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05 09:50
수정 : 2018.04.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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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랑해’ 벽. 전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표현한 ‘사랑해’가 적혀 있다. ? Paris Tourist Office -Photographe Am?lie Dupont. 사진 프랑스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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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재미급속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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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랑해’ 벽. 전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표현한 ‘사랑해’가 적혀 있다. ? Paris Tourist Office -Photographe Am?lie Dupont. 사진 프랑스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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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들과 암호를 만들어 놀이처럼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이었죠. 글자의 조합을 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면 ‘박미향’의 ‘박’은 ‘갑’으로 ‘향’은 ‘얗’으로 말이죠. 규칙을 아시겠죠? ‘박’의 ‘ㅂ’과 ‘ㄱ’의 위치를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미’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꼭지가 두드러지는 먹는 배 모양의 글자를 만들어서 ‘미’자 위에 붙이는 거죠. ‘ㅁ’자가 받침이 되는 겁니다. 친구들과 전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호기롭게 암호 쪽지를 엄숙한 수업시간에 돌리곤 했습니다. 키득키득 웃다가 종이 울리곤 했죠. 우린 묘한 연대감에 전율했습니다.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20세기 소년>의 주인공들이 된 것처럼 말이죠. 세종대왕까진 아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언어를 만들어 소왕국의 왕이 된 듯했죠. 일기도 이 암호문자로 썼습니다. 일기장을 꼭꼭 숨겨둘 필요 없이, 아무 곳에나 던져놓아도 안심이 됐습니다.
언어는 의사 전달의 도구이자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촉매제입니다. 한 나라를 이해하려면 긴 시간의 숨결이 담긴 그 나라 말의 변천사를 깨치면 됩니다. 하지만 언어의 신이 아니라면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건 스트레스입니다. 오죽하면 ‘영어 울렁증’ 같은 말이 생겼겠습니까?
언어가 부담이 아니라 놀이나 재미, 즐거움이 될 순 없을까요? 학창 시절 제 암호문자처럼 말이죠. 한편으론 인공지능(AI) 시대에 통역 문화는 어떻게 바뀔지도 궁금합니다. 기술개발로 이어폰만 쓰면 외국인과 자동 대화가 된다고 하죠. ‘로봇 철가방’이 짜장면을 싣고 달리는 날이 코앞에 닥친 시대입니다. 음식 주문 서비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자율주행 배달로봇 시제품 개발을 완료했다는군요. 이름은 ‘달리’. 달리한테서 짜장면을 받아들고 “면이 팅팅 너무 불었다!” “왜 이렇게 늦었나요?”라고 항의성 말을 던질 수 있을까요? 저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이들에게 이번 호 ESC가 해답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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