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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5 21:11 수정 : 2005.01.05 21:11

말술에, 아녀자 희롱, 기행 일삼으며 자신 검증

요명 스님이 일찍이 노스님들로부터 전해 듣던 경허의 기행담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경허는 동학사 앞 산을 넘어 한 시간 반 거리인 신도안 장터에 가서 술을 동이째 털어놓고 얼굴을 붉게 단청한 뒤 지나가는 아녀자의 입술을 덮치곤 했다. 요즘도 몰매를 맞아 쌀 그런 행실을 조선시대에 했으니 그런 기행이 가져올 파장과 비방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비방에도 칭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녀자를 희롱하다 죽도록 얻어맞다가 누가 말리면 말린 사람을 향해 “미친 놈아, 왜 남의 일을 방해하느냐”며 호령하던 그였다. 그는 개 돼지처럼 진흙밭에 구르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한떨기 연꽃이었다.

동학사강원 학장 일초 스님(61)은 이에 대해 “역경계(좋지 않은 일)를 행하면서 거기에 마음이 끄달리거나 흔들리지 않는가를 보는 의도된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제일의 강사가 한갓 종이호랑이였음을 익히 경험한 그는 깨달은 뒤에도 그처럼 자신을 철저히 검증했다. 배불정책으로 조선 중기 이후 선맥마저 끊겨버려 검증받을 스승하나 없던 세상에서 그는 그렇게 한국 근대 선의 첫새벽을 열었다.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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