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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4 15:30 수정 : 2019.11.15 02:33

중국 작가 옌롄커-소설가 김애란 대담

옌롄커
“한강·김애란 등 영미권에 뒤지지 않아
‘물속 골리앗’ 대자연 맞선 투쟁 감동적”

김애란
“중단편 ‘연월일’서 작가 마음 많이 느껴
가혹한 운명 투쟁 끝 ‘반집승’ 인간 인상적”

대산문화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중국 작가 옌롄커가 한국 소설가 김애란과 대담을 나누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김애란을 가장 좋아한다고 여러 번 밝혀 온 그가 대담 상대로 김애란을 희망했고 김애란이 그에 응해 성사된 자리였다.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나눈 대담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연월일> 등 옌롄커의 작품 다수를 한국어로 옮긴 김태성 번역가가 진행을 맡았다. <한겨레>는 대산문화재단의 협조를 받아 이 대담을 지면에 중계한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오른쪽)와 한국 소설가 김애란(왼쪽)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진행을 맡은 번역가 김태성.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옌롄커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세계문학>에서 타이나 베트남, 한국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찾아보던 중 김애란 작가의 단편 ‘달려라, 아비’를 발견해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뒤 중국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애란 작가를 언급하고 더 많은 작품을 읽어 보고 싶다고 말했지요. 처음 읽었을 때에는 80년대생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만나 보니 이렇게 젊은 분이셨군요. 제가 재직하고 있는 인민대학교 대학원 창작글쓰기 과정에는 김애란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여건이 마련된다면 김애란 작가께서 인민대학교에 와서 중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 보셨으면 합니다.

김애란 저는 선생님의 소설 가운데 <사서>를 먼저 읽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소설에 유머 감각이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그런 작품들도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여러 장편을 읽고 최근 산문집도 보면서 단편은 어떻게 쓰시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중단편집 <연월일>이 나와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란 당연히 작품 안에 생각도 넣고 마음도 넣는데, 이 책 안에서는 마음이 더 많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선생님은 인간에게 기대나 희망을 줬다가 잘 빼앗으시는데, 대개는 가혹한 운명이나 자연과 인간이 투쟁하는 내용이지요. 결국 인간이 이기기는 하지만, 크게 이기는 게 아니라 바둑으로 치면 딱 반집으로 이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김태성 저도 옌롄커의 작품은 특별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번역하는 편인데, 이번 중단편집이 장편들보다 더 좋았습니다. 특히 ‘연월일’과 ‘골수’가 좋았어요.

중국 소설가 옌롄커(오른쪽)와 한국 소설가 김애란(왼쪽)이 14일 오전 대담을 나누기에 앞서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에서 각자의 책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옌롄커 김태성 선생이 제게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한국의 여성 작가들은 아주 무섭다고요. 저한테는 특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해 전 제 소설이 맨아시아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당선 소감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결국은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에 밀렸죠. 맨부커 인터내셔널상도 한강씨에게 뺏겼습니다. 그때도 정장을 사라는 둥 연설 원고를 준비하라는 둥 여러 말을 들었는데도 그랬습니다.(웃음)

김애란 잡지에서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찾아 읽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대체로 연륜이 쌓이면 안전하고 검증된 작품을 선택하게 마련인데, 선생님처럼 오래 글을 써 오신 분이 일부러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찾아 읽으셨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옌롄커 저는 단편 ‘달려라, 아비’ 외에도 김애란 작가의 두 소설집 <비행운>과 <침이 고인다>를 읽었는데, 김애란의 단편은 올해 제가 읽었던 모든 단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들에 속합니다. 한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중국은 아무래도 러시아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회적 문제에서 소설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사회의 일부로 다룰 뿐이죠. 김애란 소설의 가장 큰 포인트는 강인한 힘, 살아내는 힘인 것 같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단편이 ‘물속 골리앗’인데, 홍수와 폭우라는 대자연의 힘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싸움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초기 소설에서 느껴졌던 따뜻함은 감춰진 것 같더군요. 그러나 그 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달려라, 아비’를 먼저 읽고 나중에 다른 두 소설집을 읽어 보니 ‘아, 이 작가가 매우 발전하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태성 김애란의 소설 세계를 일별해 보면 초기 단편들의 특징이었던 따뜻한 유머가 나중 소설들에서는 많이 사라지고 어두움과 심각함이 두드러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배경으로 평론가들은 용산참사나 세월호 사태 같은 사회적 아픔들을 들기도 하죠.

옌롄커 저는 개인적으로 어두운 소설을 좋아합니다. 저 자체가 어두운 사람이라서요. 그래서 ‘물속 골리앗’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설이야말로 인간이, 나아가서 인류가 살아가는 곤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애란 제 소설의 특징들에 대해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듣다 보니, 그 말씀은 곧 선생님의 작품들에서 제가 느낀 특징들과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서 반갑고 신기합니다. 이를테면 강인함, 생명력, 따뜻함, 자연과의 투쟁 같은 것이 그것들이죠. 또 저는 소설가이면서도 시적인 리듬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선생님의 소설은 서사적인 장대함과 더불어 시적인 리듬도 함께 갖고 있는 듯해 반가웠습니다.

한국 소설가 김애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태성 선생의 소설이 시적이라는 말씀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이분의 소설을 번역하다가 그런 시적 특징을 자주 만나게 돼서 언젠가는 예전에 시를 쓴 적이 있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대답은 ‘아니다’였지만요.(웃음)

김애란 <연월일>에서는 인물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골수’에서는 건강한 인물들을 보는 상쾌함이 있었어요. 이 책 안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한 마디도 안 나오지만, 인물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게 느껴집니다. 아주 거창한 희망이나 큰 구원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인물들에게 옥수수 몇 알 쥐여주는 정도로 끝내시는데, 그게 어찌 보면 인물들에 대한,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김태성 옌롄커 선생의 산문집 <나와 아버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전 산문이죠. 저는 백수십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한번도 번역 중에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그 책은 번역하면서 세번을 울었습니다. 저는 서울의 중산층 출신이라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선생은 중국의 벽촌에서 태어나 고생을 엄청 했거든요. 산문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다 보니 견디기가 힘들더라고요. 작가가 옆에 있으면 보듬어 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옌롄커 중국과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공통적 특징이라면, 영미권에 대한 과도한 숭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강과 김애란 같은 작가들은 영미권 작가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이 더 많이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애란 사실 한국에 소개된 중국 작품은 주로 문화혁명 세대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저도 중국의 젊은 작가들 작품이 매우 궁금합니다. 아마도 한국과 비슷하게 변화 속도가 빨라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태성 그 점과 관련해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중국 소설의 또 하나 특징은 농촌 이야기가 많다는 점입니다. 상대적으로 도시 이야기는 드물고요. 한국으로 치면 70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 이농 같은 현상이 중국에서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요즘은 도시 서사가 조금씩 나오고 있죠.

김태성 번역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애란 아울러서 동아시아 문학의 전통도 소중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세월호에 관한 산문을 쓰다가 두보의 시 ‘곡강’ 중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라는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수백년 전 두보는 한국의 독자가 자신의 시를 그런 맥락으로 읽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겠지만, 문학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옌롄커 두보는 저의 동향 시인이라서 저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전통과 함께, 동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은 서로의 글쓰기 방법과 관점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강 소설에서 보이는 여성에 대한 존중, 김애란 소설에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김애란 작가가 제 소설 <사서>를 읽으셨다고 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실 그 작품은 제 글쓰기 여정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이거든요. 그 작품도 그렇고 지금 김태성 선생이 번역하고 있는 <레닌의 키스> 같은 소설도,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작품들입니다. 저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해냈을 때보다는 그것을 풀어낼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을 때 더 흥분합니다. <사서>가 바로 그런 경우였죠.

김애란 제가 <사서>를 읽으면서 집중했던 것이 주로 지식인의 품위와 같은 내용 측면이었는데, 선생님은 그보다는 형식 측면을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게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소설이 외국에 소개될 때 주로 사회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 소개되다 보니 독자도 그런 마음으로 읽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읽지 않은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도 어떠한 편견도 없이, 더 순수한 마음으로 더 즐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옌롄커 이번 한국 방문 중 오늘 오전의 이 대담이 저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렇고 강연에서도 그렇고 제가 한 문학적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제가 온통 홍콩 이야기만 한 것처럼 보도된 데에 불만이 있었거든요. 신문을 읽은 어떤 중국인이 저더러 조심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중국에 돌아가면 어디 잡혀가는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웃음) 사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온 건 한국의 여성 작가들과 ‘화해’하기 위한 거였는데 말이죠.(웃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중국 소설가 옌롄커(왼쪽)와 한국 소설가 김애란(오른쪽). 옌롄커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김애란을 가장 좋아한다고 여러 번 밝혀 온 바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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