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26 10:13
수정 : 2018.07.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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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냉면’ 벽에 걸린 노회찬 국회의원의 글.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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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향이네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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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냉면’ 벽에 걸린 노회찬 국회의원의 글.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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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가장 분주한 곳은 어디일까요? 평양냉면집 주방이 아닐까 합니다. 남대문시장에 있는 ‘부원냉면’도 그런 곳입니다. 뜨거운 열기가 도시의 전깃줄을 타고 식당에 스며들어도 손님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시원한 냉면 한 사발이면 무더위 따위는 잊으니까요.
이 식당과 제가 인연을 맺은 때는 12년 전입니다. 평양냉면 한 그릇 가격은 5000원, 바삭하고 따스한 녹두전은 2500원. 나무랄 데 없는 맛에 가격까지 착해서 반했죠. 헤지고 낡은 옷을 입은 손님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표정이 밝고 두런두런 설탕 같은 웃음이 밴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발걸음을 끌고 와 가난하지 않은 마음을 나누는 식당이었어요.
그 가난한 이들 중엔 정의당 노회찬 의원도 있었답니다. 당시 주인 고현희씨는 제게 말했죠. “노회찬 의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집 단골”이라며 “어느 날 보니 국회의원이 돼 있었는데 그 후에도 자주 왔다”고 했습니다.
용접 기술을 배워 어둑한 공장에서 불꽃 튀기며 일했던 청년 ‘노회찬’. 그가 고된 일을 마치고 와 때 묻은 작업복을 훌훌 벗어 키 작은 냉면집 의자에 걸쳐 놓고 2500원짜리 녹두전 한 장 찢어 삼키고는 쓴 소주 한 잔 털어 넘기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지요.
어제 다시 찾은 부원냉면 벽엔 ‘34년 단골집 부원면옥 때문에 행복합니다’란 그가 쓴 문장이 코팅돼 걸려 있었습니다. 고씨는 한 달 전에도 노 의원이 왔었다면서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팠어요. 몇백 억 가로챈 나쁜 사람도 있는데…조문 가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지요.
이번 주는 ESC 제작에 몰입하기가 어렵더군요. 마음이 무거웠어요. 2500원짜리 녹두전을 좋아한 소박한 한 정치인을 우리는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번 호만은 ‘즐거움’ ‘재미’ 등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지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대신 이병학 선임기자가 다녀온 ‘다크 투어’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지인 목포와 진도, 갑오동학농민혁명 격전지인 장흥 등입니다. ‘다크 투어’는 역사적 참상이나 자연재해 등이 벌어진 현장을 방문해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여행을 말한다. 권다현 여행작가가 알려준 조용하고 소담한 강진의 백운동정원과 거제 맹종죽테마파크도 가볼까 합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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