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왕수펀 지음, 조윤진 옮김/뜨인돌(2018) 이 나이에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해 저지르곤 한다. 한심하고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실수를 복기하다 보면 이면에 간단치 않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을 때가 많다. 한 사람만이라도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하고 물어준다면 이 반복을 멈추기 좀 더 수월할 텐데 현실에서는 그 한 사람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처음엔 사소했던 일>은 중학교 교실에서 연이어 일어난 분실사건을 그린다. 하지만 분실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교사 출신인 타이베이의 작가 왕수펀은 도난 사건의 진실을 알려면 먼저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열 명의 화자가 제각각 사연을 들려주는 연작소설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열 명의 속마음을 다 듣고 나면 소설의 맨 앞 장을 다시 펼치게 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이 일의 시작이 뭐였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 그렇지. 시작은 겨우 볼펜 하나였다. 월요일 오전 7학년 1반 교실에서 여학생 린샤오치의 고급 볼펜이 없어졌다. 그러자 장쉐가 나서서 남학생 천융허의 필통에 그것과 똑같은 펜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천융허는 말없이 볼펜을 린샤오치에게 주고 나가버린다. 이 작은 사건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교실에 감돌게 했다. 수요일 리빙쉰이 급식비를 잃어버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천융허를 쳐다보았다. 일주일 뒤 치이리리가 학기 회식비를 잃어버렸다. 아이들 입에서는 ‘도둑’ 소리가 나왔다. 이주일 뒤 저우유춘의 버스카드가 사라졌다.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서 반장 장페이페이마저 학급비 중 일부를 잃어버리자 공개적으로 천융허는 도둑으로 몰린다. 하지만 다음날 천융허는 선생님에게 자신의 돈 1000위안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대체 7학년 1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열 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사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읽는 듯하다. 도난 사고를 이용하는 아이, 아빠에 대한 분노를 투사하는 아이,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아이, 질투심으로 모함하는 아이 등 저마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누군가를 미워하기로 마음먹고 옥죄어가는 집단 심리는 우리 현실과 놀라우리만치 닮아있다. 이 기시감 때문에 읽는 동안 소름이 돋았다. 만약 처음 볼펜이 없어졌을 때 누군가 천융허에게 “어떻게 된 거야?”하고 물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고 각자의 욕망으로 사건을 해석하며 갈등은 증폭되었다. 문학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랐던 내 이야기를 만난다. 아마 열 편의 이야기 속에 너의 이야기도 분명 있을 터다. 물론 내가 미워한 그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문학이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뿐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시작은 나와 너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중1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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