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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2 16:44 수정 : 2008.01.02 17:15

남극마라톤 완주기

안병식씨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도전기 ⑦ 남극 130km 마라톤
3대 사막 마라톤 완주자에게만 주어지는 남극 마라톤 3위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달려 ‘극한마라톤 그랜드슬램’

안병식씨의 도전은 끝이 없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4대 극한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것이다.

사하라 마라톤 등 3대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안병식(34·노스페이스)씨는 지난달 22일 남극에서 열린 ‘130㎞ 남극마라톤대회’에서 8개국 참가자 12명 가운데 3등을 차지해 세계 극한 마라톤을 모두 섭렵하며 철인중의 철인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안씨는 지난 11월19일부터 28일까지 8개국 12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남극마라톤대회에서 130㎞를 20여시간 달려 3위의 기록으로 대회를 마쳤다. 이로써 안씨는 사하라(이집트), 고비(중국), 아타카마(칠레) 등의 사막 마라톤(각 250㎞) 코스를 완주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인 이번 대회에서 세계 정상급 기록으로 입상해 ‘극한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1995년 군 입대 직전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마라톤에 빠진 안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1998 제주대 5㎞ 건강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2004년 국제아이언맨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극한 마라톤 도전에 나선 안씨는 2005년 9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처음 완주했고, 2006년 6월 고비 마라톤 우승, 8월 아타카마 마라톤 4위, 11월 사하라 마라톤 3위 등의 기록을 세우며 사막 마라톤계의 정상급 선수로 자리잡았다.

이 대회에는 안씨를 비롯해, 5명의 한국인이 출전했고 한국 선수들은 11월18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미국, 아르헨티나를 거쳐 남극 마라톤이 열리는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대회 참가비(850만원), 항공료(350만원)를 비롯해 평균 1400만여원을 들였다.

아래는 제주대학교 체육학부 대학원에 재학중인 안씨가 <한겨레>에 보내온 남극마라톤 완주기이다. 안씨는 지난 2006년 11월에 사하라마라톤을 완주한 스토리를 한겨레에 연재한 바 있다. /편집자


남극마라톤 완주기
2007년 11월19일.

누워 있는 일말고 남극으로 가는 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날까지 약을 먹고 식사도 거르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동그란 창문 사이로 보이는 밖의 풍경은 높은 파도와 회색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얼마를 누워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에서 깬 나는 그제서야 적응이 됐는지 정신을 차리고 배의 갑판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여기가 남극해였다. 40시간 넘는 비행과 48시간 동안 배 멀미와의 싸움. 남극은 쉽사리 길을 내주지 않았다. 남극의 주인은 눈과 바람 그리고 펭귄들이었다. 남극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유빙 조각들과 그 위에 앉아 있는 펭귄들, 남극임을 실감케 해주는 풍경이 이어졌다.

이번 남극레이스는 남극 본토와 그 주변에 있는 섬들을 이동하면서 진행되었다. 처음 도착한 섬은 아이초(Aitcho Island)섬, 펭귄 섬으로 불린다. 여름철인 남극의 밤은 짧았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새벽 2시가 되면 다시 해가 떴다. 남극에서의 첫 번째 새벽엔 아름다운 일출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남극에 머무르는 10일 동안 맑은 날은 이틀도 되지 않았다. 회색빛 하늘과 매일 눈보라가 되풀이 됐다.

첫 날은 새벽 3시에 대회가 시작됐다. 아름다운 일출과 하얗게 눈이 덮인 풍경 속에서 맞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새벽이었다. 첫 번째 코스는 8시간 동안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남극에서의 기상 변화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럽고 위험하다. 남극에 오기 전 상상한 것과 상당히 다르고 남극에서 마라톤 대회를 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고 탐험이었다.

거기에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수많은 펭귄떼…. 이러한 극지에서 하루 8시간을 달려야 된다는 두려움보다 멋진 풍경 속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얼만큼 달렸을까? 1시간 정도를 남겨놓고 맑고 화창하던 날씨가 금세 바뀌며 갑자기 눈폭풍(블리자드)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블리자드는 남극에서 강풍과 함께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말한다. 고글, 마스크, 특수장갑, 방풍재킷 등 몸을 완벽하게 보호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곳은 남극이었다. 이루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추웠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는 거셌다. 처음 경험해 본 남극 블리자드의 위력은 공포스러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레이스는 야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하얀 눈이 반사되면서 하늘에 달이 뜬 것처럼 밝고 마치 새벽 안개처럼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무도 없는 남극의 새벽녘에 눈이 덮인 세상을 달린다니…. 남극에서 맛본 달리기는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할 만큼 환상적이었다.

남극마라톤 완주기
네 번째 레이스는 큐버빌(Cuverville Island)섬의 산 위에서 대회가 진행되었다. 보트를 타고 섬으로 이동한 뒤 다시 1시간을 넘게 오르고서야 도착했다. 이 날은 남극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산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미 순위도 어느 정도 정해졌기 때문에 선두그룹도 순위 경쟁보다는 남극 레이스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남극에서는 눈의 색깔도 달랐다. 하얀 눈 위에 햇빛이 비치면 보석처럼 신비스러운 색으로 변했다. 햇빛에 반사되는 바다와 빙산들 그리고 파란 하늘과 펭귄들의 신비로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남극의 맑고 차디찬 하늘 아래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황홀했다. 남극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취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마지막 레이스는 디셉션(Deception Island) 섬에서 대회가 진행되었다. 새벽부터 몰아치는 강풍에 첫 날의 블리자드가 떠올랐다. 날씨가 너무 추워 배 밖으로 나오기가 싫었지만 보트를 타고 높은 파도를 뚫고 마지막 코스로 이동했다. 네 번째 코스에서 아름다운 남극의 풍경을 즐기며 달렸듯이 이 날도 블리자드의 강풍을 ‘즐기며’ 마지막 레이스를 마쳤다.

남극에서의 마라톤 레이스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과 블리자드의 강풍만 없다면 그동안 내가 참가해본 사막레이스에 비해 그렇게 힘든 레이스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남극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이라는 ‘설렘’으로 다가간 그 곳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10일 만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귀로의 뱃길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석양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남극에 머무르는 10일 동안 절반이 넘는 시간을 배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날짜와 시간 감각도 없어졌다. 지루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배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구조요청으로 인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하루를 소비한 탓에 한 개의 대회 코스가 취소되어 버렸다. 기상악화로 인해 계획했던 코스들이 일부 취소되는 등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남극마라톤이라는 ‘첫 경험‘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의미가 크고 소중한 추억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많은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향하여 훨훨 날아 갈 것이다.

극지 마라톤 마니아/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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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안병식씨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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