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약 의존 줄이고 음식으로 건강 찾기 시작한 유전학 의사
쌍둥이 유전자 연구 ‘다이어트 신화’ 부수고 ‘미생물’에 눈길
다이어트 신화
팀 스펙터 지음, 조호근 옮김/서커스·2만2000원
방법이야 어쨌든, 다이어트의 핵심은 ‘몸에 들어온 열량보다 몸 밖으로 나간 열량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량이 적은 식단을 짜본다. 지방이 가장 먼저 퇴출된다. 소량의 지방보다 탄수화물이 더 치명적이라니 탄수화물도 뺀다. 그럼 3대 영양소 가운데 단백질만 남는데, 하루 세끼 고기만 먹으면서 살 빠지길 기대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으니 되도록 적게 먹기로 한다. 야채와 과일도 마음껏 먹을 수는 없다. 당분을 많이 함유한 과일과 일부 야채는 다이어트의 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식탁엔 시금치 비슷한 것만 남는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원하는 이들이 빠지는 ‘건강식단의 딜레마’에, 역학과 유전학을 전공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팀 스펙터도 걸려들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에 있는 해발 3100미터 산자락을 6일 동안 스키로 누비다가 원인 모를 질병을 앓게 된 것이 계기였다. “처방약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섭취하는 음식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지 탐구하는 구도의 길”을 떠난 그는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수많은 다이어트 정보 가운데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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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과 미생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 팀 스펙터는 특정 식품을 ‘슈퍼푸드’라 부르는 것이 사기에 가까우며 사실상 모든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슈퍼푸드라고 말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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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정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지방을 섭취하는 그리스 크레타섬 주민들이 가장 건강하고 장수하는 집단 중 하나인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시대 독극물로 불리는 설탕을 미국인의 두 배나 섭취하는 쿠바인들은 왜 평균적으로 미국인보다 건강한지. 올리브유 범벅인 메인요리를 올리브유에 적신 빵과 올리브유에 절인 올리브와 함께 먹는 지중해 사람들이 왜 그토록 건강하며, 치즈로 포화지방을 잔뜩 먹고 포도주를 물 마시듯 하는 프랑스인들이 왜 영국과 미국인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길고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은 것인지.
다행히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그에겐 남다른 비밀병기가 있었다. 성인 쌍둥이 1만1천 명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20년을 함께한 50여 명의 연구진이다. 육체적 차이를 배제한 식이요법의 효과를 명확히 비교하기 위해, 유전자와 양육환경 등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체질량지수 30 이상 과체중인 이들을 골라 두 그룹으로 나눴다. 놀랍게도, 20년간 정기적으로 다이어트를 한 쌍둥이와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본 적 없는 쌍둥이의 체중이 거의 같았다. 16살에 체중이 같았던 쌍둥이들을 25살에 다시 확인해보니 다이어트를 한 쌍둥이들의 평균체중이 오히려 1.5㎏ 더 나갔다.
팀 스펙터는 말한다. “우리의 신체는 줄어든 열량 섭취량에 적응하고, 진화의 힘이 프로그램한 내용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특정 식품을 제한하거나 권장하는 방식의 식이요법은 저장된 영양분을 유지하려는 신체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일정기간 이상 과체중을 유지하면, 우리 몸에서는 일련의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서, 지방 저장량과 음식에 대한 대뇌의 보상작용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한다.” 대부분의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다.
<다이어트의 신화>는 그가 다이어트를 둘러싼 오래고 굳건한 ‘미신’을 타파하고, 그 자리를 신뢰할 만한 최신 연구결과로 대체하고자 집필한 책이다. 여기서 ‘미신’이란 “비만은 섭취와 소모 열량을 측정하거나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거나 특정 부류의 식품을 제한하면 해결된다”는 전 세계인들의 보편적 믿음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비만을 ‘섭취하는 열량 대 방출하는 열량’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미신으로 밝혀졌다. 1988년 캐나다 라발대학의 클로드 부샤르 교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식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기숙사 건물에서 120일 동안 먹고 자고 비디오게임을 하며 빈둥거렸다. 산책은 하루 30분으로 제한했다. 동일한 식단으로 2주간 하루 평균 2600㎉를 섭취하고, 이후 매일 1000㎉씩 섭취량을 늘렸다. 당연히 모든 참가자의 체중이 늘었지만, 증가폭은 4㎏부터 13㎏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인간은 섭취하는 식품과 환경이 같아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식품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저자는 이처럼 ‘에너지와 열량’을 시작으로, 지방, 단백질, 유제품, 탄수화물, 섬유질, 인공감미료와 첨가물, 코코아와 카페인, 알코올, 비타민 등에 얽힌 온갖 ‘다이어트 미신’을 차근차근 깨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슈퍼푸드는 홍보업계의 사기 개념이며, 모든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사실상 슈퍼푸드”라거나, “운동을 많이 하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이지만 열량소모가 많이 되는 ‘꼼지락거리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체중감소를 억제하기 때문에 운동으로 체중감량에 성공하기는 힘들다”거나, “초콜릿은 몸에 좋고 살도 안 찌지만 카카오 함유량 70% 이상의 다크초콜릿에 한해 그렇다”는 등의 희비가 엇갈리는 무수한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열량과 영양소가 개인의 비만에 일관된 영향을 미치지 않고, 같은 식품에 대해 우리 몸이 이토록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면, 대체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 주목한다. 우리 몸에는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있고, 소화기관에 사는 미생물만 1.8㎏에 달한다. 미생물은 음식의 소화에 꼭 필요하며, 우리가 흡수하는 열량을 조절하고 필수효소와 비타민을 공급하고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유지해준다. 사람마다 몸속에 사는 미생물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어떤 미생물은 체중증가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만, 어떤 미생물들은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다. 정크푸드에 맛을 들인 미생물은 숙주로 삼은 인간의 뇌에 신호를 보내 자신들의 번성에 유리하도록 정크푸드 섭취를 유인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우리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종류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식품 섭취, 환경오염과 항생제 남용, 지나치게 청결한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미생물을 죽이고 있다. 저자는 최근 10년간 세계 비만인구가 급증한 원인을 이러한 ‘미생물 다양성 감소’에서 찾으면서 “자기 몸의 미생물 정원을 가꾸자”고 독려한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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