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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05:01 수정 : 2019.11.08 20:36

도올 김용옥이 지난해 2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벙커1에서 마가복음을 강의하고 있다. 통나무 제공

유·불·선과 기독교, 동학 등 섭렵해온 도올 탐구 역사의 소산
“복음서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은 마가복음”

도올 김용옥이 지난해 2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벙커1에서 마가복음을 강의하고 있다. 통나무 제공

4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복음서는 무엇일까? 최근에는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나왔다는 주장이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성서신학자들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이 최초의 복음이라는 것은 2천년 동안 기독교계의 상식이었다. 신약성서 27편의 편집 체제상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나와 있고, 마가는 마태보다 짧은, 불완전한 텍스트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도 마가복음엔 없다.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에서 도올 김용옥은 오히려 분량이 적기 때문에 마가복음(Gospel of Mark)이 최초의 복음서라고 확신한다. 원복음자료의 분량이 다른 것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그 전체가 661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그중 600개 이상이 마태복음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고, 최소한 350개가 누가복음에 들어가 있다. (…) 마가복음이야말로 복음서의 원형이고,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원자료로 하여 타 자료를 더 보탠 증보판이다.”

도올이 마가복음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시기상으로 앞섰기 때문은 아니다. “마가의 예수야말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신학계에서는 ‘역사적 예수’라는 표현을 선호한다)의 원상을 가장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갈릴리 예수는 어디까지나 갈릴리 예수일 뿐이다. 케리그마가 인간 예수, 갈릴리 모래바람 속의 예수, 민중 속에서 애통해하는 예수를 덮지 못한다.” 케리그마란 원래 설교 또는 선포라는 뜻인데,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는 “초대교회의 신념체계”를 말한다.

예수의 삶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이 중요하다고 설파한 것은 사도를 자처한 바울(Paul)이었다. 시기적으로는 사도 바울의 서한이 마가복음보다 약 20년가량 앞선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외로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하였다.(고전 2:2)”라고 밝힌다. 도올은 바울이 예수의 삶이 아니라 죽음에 주목하는 이유를 바울의 ‘교회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한다. “바울은 예수가 죽은 후 예수의 부활을 믿고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에클레시아(초대 교회) 회중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어, 그들을 박해하던 중에 예수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 당시 바울에게 예수의 삶은 장사가 되질 않았다. 오직 예수의 죽음만이 훌륭한 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예수의 삶에 집착하는 한, 바울은 사도 직분의 정당성의 서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길이 없다.” 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성문(聲聞)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유앙겔리온’(복음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은 예수를 주어로 삼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주체로 인식하는 기쁜 소식이다. 바울의 신학체계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을 뿐 “예수의 복음”은 있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인간 예수의 복음은 있을 수 없고,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있을 뿐이다.

도올은 “마가의 유앙겔리온은 바울의 유앙겔리온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의 선포자였다고 한다면, 마가는 예수의 삶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을 창시했다. 바울의 유앙겔리온이 편지였고 권면이었고 이론이었다면, 마가의 유앙겔리온은 이야기였고, 감동이었고 드라마였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도올은 또 4복음서 가운데 복음서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은 마가복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니라”로 시작하는 것은 마가복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세계라” 하여 예수의 족보를 읊고 있고, 누가복음은 “테오필로 각하에게 그간 일어난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보낸다”는 사무적인 어조로 시작하며,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매우 철학적인 로고스론을 피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도올이 젊은 시절부터 유·불·선과 기독교, 동학 등을 섭렵해온 탐구 역사의 소산이다. 50여 년의 공부 끝에 이른 결론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1970년대 한국의 민중신학과 공통 분모가 많다. “기독교는 이미 생명을 상실한 종교다. 니체가 20세기를 바라보며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면 나 도올은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외친다. ‘기독교는 죽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독교 신학의 문제를 나의 실존적 테제로서 부둥켜안고 고민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한국민중이 아직도 기독교를 껴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김용옥 지음/통나무·2만8000원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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