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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4 09:37 수정 : 2019.10.24 20:19

지난 16일, 강원도 정선 ‘운탄고도’에서 ‘마천봉’으로 가는 길. 김선식 기자

여행

석탄 나르던 ‘운탄고도’ 첩첩 산골 옆구리에 끼고
화전민 살던 무릉도원길, 자작나무 숲 되었네
해발 1100m 숲 에워싼 옛사람들 흔적 따라
강원 정선 하이원 감싼 백운산 ‘하늘길’ 도보여행

지난 16일, 강원도 정선 ‘운탄고도’에서 ‘마천봉’으로 가는 길. 김선식 기자

하늘 높은 계절,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하늘길’에 올랐다. 해발 1100m 높이 ‘하늘길’은 수십 년 전 마을 사람들과 석탄 트럭이 다녔던 길이다. 입소문 들은 등산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강원랜드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길을 다듬고 넓혀 등산·도보여행 길을 정비했다. 운탄고도(석탄 트럭이 다닌 길), 고원숲길, 무릉도원길, 둘레길 등 네 가지 길을 총 10개 구간으로 나눴다.(여기에 속하지 않는 이름 없는 구간도 있다.) 보통 운탄고도 횡단, 운탄고도~둘레길, 무릉도원길~운탄고도 도보여행을 추천한다. 마음 가는 대로 길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특권이다. 고원숲길~운탄고도~무릉도원길 순으로 총 11.6㎞를 걷기로 했다. 구름 위를 걷다가 무릉도원으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지난 16일, 곤돌라를 타고 강원 정선 고한읍 하이원리조트 해발 1340m 정류장 ‘하이원탑’으로 향했다. ‘고도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동네 마실가듯 걷기 시작했다. 오전 10시55분, ‘하이원탑’에서 바로 이어진 ‘고원숲길’로 들어섰다. 전날 내린 비로 들머리 신갈나무 낙엽은 반쯤 젖어 있었다. 폭 50㎝ 남짓한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했다. 워낙 완만해서 좁은 숲길에 ‘고원’(높은 지대에 있는 넓은 벌판)이란 이름을 붙였나 보다. 오솔길 산책하는 기분에 젖어 있는데 말라 죽은 나무줄기 한가운데서 키 2m 남짓 새로 자란 나무를 봤다. 이어 산짐승이 야생화 뿌리를 파먹은 흔적, 높은 산에서만 자란다는 홍갈색 주목과 은백색 사스래나무가 나타났다. 그제야 해발 1100m 넘는 산길 위에 있단 걸 실감했다. 화려하지 않은 옛 산길은 고산지대의 생명력을 잔뜩 뿜고 있었다.

길은 옛 마을로 이어진다. 고원숲길 1.5㎞를 걸으면 ‘도롱이연못’이 나타난다. 연못 앞 20~30m 높이 낙엽송 군락, 물에 선명하게 비친 숲과 하늘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옛사람들 소망이 담긴 곳이다. 지름 50여m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내려앉아 생겼다고 전해진다. 광부 가족들은 연못에 사는 도롱뇽을 보며 가족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살아있는 도롱뇽을 갱도가 무사한 증거로 여겼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엔 폐교한 운락초등학교 기념비가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1967년 개교해 1991년 폐교한 학교는 국내 석탄산업 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불과 30여년 전 아이들이 학교 다니고, 광부가 귀가하고, 가족들이 기도하며 지나쳤을 길에 잠시 머물다 운탄고도로 방향을 틀었다. 1998년 ‘폐광지역 개발’을 목표로 설립한 강원랜드는 운탄길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옛길을 정비해 도보여행 길을 만들고 2015년 12월엔 ‘1177갱’ 원형을 일부 복원했다.

‘운탄고도’와 ‘고원숲길’이 만나는 ‘도롱이연못’. 김선식 기자

운탄고도는 1960년대부터 석탄 실은 트럭이 다녔던 고산 도로다. 길이 평평해 쉬운 도보여행 길로 알려져 있다. 걷기 쉬운 길이라고 만들기도 쉬웠던 건 아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정부가 동원한 국토건설단 2000여명이 길 닦기에 나섰다. 해발 1100m 넘는 고지대를 삽과 곡괭이 들고 올라 산을 깎고 흙을 쌓아 폭 4~5m 남짓 자갈길을 냈다.

운탄고도. 탁 트인 풍경을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김선식 기자

낮 12시15분, 손 흔들며 웃고 있는 광부 동상이 들머리를 지키고 있는 ‘1177갱’에 도착했다. 1960년대 무연탄을 채굴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해발 1177m에 개발한 최초의 갱도다. 여기서 캐낸 석탄을 트럭에 실어 운탄고도를 따라 동쪽 함백역으로 보냈다. 동원탄좌는 1980년 24개 석탄광구에서 3400여명이 국내 석탄 생산량 9%를 담당한 국내 최대 민영 탄광업체였다. 여느 광부들처럼 사북광업소 노동자들 상황도 열악했다. 스티로폼으로 벽을 댄 사택은 천장이 허물어졌고 겨울엔 수돗물이, 휴일엔 전기가 끊긴 채 생활했다. 회사는 채탄량을 축소 계산해 임금을 낮췄다. 1980년 4월 사북항쟁의 발단이었다.

1177갱.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해발 1177m에 개발한 최초의 갱도. 강원랜드가 원형 일부를 복원했다. 김선식 기자

운탄고도에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걸어야 한다. 정상 봉우리가 아닌데도 옆으로 탁 트인 광활한 풍경이 시선을 잡아끈다. 나뭇가지 하나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영월군 장산(1408m)과 매봉산(1271m) 산줄기가 이루는 첩첩 산골 위로 길고 희미한 구름이 걸려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석탄을 나르던 운탄고도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평평하게 펼쳐지는 길’이라는 새 뜻을 얻었다. 애추 지형(talus·빙하기 암석 봉우리가 해빙을 반복하며 깨진 돌들이 능선 따라 흘러내리다 쌓인 지형)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첩첩 산줄기들이 아래로 펼쳐진다. 석탄처럼 새까만 언덕엔 키 작은 단풍나무가 기적처럼 붉게 물들어있다. 옛 광부들이 탁 트인 풍경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 내쉬었을 그 길엔 이제 여행객들이 서 있다. 그들은 평평한 고도를 걸으며 진귀한 풍경 앞에서 한숨을 돌린다.

운탄고도에 있는 애추 지형(talus). 김선식 기자

풍경에 취한 것인지 평지에 반한 것인지 운탄고도 4.3㎞ 걷는 데만 2시간25분 걸렸다. 가는 길 쉼터에서 끼니로 김밥을 먹은 시간까지 포함해도 너무 늦어버렸다. 오후 2시20분에야 마천봉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해발 1426m 마천봉은 ‘하늘을 어루만지는 봉우리’란 뜻으로 백운산 최고봉이다. 이미 높은 고도에서 시작한 산행일지라도 산은 봉우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운탄고도에서의 감상은 온데간데없고 이 길에선 잠시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분명 정상까지 0.6㎞ 남았다고 일러 준 팻말을 봤는데, 또다시 같은 거리를 알리는 팻말이 나타난다. 이렇게 산에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그나마 마지막 200m가량 구간은 선심 쓰듯 평지를 내어준다.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는 봉우리에서 한숨 고르며 평정심을 되찾고 ‘무릉도원길’로 내려갔다.

마천봉 쪽에서 ’운탄고도’ 방향으로 산악자전거를 타는 여행객들. 김선식 기자

마을 사람들은 마천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무릉계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시로 지나치는 계곡인데도 볼 때마다 예뻤나 보다. 무릉계곡 끼고 걷는 무릉도원길은 파란 하늘을 수줍게 가린 나뭇가지들마저 정갈하다. 길 마다 색의 향연이다. 노랗고 붉은 단풍 숲을 지나면 초록 낙엽송 길이, 다시 은백색 사스래나무 길이 이어진다. 길가에 그루터기만 남은 아름드리 고목은 포동포동한 에메랄드빛 이끼로 뒤덮여 있다.

무릉도원길에서 만난 이끼 낀 그루터기. 김선식 기자

완만한 흙길을 소풍 가듯 내려가다 보면 다시 사람 살던 마을 터가 나온다. 오후 4시10분, 둘레길과 무릉도원길 갈림길에서 오른쪽 ‘제3의 길’로 400m 걸어 올라갔다. 은백색 줄기를 길게 뻗은 자작나무 숲과 초록 잎이 건재한 낙엽송 군락지가 대결하듯 마주 보는 사잇길이다. 그중 약 4만㎡(1만2100평) 땅을 빽빽하게 채운 자작나무 숲은 옛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이라고 한다. 2014년부터 ‘하늘길’ 조성에 참여한 강원랜드 시설관리팀 함성욱 대리는 “자작나무숲 일대는 원래 화전민 마을과 숯 가마터, 더덕밭이 있던 자리였다”며 “화전민 이주 정책 이후 정부에서 자작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고 추후 강원랜드가 추가로 심었다”고 전했다.

무릉도원길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엔 낙엽송 군락지가 있다. 김선식 기자

자작나무 숲 바닥에 듬성듬성 모여 있는 돌의자는 여행객들에게 명상을 권한다. 하늘길 청량한 숲 향기는 사람 살던 흔적들을 에워싸고 있다. 자연은 쓰린 역사와 평범한 일상을 보듬어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자작나무 숲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꼬부랑길을 내려가면 계곡 물을 가둔 ’무릉댐’이다. 오후 5시10분, 구름 위를 걷다 무릉도원으로 내려가는 하늘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선(강원)/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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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여행 수첩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발하면 고한·사북 공용 버스터미널까지 3시간가량 걸린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고한역이나 사북역까진 기차로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고한역, 사북역에선 하이원리조트 순환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고한·사북 공용 버스터미널에서 하이원 팰리스호텔까지 택시로 약 30분 거리(1만3천원가량)이다.

곤돌라 이용정보 하이원리조트 마운틴 스키하우스에서 출발하는 곤돌라는 10월21일부터 스키시즌 개장(11월 중하순)까지 시설 정비 예정이다. 하이원탑까지 곤돌라를 이용하려면 하이원 팰리스호텔에서 출발하는 곤돌라 ‘스카이1340 팰리스’를 이용해야 한다.(비투숙객 1인당 6천원·하이원팰리스 투숙객 및 하이원 컨트리클럽 이용객은 팀당 4명까지 무료) 리조트 셔틀버스는 스키시즌 개장까지는 밸리콘도에 정차하지 않는다. 이 기간 밸리콘도에서 다른 숙소로 이동하려면 도보 약 15분 거리 힐콘도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주말에만 운행) 곤돌라 및 셔틀버스 관련 문의는 전화번호 1588-7789.(누리집 high1.com 중 <이용안내>→<오시는 길> 참고.)

카트투어 이용정보 숲 해설을 들으며 왕복 약 7㎞(50분 소요)를 소형 전동차(카트)를 타고 둘러보는 ‘하늘길 카트투어’는 성인 1만5천원. 마운틴베이스(마운틴 스키하우스)에서 슬로워가든(힐콘도)과 밸리허브를 돌아 마운틴베이스로 돌아온다. 카트로 이동해 일부 구간을 도보로 걷는 ‘힐링 카트 트래킹’ 상품(4시간 소요·2만5천원)도 있다.

식당 하이원탑에 ‘탑 오브 더 탑’(Top of the top)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사방이 창문인 원형 식당으로, 식탁을 놓은 바닥이 약 2시간에 1바퀴 회전한다. 고한역 근처 ‘윤가네 한우마을’(고한읍 고한리 62-48/033-592-2920)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구이가 있다. 추가 주문 메뉴인 ‘된장 소면’이 별미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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