편은 학생 평가부터 학문 연구에 이르기까지 대학 구성원들이 숨쉴 공간을 없애고 학문 연구의 가능성을 점점 더 제한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경쟁이 격화하면서 지방과 서울, 대학과 대학 사이에 서열과 차별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그는 대학 내부도 “촘촘한 신분사회로 완전히 분열됐다”고 말했다. ‘교수사회의 신분제’는 정규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년트랙’ 교수들과 불안한 고용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비정규직 교원들로 크게 양분된다. 비정규직 교원으로는 시간강사, 연구교수, 강의전임·산학협력·교양교수 등이 있다. 이들은 신분상의 불안 때문에 더 많은 연구와 노동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시간강사라고 하면 당장은 불안했지만, 결국 대학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교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낮아졌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연구교수’가 될 수 있을 뿐이죠. 요즘은 웬만큼 인품이 훌륭한 (정)교수님들도 연구교수를 ‘아무개 교수’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아무개 박사’라고 부르죠.”

그는 “전임교수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인문한국(HK) 교수였다. 학과 소속은 아니지만 정규직이었다. 정년보장이 될 때까지는 2년에 한 번 재임용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그게 퇴직을 결심한 이유는 아니었다. 칼럼에 썼듯이 “연구자가 아니고 기획사 직원 같”은 생활을 계속하면 정년보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일단 “초고까지 준비했으나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던 책을 몇 권 내고, 대중 강연도 하려고 한다”며 “오히려 대학 바깥에 진지하고 성실한 청중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은 어렵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저는 대학과 연구자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방임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실용지식 만능론과 경쟁지상주의에 따른 지식생산의 황폐화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대학이 공공성을 회복하고, 지식이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논쟁과 합의의 틀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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