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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06:01 수정 : 2019.11.08 10:31

차무진 장편소설 ‘인 더 백’ 출간
대재앙 몰아친 한반도 남쪽 배경
서울에서 대구까지 피난 여정 그려

6·25 전쟁 환기시키는 역사적 맥락
탄탄한 문장에 극적 재미 가미
“계단을 밟듯 꾸준히 쓰려 한다”

인 더 백

차무진 지음/요다·1만4000원

백두산 분화구가 폭발하고 한반도에는 식인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지진이 이어지고 반군이 출몰하는 가운데, 일가족 셋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청정 지대’ 대구를 향해 길을 떠난다. 동호대교를 건너던 중 아내는 포격에 맞아 숨지고, 배관공이자 소설가인 동민은 여섯살짜리 아들 한결이를 데리고 대구까지 험난한 여정을 이어 가기로 한다. 식인자들의 눈을 피하고자 아이는 커다란 배낭 안에 넣은 채로. 차무진 소설 <인 더 백>의 제목은 배낭 속 아이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온갖 위험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족과 핏줄이라는 가치를 상징한다.

“병풍 같은 저 나무들 너머, 그와 아들이 가야 할 땅은 어둑서니들의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흔적을 잃어버린 도로, 이념에 사로잡힌 채 균질화된 인간들, 본능을 되찾으려는 개들, 누구도 끄려 하지 않는 산불, 파괴력을 가진 지진 그리고 탁한 잿빛 공기가 있을 터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재앙 이후) 소설 <인 더 백>을 펴낸 작가 차무진. “소설에서 주인공 부자의 최종 목적지를 대구로 정한 것은 대구가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곳이 아주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 더 백>의 세계는 문명과 이성이 야만과 폭력에 자리를 내준 극한의 상황이다. 식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사냥하고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정부군은 감염자와 ‘빨갱이’를 추적하고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며, 그런 정부군에 맞서 반군이 세를 규합해 가는 중이다. 동민은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물론 정부군도 반군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아들의 안전을 지키며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분투한다. 소설은 동호대교를 필두로 잠실, 구리, 여주, 충주, 문경, 낙동강, 금오산, 대구 등 동민 부자가 거쳐 가는 경로를 장 제목으로 삼아 대재앙 이후의 세계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안전 지대를 찾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이라는 얼개는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7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작가 역시 “작품을 쓰면서 매카시를 의식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코맥 매카시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로드>도 감명 깊게 읽었죠. 다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재앙 이후) 장르에서는 재앙이 벌어진 현장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가는 게 일종의 클리셰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종말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인 더 백>은 한국을 배경으로 삼아 구체적인 지명을 내세우고 지세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처가 드리운 그늘을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재난을 피해 남하하려는 이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던 중 다리가 폭파되는 장면이라든가,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끼인 동민이 “대한민국 만세”와 “반군 만세!”를 차례로 외쳐야 하는 정황, 이청준 소설의 저 유명한 전짓불 앞의 심문을 연상시키는 반군의 이념 확인법, ‘빨갱이’라는 이유로 감염자로 분류돼 국군에게 처형되는 민간인들의 수난 등은 <로드>와 다른 <인 더 백>의 ‘국적’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정치적 메시지가 승한 이념 소설인 것은 아니다. <인 더 백>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동호대교가 폭파된 뒤 동민이 몸통에서 분리된 아내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망연히 서 있는 인상적인 프롤로그 장면에서 시작해, 긴박한 액션과 스릴이 소설 내내 이어지다가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까지 한눈 팔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영화를 보는 듯 시각적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작가는 “그림을 떠올리면서 장면을 쓰는 편”이라고 밝혔다.

장편소설 <인 더 백>의 작가 차무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은 없다. 구원은 셀프여야 한다. 이 절멸한 세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이성을 잡아먹으며 걸었던 길이었다. 변격(變格)적인 상상이 지배한 날들이었고 그 시간은 사투였으며 지난했다.”

배관공이자 소설가이며 상당한 내공을 지닌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 동민은 얼떨결에 챙겨 온 말러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시디(CD)를 반으로 잘라서는 무기로 쓰기도 한다. 음악 시디로 상징되는 문화와 교양이 자구적 폭력을 위한 수단으로 전용되는 이 장면이야말로 비이성과 변격을 축약적으로 상징한다 하겠다.

차무진은 2010년 장편소설 <김유신의 머리일까?>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해인>과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전2권) 등 장편 셋을 발표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게임 회사에 입사해 개발팀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는 첫 소설을 내고 반년 뒤인 2010년 말, 14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게임 개발이란 게 생각처럼 창의적인 일이 아니더라구요. 새로운 게임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로직과 시스템에 따를 뿐이고 거기에다가 옷만 조금 다르게 입히는 식이더군요.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었더라면 아주 재미없는 삶이었을 것 같아요.”

장편소설 <인 더 백>을 펴낸 차무진 작가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7년작인 <해인>은 유력 문학전문 출판사가 주관하는 장편소설상에 응모해서 최종심에까지 올랐지만 ‘당선작 없음’ 결정으로 작가에게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 뒤로는 응모는 포기하고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책을 출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장르문학에서 어휘와 문장력을 강화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는 말했는데, 실제로 <인 더 백>은 여느 장르소설에 비해 풍부한 어휘와 유려한 문장이 돋보인다. 단순한 스토리 위주의 전개와 달리, 문장을 곱씹으며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고서 수입이 크게 줄었죠. 가까운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많이 어려웠고 후회도 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거겠죠. 계단을 하나씩 밟는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쓰려 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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